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는 등급이 있는데, 1위가 클래식이고 2위는 재즈, 3위가 록이야.” 스무살 때 알고 지내던 남자아이는 종종 말했다. “그러니까, 네가 좋아하는 붕어들이 표절곡 부르는 거랑 밴드 음악은 하늘과 땅 차이지.” 건스 앤드 로지스나 메탈리카의 로고가 크게 프린트된 티셔츠를 즐겨 입던 그 애는 립싱크도 라이브처럼 곧잘 하던 내 ‘오빠’들을 비웃는 걸 일종의 레저 스포츠로 즐기곤 했다. 얼굴만 맞대면 H.O.T.가 낫네, 핑클이 낫네 하며 싸우다 지쳐 슬슬 연락이 끊긴 지도 꼬박 10년이 넘었지만 그놈의 ‘록’과 ‘밴드’에 대한 트라우마가 꽤 끈질기게 내 무의식의 밑바닥에 남아 있었던 것은 그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 KBS <TOP 밴드>를 보고 있으면 가끔 그때가 떠오른다. 온갖 오디션 프로그램이 범람하는 와중에, 아이돌이나 스타를 뽑겠다는 것도 아니고 록을, 밴드 음악을 발전시키겠다며 등장한 이 프로그램은 나로선 좀 신기하다. 모처럼 진지하게 보고 있다가 ‘음… 잘은 모르겠지만, 시끄럽다’고 생각하면 심사위원들은 “탄탄한 사운드”와 “안정된 앙상블”을 칭찬하며 나를 괜한 열등감 폭발의 늪에 빠뜨린다. TV를 향해 “저게 좋아? 진짜?”라고 외쳐보지만 공허한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다. 660여 참가팀 가운데 본선에 진출할 24팀을 뽑는 과정 또한, <슈퍼스타 K>였다면 ‘악마의 편집’과 캐릭터 플레이로 살렸을 재료들도 <TOP 밴드>는 덤덤히 패스한다. 사람들은 너무 많고, 캐릭터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밴드 이름만 외우기에도 정신이 없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에는 나 같은 록밴드 문외한도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괴상한 매력이 있다. 다 큰 장정이 본선에 진출할 24위 안에 들었다며 울먹거리고, 누군가는 “나중에 아들 낳으면 (22위 한) 점수 보여주겠다”며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들떠한다. 아직 1위를 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우승 상금은 1억원, 적게는 2명에서 많게는 16명에 이르는 멤버끼리 나눠 갖고 나면 다른 오디션 프로그램의 몇분의 1밖에 안되는 액수임에도 누군가에게 자신들의 음악을 들려주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는 당해낼 도리가 없다. 직장에 다니며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음악을 해온 ‘블루니어 마더’의 기타리스트 아저씨가 16강까지 오르는 과정에서 아내에게 “인규 아빠 미안해. 네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겠지. 그걸 잊었네”라는 문자를 받고 자랑스러워하던 장면, 16강에서 탈락한 ‘라이밴드’의 보컬이 카메라를 향해 몇번이나 “라이밴드를 잊지 말아 주세요”라고 부탁하던 순간이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은 기약 없는 짝사랑에 열정을 바친 이들만이 가질 수 있는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며칠 전, 10년이나 미뤄두었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봤다. 멤버들이 하나씩 떠나고 혼자 단란주점으로 흘러들어간 성우(이얼)가 손님의 요구로 옷을 벗은 채 기타를 치는 얼굴을 오랫동안 들여다봤다. 한국에서 음악을, 록을, 밴드를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2011년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던 ‘게이트 플라워즈’조차 대중성이 없다는 이유로 고민해야 하는 현실은 여전히 척박하다. ‘2STAY’의 드러머와 기타리스트 형제의 부모님이 아파트 12층에서 드럼을 던지고 기타를 밟아버리면서까지 음악을 반대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2STAY의 멤버들은 모두 동시에 대학을 그만두고 등록금으로 장비를 샀다. ‘브로큰 발렌타인’의 보컬은 음악에 전념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성우는 마지막 순간까지 연주를 계속했다. 그리고 나는 이들의 무대를 끝까지 지켜볼 작정이다. 2011년 대한민국에서 멸종 위기에 처한, 무모한 열정이란 것을 보호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