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피플 > cinetalk
[Cinetalk]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좋다
김성훈 사진 최성열 2011-09-06

2010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우수상 수상, 시나리오 작업 중인 <좌홍리의 스파이>의 정해민 작가

시나리오를 선정해 상금만 주는 시나리오 공모전의 시대는 갔다. 최근 기획개발지원 사업이나 시나리오 공모전의 경향을 꼽으라면 수상작에 창작공간을 지원하고 전담 멘토를 붙여 시나리오 작업을 도와준다는 것이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2011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주최 한국콘텐츠진흥원) 역시 마찬가지다.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등 다양한 원천 콘텐츠를 발굴해 지원하는 이 공모전은 규모로는 단연 국내 최고다. 대상 상금 1억원을 비롯해 최우수상에는 5천만원을, 15편을 선정하는 우수상에는 2천만원의 상금을 각각 지급한다. 선정된 작가들에게는 목동 방송회관 내 스토리창작센터의 작업 공간이 제공된다. 올해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이 열린다(자세한 사항은 한국콘텐츠진흥원 홈페이지 www.kocca.kr을 참조할 것. 공모전 접수는 9월 말 홈페이지 story.kocca.kr을 통해 할 수 있다). 지난해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 <좌홍리의 스파이>의 정해민 작가를 창작지원센터에서 만나 이번 공모전과 현재 하고 있는 작업에 관해 물었다.

-방이 넓다. =이래 봬도 창작공간에서 가장 큰 방이다. 원래 이 방이 아니었는데 어찌어찌하여 큰 방으로 흘러들어왔다. 대상 수상자는 저 끝에 있고.

-작업하기 좋을 것 같다. =시원해서 좋다. 오늘 인터뷰만 아니면 집에서 쓰려고 했는데 날이 하도 더워서 왔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내가 언제 국가 기관으로부터 녹을 받겠나.

-여기서 잠도 자고 밥도 먹나. =가끔 자는데 밤에는 빌딩숲이라 그런지 꽤 무섭다. 사무실이 많아서 밥은 근처에서 주로 해결한다.

-83년생으로 올해 29살이다. 이른 나이에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됐다. =문예창작과에서 소설을 전공했다. 일찍부터 이것저것 손댄 게 많다. 시나리오는 4편, 단편소설은 10편 정도 썼다. 많이 썼다고? 그런 건 아니고.

-지난해 12월에 입상한 <좌홍리의 스파이> 시나리오도 학생 때 쓴 건가. =그렇다. 대학교 3학년 때인 2009년, 13페이지짜리 단편소설을 쓰는 수업이 있었다. 그때 <좌홍리의 스파이>를 썼더니 교수님께서 “야, 이거 재미있다. 중편이나 장편으로 한번 키워봐라”고 하시더라. 그 선생님은 내가 이 이야기를 소설공모전에 낸 줄 아시지만…. (웃음) 공모전에 낸 형식이 소설이긴 했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크게 벗어나지 않은 일탈이라고 생각한다.

-<좌홍리의 스파이>는 ‘좌홍리’라는 시골 마을에 들어와서 살게 된 한 간첩의 생활과 그를 지켜주려는 마을 사람들을 코믹하게 그리는 이야기다.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처음에는 지금처럼 휴먼코미디로 풀려고 하기보다 007 시리즈처럼 스파이 장르를 그리고 싶었다. 사실 간첩과 스파이는 어감이 많이 다른 것 같다. 아무래도 간첩이라는 말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단어다. 왜 한국에는 스파이물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든 것도 그때다. 사실 <쉬리>나 <이중간첩> 말고는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지 않나. 그런데 쓰면서 나도 ‘간첩’이라는 말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스파이물에서 간첩을 소재로 한 이야기로 바뀌게 됐다.

-이야기의 배경인 ‘좌홍리’는 실제 존재하는 마을이라고. =그렇다. 충남 부여군에 있는 마을로, 부모님께서 살고 계시는 고향이다. 원래는 앉을 ‘좌’자인데, 왼 ‘좌’자로 바꾸었다. ‘좌파’ 할 때 그 ‘좌’자다.

-원안을 쓰는 데 얼마나 걸렸나. =두달 정도 걸렸다. 애초의 13페이지짜리 단편소설 버전에서 살을 더 붙여서 60페이지 분량으로 늘렸다. 낮에는 밭을 갈고 밤에 글을 썼다. 대학을 졸업한 뒤 취직을 못해서 고향에 내려갔다. 거기서 고추 농사를 지었는데 도저히 농사일이 체질에 맞지 않더라. 할 줄 아는 게 글쓰기가 유일하니까. 우연히 공모전 소식을 듣고 틈틈이 썼다.

-단편소설에서 시나리오 공모전에 낸 원안까지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뭔가. =13페이지짜리 단편소설은 인물의 처음과 끝이 정해져 있다. 주인공 이외에 다른 인물을 설정해 그 인물의 스토리라인을 이야기 안에 녹이는 과정이 어려웠다. 인물이 늘어나면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생각해야 할 게 많아지더라.

-심사위원들은 왜 이 작품을 선정했다고 하던가. =배경과 인물 설정이 풍부해서 지금 있는 사건 말고도 전개할 수 있는 줄기가 다양하다고 말씀하시더라.

-창작공간에서의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출근 시간을 피해서 오전 11시쯤 도착한다. 점심 먹고 바로 작업한다. 계속 앉아서 작업할 것 같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게 인간 아닌가. 창작공간에서 함께하는 다른 작가들과 친하게 지낸다. 가끔 밤에 술도 함께 마시고.

-동료 작가들과 서로의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는 편인가. =그렇다. 서로 모니터링도 해주고. 모두 나보다 선배라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뼈가 되고 살이 된다. 어떤 말이 와닿냐고? 빨리 드라마 쓰라고. (웃음) 아무래도 영화 시나리오가 어려우니까.

-스토리 공모전의 사후 관리 일환으로 현재 차승재 대표와 함께 시나리오를 진행하고 있다. =차승재 대표님께서 7월까지는 초고를 쓰도록 내버려두셨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하시더라. 초고를 드린 8월부터 차 대표님을 매주 뵙고 있다. 이번에 대학원에 입학했는데 차 대표님께서 지도 교수님이시다.

-차승재 대표는 어떤 방식으로 멘토 역할을 하나. =이번이 나의 첫 시나리오 작업이라 차승재 대표님께 질문 드리는 게 많다. 어떤 부분이 막혔는데 길을 못 찾겠다고 말씀드리면 차 대표님은 그것에 대한 팁을 던져주신다. 그걸 가지고 일주일 동안 쓴 뒤 다시 보여드리고.

-팁이 많이 도움이 되나. =큰 영감을 준다. 헤매는 시간에 다른 길로 갈 수 있어서 당장 어떻게든 해결이 된다. 그러다가 또 길이 막히면 또 다른 길을 찾아서 써내려가고. 주인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다른 작품과 달리 <좌홍리의 스파이>는 여러 명이 등장한다. 이 사람들을 하나의 상황에 몰아넣고 싶은데 마음대로 잘 안된다고 말했더니 차 대표님께서 한마디 하셨다. ‘그건 네가 공력이 달려서 그런 거야’라고. (웃음) 차 대표님 역시 내가 시작 단계라 한꺼번에 많은 걸 바라기보다 하나하나 가르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시는 것 같다.

-공모전에 당선된 원안을 본 차승재 대표의 반응은 뭐였나. =주인공이 매력이 없다고 하시더라. 그건 큰 문제인데…. 처음 그 말씀을 하셨을 때 무슨 말인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차 대표님께서 다시 말씀하시더라. ‘어떤 배우가 이 역할의 어떤 매력에 연기를 하려고 할까’라고. 배우가 이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좌홍리의 스파이>의 주인공은 자기 주관이 별로 없고 마을 사람들에게 휘둘리는 역할이다. 말은 쉽지만 그게 어디 쉽게 써지나. (웃음)

-지금 몇고 정도 나왔나. =몇고라고까지 말할 건 없다. 이제 초고가 나오는 단계일 뿐이다.

-작업할 때 다른 영화를 참고하는 편인가. =간첩이 소재다 보니 간첩영화는 다 찾아봤다.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장진 감독의 <간첩 리철진>이었다. <좌홍리의 스파이>와 코드가 비슷해서 최대한 다르게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 장훈 감독의 <의형제>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인물이 많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록스탁 앤 투 스모킹 배럴즈>도 참고했다. 한 사건에 8명을 몰아넣는 게 아주 기가 막히더라.

-창작공간에서 작업하면서 느끼는 건 뭔가. =작업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좋다. 물론 집에서도 잘 쓴다. 그런데 할머니 집에 얹혀살다보니 작업을 하다가 빨래도 널어야 하고, 슈퍼마켓에 심부름도 다녀와야 한다. 그런데 창작공간에서 작업하면서부터 오로지 글쓰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2011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 3기가 선발될 때까지 창작공간에서 계속 작업할 예정이다. 한 2~3개월 남았나. 그때까지는 초고를 완성하는 게 목표다. 압박감을 느끼냐고? 압박감보다는 아쉽다. 언제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 쐬면서 작업하겠나. (웃음)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