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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CG맨 장성호 [3] - 남들은 잘 모르는 나의 CG작업
사진 정진환문석 2002-01-12

몰라줘서 고마워!

<이재수의 난>

아는 사람은 아는 얘기지만, 시작부분 까마귀가 하늘을 돌고 돌아 솟대 위로 내려앉는 장면 중 일부는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것이다. 애초 편집본에선 까마귀가 앉는 장면을 넣지 않았다. 나중에 박광수 감독은 이 장면을 다시 넣기로 결정했는데, 불행히도 네거필름이 사라져버렸다. 재촬영을 하려 해도 이미 원본을 찍었던 때와 계절이 달라져 소용없는 일이었다. 결국 아비드 편집기에 남아 있는 소스 화면을 보고 내가 CG로 만들 수밖에 없었다. 뒷배경부터 솟대, 까마귀까지 컴퓨터그래픽으로 만든 3D 애니메이션인 셈이다. 기자 시사회 때 이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를 듣곤 절로 어깨가 으쓱했다.

<해피엔드>

근조등이 아파트의 벽을 타고 하늘 위로 날아가는 장면도 쉽지 않았다. 촬영 당시 HMI로 야간조명을 했는데, 나중에 현상을 해보니 깜박거리는 플리커가 생겼다. 재촬영을 하려고 했지만 그 아파트 주민들이 반대해 이마저 실패했다. 결국 CG를 동원하는 수밖에. 3D 그래픽을 이용해 불빛이 일렁이는 모습을 만들었고 껌벅껌벅하는 조명을 일정하게 보이도록 거의 매 프레임을 손대는 고생을 해서 겨우 성공했다.

<섬>

마지막 부분 서정이 물 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장면이 있다. 부력 때문에 그녀의 몸이 떠올라 김기덕 감독은 낚싯줄로 몸을 묶어 고정을 시키는 처방을 내렸다. 나의 임무는 화면에서 낚싯줄을 지우는,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작업.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직까지 해온 일 중 최고의 난이도를 가진 작업이었다. 낚싯줄로 몸을 묶다보니 살이 푹 들어간 곳이 생겼고, 물이 불규칙적으로 출렁거렸으며, 카메라는 뒤쪽으로 서서히 빠져나오다 보니 고려해야할 변수가 너무 많았다. 결국 프로그램을 새로 짜야 했고, 머리털이 다 빠지는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에 CG를 사용한 것을 아는 사람이 있을까.

<공동경비구역 JSA>

이영애가 판문점에서 개성으로 차를 타고 들어가는 도중 보이는 ‘쌀은 공산주의다’라는 입간판도 CG로 만든 것이고, 돌아오지 않는 다리 위에서 벌어지는 전투장면에서 예광탄이 터지고 하는 것도 그래픽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김태우와 이병헌이 들어간 지뢰밭이 불바다가 되는 장면은 전체가 합성화면이다. 인물들은 블루매트 위에서 연기를 했고, 불길은 정도안 기사가 만든 소스를 촬영했으며, 철책선 등은 3D 그래픽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나중에 이들을 합성했다. 주변 사람들 중 아직도 이 장면이 CG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무튼 박찬욱 감독, 명필름과는 의사소통이 가장 잘됐던 것 같다. 사전 협의가 충분하다 보니 과정상 누수도 없었으며 결과물도 완성도가 높았다.

<화산고>

학교 전경은 완전 3D 그래픽으로 만든 것이었다. 애초 미니어처로 만들자고 제의했었는데, 예산문제로 CG처리하게 됐다. 그냥 학교만 비추면 괜찮을 텐데, 앞쪽에 인물들이 움직이는 경우도 있어 정말 머리가 아팠다. 또 후반부 변희봉 선생이 강당에서 연설하는 장면은 찍어놓고 보니 화면 안에 안 들어올 줄 알았던 기름 먹인 베니어판이 빤히 보였다. 결국 CG로 마루를 깔게 됐다. 그런데 이 장면은 카메라가 심하게 움직이고 인물들도 동선이 크다 보니 한 프레임 한 프레임을 일일이 맞춰나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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