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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의 아이콘] 고흐의 자화상
진중권(문화평론가) 일러스트레이션 정원교 2011-09-30

초상이 풍경이 될 때

“얼굴과 풍경의 상보성 안에서 하나를 다른 것으로 구성하라. 그것들을 채색하라. 그것들을 완성하라. 얼굴과 풍경의 교본들은 예술에 영감을 준다. (…) 건물, 마을이나 도시, 기념물이나 공장 (…) 이것들은 건축이 변형시키는 풍경 안에서 얼굴로서 기능한다. 회화는 얼굴에 따라 풍경을 위치시키고, 하나를 다른 하나처럼 취급함으로써 그 운동을 역전시키기도 한다. 영화의 클로즈업은 얼굴을 하나의 풍경으로 취급한다.”

풍경-얼굴

들뢰즈-가타리의 <천개의 고원>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 이렇게 풍경과 얼굴을 등치시키는 발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당장 후보로 떠오르는 것은 16∼17세기에 유행했던 이른바 ‘인형풍경’(anthropomorphic landscape)이다. 이는 풍경 속에 거대한 사람의 얼굴을 감추어놓은 그림으로, 마니에리스모라는 시대에 화가들이 처한 독특한 상황의 산물이다. 르네상스를 통해 주요한 기법이 모두 발명되었기에, 이 시기에 화가의 기예는 진지한 창안에 이르지 못하고 가벼운 시각적 조크로 흘러버리곤 했다.

대표적인 예가 그 유명한 아르침볼도의 그림이다. 이 이탈리아의 마니에리스트는 들판의 꽃들, 식탁 위의 채소들, 도서관의 책들을 교묘하게 배열하여 화폭 위에 인간의 얼굴을 만들어낸다. 그의 작품에서는 ‘정물이 초상이다’. 미국의 사진작가 앨런 테저는 인간의 신체를 풍경으로 제시한다. 디지털 합성을 통해 그는 확대 촬영된 인체 부위 위에 조그만 인물들을 올려놓는다. 배꼽은 골프장의 홀이 되고, 엉덩이는 언덕이 되고, 젖가슴은 암벽이 된다. 이를 그는 ‘신체풍경’(bodyscape)이라 부른다.

들뢰즈-가타리의 발상에 직접적으로 영감을 준 것은 혹시 살바도르 달리가 아니었을까? 가령 두개의 구멍을 가진 전기 소켓이 가끔 인간의 얼굴로 보이듯이, 달리는 일상의 이미지들 속에서 또 다른 이미지들을 찾아내는 데에 능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언젠가 그가 써먹은 사진일 것이다. 오두막 앞에 모여 앉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이 사진을 옆으로 세우면 거기서 불현듯 거대한 인간의 얼굴이 나타난다. 달리는 이 시각적 착란을 아예 창작의 방법(이른바 ‘편집증적 방법’)으로 채택했다.

미술사학자 마이어 샤피로는 언젠가 고흐의 작품에 나타나는 정물-초상에 관해 얘기한 적이 있다. 고흐의 <구두>를 농민 여인의 것으로 간주한 하이데거를 비판하면서, 샤피로는 고흐의 <구두>가 실은 화가 자신의 것이라 단언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고흐의 <구두>는- 의자나 파이프 등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다른 사물들(private objects)과 함께- 화가의 다른 자아(alter ego)라고 한다. 샤피로의 말이 맞는다면, 구두는 고흐의 잘려나간 귀처럼 고흐의 분신인 셈이다. 이로써 정물은 초상이 된다.

그의 풍경은 어떤가? 고흐의 초상은 굵고 짤막한 선들의 물결로 이루어져 있다. “영화의 클로즈업은 얼굴을 하나의 풍경으로 취급한다”는 말처럼, 그의 자화상을 클로즈업하면 정말로 눈앞에 풍경이 펼쳐진다. 얼굴을 이루는 선들은 마치 태양처럼 방사선으로 뻗어나가고, 이마를 이루는 선들은 마치 밭고랑처럼 출렁인다. 그의 얼굴을 이루던 굵고 짧은 선들은 노란 밀밭을 이루며, 삼나무 가지를 이루며, 나아가 소용돌이처럼 휘감으며 검푸른 밤하늘을 이룬다. 그의 자화상은 정말로 또 하나의 풍경화이다.

회화의 리(理)와 기(氣)

고흐의 작품에서 풍경과 초상을 하나로 이어주는 것은 아마도 ‘리듬’일 것이다. 짧고 굵은 선들의 리듬은 때로는 물결이 되어, 때로는 소용돌이가 되어 고흐의 얼굴과 풍경을 관통한다. 어떤 의미에서 이는 몬드리안이 본 우주를 닮았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1917년에 제작한 자신의 최초 추상에서 그는 부둣가 풍경을 수직과 수평으로 교차하는 선들의 리듬으로 구성했다. 구상이 사라진 그의 화면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수직과 수평의 짧은 선들, 말하자면 우주의 모든 것을 이루는 음양(陰陽)의 리듬뿐이다.

흔히 고흐는 후기 인상주의자로서 원색에 가까운 강렬한 색채표현으로 프랑스의 야수주의와 독일의 표현주의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여진다. 이렇게 고흐를 색채의 해방자로 간주할 때, 정작 그의 더 중요한 측면은 그냥 묻혀버리는 게 아닐까? 그것은 서양의 전통에는 존재하지 않으나 동양에서는 거의 회화의 상식으로 여겨지는 요소,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흐름이다. 흔히 이를 ‘기’(氣)라고 부른다. 이른바 ‘기운생동’(氣韻生動)은 적어도 동양화에서는 거의 예술의 동의어로 통한다.

데카르트 이후 서양철학은 세계를 ‘사물’(연장실체)과 ‘정신’(사유실체)으로 나누었다. 이 이분법에서 ‘기’는 공간을 차지하는 연장실체에도 속하지 않고, 순수 정신적 존재인 사유실체에도 속하지 않는다. 여기서 회화 속의 ‘기’라는 개념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서구미학의 바탕을 이루는 서구 형이상학을 그대로 두는 한, 그것은 이해 불가능한 현상으로 남는다. 즉 사물을 연장실체, 즉 윤곽(형태)과 속성(색채)을 가진 물체로 보는 한, 고흐 작품에 흐르는 ‘기’는 개념적 파악의 피안에 위치하게 된다.

고흐의 그림에서 가시적 대상들을 잊어버리고 짧고 굵은 선들의 리듬에만 주목해보자. ‘리듬’이라는 면에서 수직과 수평의 막대기로 이루어진 몬드리안의 최초 추상은 고흐의 작품을 닮았다. 거기에서 우리는 우주를 음양의 교차로 바라보는 신지학(theosophy)의 원리를 볼 수 있다. 하지만 거기서 고흐의 짧은 선들이 만들어내는 역동성을 느낄 수는 없다. 몬드리안이 관념론적이라면, 적절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몬드리안의 리듬이 ‘리’(理)에 가깝다면, 고흐의 그것은 ‘기’(氣)에 가깝달까?

베이컨의 자화상

이를 제대로 본 유일한 사람은 아마 프랜시스 베이컨일 것이다. 이 아일랜드의 화가는 인생의 한동안 고흐를 그리거나, 고흐의 작품을 제 식으로 고쳐 그리는 데 몰두했다. 고흐의 어떤 면에 사로잡힌 것일까? 그것은 물론 고흐의 작품에 흐르는 ‘기’였으리라. 베이컨은 자신을 대상의 관찰과 묘사에 뛰어난 ‘장인’이 아니라, 대상의 주위에 흐르는 기를 느끼는 감도 높은 ‘안테나’로 여겼다. 한마디로 그는 (정신적) 지각(perception)이 아니라 (육체적) 감각(sensation) 위에서 작업하는 화가였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베이컨의 초상. 그는 그림을 그리다가 화면을 손으로 문질러버리곤 한다. 이 폭력(?)이 화면에서 모델과 초상 사이의 가시적 유사성을 지워버린다. 그런데도 완성된 초상은 놀랍게도 어딘지 모델을 닮았다. 이는 ‘지각’의 차원이 아니라 ‘감각’의 차원에서 유사성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닮지 않게 그리되, 닮게 그리라.” 인물의 주위에 흐르는 기를 그릴 때, 외형이 현저히 달라도 여전히 모델을 닮은 초상이 탄생한다. 고흐의 초상과 베이컨의 초상은 실은 같은 얼굴, 같은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