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장처럼 얼어버린 빙판길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오로지 바빠 간밤에 땅 한번 밟아보지 못한 한 남자가 길가 건물 속에서 벨소리에 놀라 후닥닥 문을 연다. 문 밖 찬 새해 신문들 위로 방안의 훈기가 확 밀려온다. 아침이 훤히 밝은 이제야 막 침대에 몸을 댄 참이라는 맨발의 이 남자는, 그런데 보아하니 세수도 한 것 같고 막 외출할 사람처럼 스웨터까지 입고 있다. 이러다간 독자들이 거짓말하는 줄 알겠군. 밤새 일했다는 유일한 증거는 수염뿐. 그마저 밤샌 ‘티’를 남겨두느라 배려한 본인의 ‘설정’이다.
“면도하는 데 몇분 걸리겠어요. 일하면 원래 일주일씩 수염을 안 깎거든요. 기자분들 오신다고 해서 사실 면도를 하려고 했는데, 일하는 모습 보여드리려고 일부러 안 했어요.” 영화음악가 이동준씨. 그는 정확히 23시간 뒤 1월2일 10시면 인천공항을 향해 집이자 작업실인 이 공간을 떠나야 한다. 의 녹음용 모든 악보를 손에 들고. 2일 1시 비행기로 러시아에 가서 합창단 포함 160명 대규모의 러시안 내셔널 오케스트라와 함께 그가 만든 곡들을 녹음해야 하는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곤히 잘 잔 기억은 “로스트 메모리즈”가 된 지 오래고, “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니 “템푸스 포르타-시간의 문”이니, 머릿속을 스치는 합창 가사들도 죄다 이런 것들이다.
게으름 탓이 아니다. 는 워낙 “음악 자리가 많은 작품”. 3개월 전부터 작업을 해왔으나 원래 예정보다 늦어져 “또 이러고 싶지는 않”은 연말연시를 보내게 됐다. 새해계획? 생활공간과 작업실을 분리하고 어시스턴트도 두는, 대대적인 ‘사업확장’을 할 것이고 영화는 강제규필름과 최대 3작품까지 작업할 예정이다. 이렇게 일해도 좋다는 신부감도 찾아봐야지. 다시 처음, ‘2년째’ 불밝히고 있는 모니터 앞에서 그의 두눈은 아직 피로한 기색이 없다. 글 최수임 sooeem@hani.co.kr, 사진 오계옥 klara@hani.co.kr▶ 미치겠다! 우린 1월1일 0시부터 달린다
▶ [00:00] <반지의 제왕> 개봉한 메가박스 앞
▶ [03:30] 쿠앤필름의 시나리오 작업실
▶ [09:00] <마리 이야기> 배급 준비하는 배급전문회사 청어람 사무실
▶ [11:00] 음악감독 이동준 작업실
▶ [12:40] <서프라이즈> 크랭크인 고사
▶ [14:00] <예스터데이> 프로덕션 디자이너 김석민 사무실
▶ [15:30] 서울극장 <나쁜 남자> 이벤트 홍보현장
▶ [17:50] KTB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의 하성근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