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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고 보라! 외면해선 안될 아픈 진실을 ②
강병진 사진 최성열 2011-09-27

실화가 소설이 되고 소설이 영화가 된 과정을 <도가니> 황동혁 감독과 원작자 공지영 작가에게 듣다

가감없이 묘사된 끔찍한 사건의 현장

원작의 중심인물을 축소시키는 한편, 여러 주변 인물들을 지운 영화는 그날의 기억까지 한달음에 달려간다. 이미 원작을 읽은 독자라면 책장을 넘기기가 두려웠던 그날의 사건을 영화가 어떻게 묘사할지 근심스러웠을 것이다. 영화는 이 장면이 이야기의 의무인 듯 마주한다. 활자를 통해 상상하는 소설에 비할 수는 없지만 실제적인 이미지로 재현된 사건의 현장을 목도하는 것 역시 숨이 막히는 일이다. 아이들의 울부짖는 표정과 그들을 바라보는 가해자의 표정은 공포가 아닌 실제적인 분노를 전한다. 와이셔츠만 입은 채 아랫도리를 드러내고 있는 중년 남성의 모습, 그가 완력으로 아이들을 제압하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끔찍함은 배가된다. 어쩌면 수화의 움직임과 사운드를 활용한 은유적인 연출, 혹은 정적인 카메라로 관객의 인내심을 폭발시키는 방식도 시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황동혁 감독은 “있는 그대로 보는 느낌이어야만 이 끔찍한 사건을 제대로 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실화의 시점과 전개상, 누군가의 추억이 될 수 없는 현재진행형의 끔찍한 기억인 <도가니>는 그처럼 영화적인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일 것이다. (스포일러의 위험상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재판의 결과 이후에 추가된 이야기 또한 대중영화의 긴장감을 위한 설정이라기보다는 감독과 사건의 실체에 공분할 관객의 바람을 담은 부분이다. “원작에 없는 임팩트를 주려고 넣은 거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만 끝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내가 느낀 답답함 때문인지, 그래도 인물들 가운데 누군가는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었다.” 실화의 무게를 고스란히 감당하고 있는 영화는 그처럼 세상의 기억에서 사라진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 사람들의 공분을 이끄는 의도로 가득하다.

황동혁 감독.

6년 전 실화가 아닌 현재의 이야기

소설 <도가니> 속의 무진은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모조리 품고 있는 공간이었다. 성적인 폭력은 버젓이 자행되는데, 이에 대한 처벌은 피해자의 아픔을 달래줄 만큼 집행되지 않고 있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과 종교적 맹신이 지닌 광기 또한 현재 한국사회의 저변에 깔려 있는 의식이다. 영화가 6년 전의 실화를 2011년 현재의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가장 직접적인 지점은 쉼없이 물을 뿜어내는 물대포의 이미지다. 원작에서는 단 한 문장으로 제시된 부분을 집요하게 묘사한 황동혁 감독은 이 장면이 시대의 코멘트로 읽히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스라엘에서 수입됐다는 물대포를 처음 경험한 세대이기도 하다. 당시의 공포가 지금도 촛불시위나 파업현장에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소설 속 무진은 짙은 안개로 진실을 은폐하지만 현실의 한국은 세찬 물줄기로 진실의 출현을 압박하는 중이다. <도가니>는 장애인이 아니라고 해서, 성폭행을 당한 적이 없다고 해서, 자신의 이야기가 세상의 무관심에 묻히는 일이 없었다고 해서 외면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른손 엄지가 왼손의 새끼손가락에 가하는 폭력은 세상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도가니>에 대한 영화적 평가가 대중매체의 순기능에 대한 평가에 우선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두 눈을 감으면 안되는 이유다.

쉽지 않았을 도전에 진심으로 박수를

<도가니>의 아역배우 그리고 악역배우

<도가니> 속 배우들의 호연에 박수를 치는 건 마음이 힘든 일이다. 피해자인 아이들을 연기한 아역배우는 물론이고 가해자 역을 맡은 배우들 역시 연기력을 인정받으려는 마음이 앞서지는 못할 것이다. 영화 속 교장과 행정실장은 쌍둥이라는 설정상 한 배우가 연기했다. 연극배우이자 성우인 장광(사진)이다. 국내에 방영된 외화에서 게리 올드먼의 목소리는 대부분 그의 것이다. 이 밖에도 <영웅본색>의 아호(적룡),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의 밥(빌 머레이)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슈렉>의 국내 더빙버전에서 줄곧 슈렉의 목소리를 맡기도 했다. 황동혁 감독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던 분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이런 역할을 맡기게 됐다”고 말했다.

아역배우 캐스팅은 <도가니>의 제작과정에서 가장 먼저 시작해 가장 늦게 끝난 부분이었다. 황동혁 감독은 “처음 봤을 때 이미지가 맞을 것 같았던 배우들이 마지막까지 올라와 캐스팅됐다”고 말했다. 연두 역의 김현수는 영화 <우리 만난 적 있나요>에서 윤소이의 아역을 연기한 배우다. 유리를 연기한 정인서는 드라마 <천추태후>와 <일지매>에 출연한 바 있고, 민수 역의 백승환은 영화 <리턴>에서 10살의 나이에 수술 중 각성을 겪었던 그 소년이다. 오디션 과정에서는 배우와 보호자들에게 영화의 내용과 성격을 주지시키는 게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어보지 않고 무작정 아이를 데리고 온 어머님들이 많았다. 그런 분들께는 꼭 시나리오를 다시 읽어보시고 아버님과 아이와 상의한 뒤 다시 오시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도 어린 배우들을 데리고 사건을 재현하는 건 마음이 불편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역배우들은 보호자의 입회 하에 연기했고, 가해자를 연기해야 하는 장광에게도 길게 늘어뜨려 입을 수 있는 와이셔츠와 속바지가 준비됐다. 일부 장면에서는 대역을 쓰기도 했다. <도가니>의 관계자들은 마케팅 단계에서 아역배우들의 인터뷰를 제한하고 있다. 놀라운 연기는 칭찬받아 마땅하지만 감당하기 힘든 질문을 받아들여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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