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또 돌아오셨군요. =네, 반갑습니다. 그런데 올해만 제가 돌아온 건 아닙니다. 죽음은 언제나 여러분의 곁에 살고 있으니까요. 죽음이 살고 있다는 표현은 좀 아이러니하긴 하지만요.
-여하튼 죽음님을 거의 하나의 캐릭터로 다루는 건 <파이널 데스티네이션> 시리즈가 최초니까요. 그런데 오랫동안 궁금했던 질문이 있어요. 왜 죽음님은 이토록 잔인하게 캐릭터들을 데려가시나요? =제가 그렇게 잔인한가요?
-그럼요. 이번 5편만 예로 들어볼게요. 애꿎은 다리를 붕괴시켜 사람들을 몰살하고, 괜히 송진가루를 날려서 체조선수의 몸을 짓이기고, 마사지 받으러 간 사람은 불태워 죽이고. 괴로워 죽을 뻔했어요. 몸이 반으로 꺾이고 갈고리가 턱을 관통하고 안과의 레이저가 환자의 눈을 쏘고… 으으으. =솔직히 말씀드리면 올해는 제가 힘이 좀 없어서 덜 잔인했던 편입니다. 1편과 2편이 오히려 제 황금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정말요? 1편과 2편은 오히려 고어장면이 좀 약한 편이 아니었던가요? =물론 기자님 말씀이 맞습니다. 고어 효과 자체는 뒤로 가면서 오히려 강해졌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 전성기는 1편과 2편이었다고 봐요. 뒤로 갈수록 저도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하느라 좀 억지춘향으로 캐릭터들을 데려갈 때가 종종 있었잖아요. 하지만 1편과 2편에서는 누가 봐도 납득 가능한 사고사를 통해 캐릭터들을 무지개 너머로 데려갔지 않습니까. 저 역시 논리적으로 말이 되는 방식을 꾸준히 연구한답니다. 이것도 직업은 직업인지라.
-하긴 2편의 고속도로 교통사고는 정말로 끔찍했습니다. 그 영화를 본 뒤로는 누가 고속도로에서 시속 100km 이상만 밟아도 시트 밑으로 몸을 구겨넣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아무리 교통사고에 다리 붕괴 사고라고는 하지만 굳이 사람들을 잔인하게 찢어발길 이유가 있나요? =허허허. 기자님 순진하시군요. 생각해보세요.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피해자들은 아름답고 고운 죽음을 맞이했을 것 같은가요? 매일매일 일어나는 교통사고는요?
-물론 그렇긴 하지만…. 제 눈으로 그들의 죽음을 똑똑히 쳐다본 적은 없어서요. TV도 그런 모습은 비추지 않고요. =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거대한 시멘트와 철강으로 만들어진 다리가 무너지고 자동차가 박살이 나는데도 사람들의 육체가 완벽하게 보존됐을거라 생각하진 않으시겠죠? 죽음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경우 죽음은 육체적인 훼손을 낳습니다. 고어영화가 따로 있나요. 우리의 삶 자체가 고어영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