훔쳐보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 사는 옆집 여자의 샤워하는 광경을 훔쳐보고 그러는 건 당연히 아니다. 어디까지나 나의 훔쳐보기는 소소하다(고 믿고 싶다). 매주 회의 시간 때 마주보고 앉는 김도훈 기자가 무슨 낙서를 하는지, 종종 옆에 앉는 이영진 기자가 무슨 메모를 하는지를 엿보는 게 참 재미있다. 무슨 낙서냐고? 뭐, 별건 없더라. 김도훈 기자는 A4 용지 맨 위에서 맨 아래까지 동그라미만 잔뜩 그리고, 이영진 기자는 영화 제목만 여러 번 끼적인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는 남들이 읽는 신문이나 잡지도 종종 엿본다. 가끔 <씨네21>을 읽는 승객을 발견하기도 하는데, 그때는 무슨 기사를 읽고 있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다른 테이블은 뭘 시켰는지 살펴본 뒤 맛있게 보이는 요리를 따라 시키기도 하고. 이 밖에도 길거리를 걷다가 예쁜 여자… 음. 뭐, 어쨌거나 제 몸 하나 제대로 처신 못하는 주제에 남 일에는 어찌나 관심이 많은지. 좋게 포장하면 호기심이 많고 사람 관찰하기를 즐긴다고나 할까.
얼마 전까지 ‘본의 아니게’ 훔쳐보기에 빠져 있었다. 내년 1월14일 결혼하는 여자친구의 휴대폰이었다. 벌써부터 여성 독자들의 원성이 들리는 듯하다. ㅠㅠ 원래는 훔쳐보기 위해 훔쳐본 게 아니다(여자친구의 말에 따르면, 다들 말은 이렇게들 한다고 한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카페에서 여자친구가 잠깐 화장실에 간 사이 도착한 그의 ‘카톡’(카카오톡) 메시지를 우연히 보게 됐다. 다정한 말투였던데다가 나보다 여자친구에 대한 정보가 많아 보였다. 순간 질투심이 났지만 꾹 참았다. 몇 날 며칠 동안 신경이 쓰였고 말을 꺼낼까 말까 고민했다.
말이 나온 건 한참 뒤였다. 다른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연히 휴대폰을 몰래 본 사실을 얘기하게 됐는데, 얼마나 욕을 먹었던지. “초등학교 친구니 당연한 거 아니겠냐”는 게 여자친구의 당시 대답이었다. 보기 좋게 나쁜놈이 됐다. 하지 말라고 할 때 더 하고 싶어 하는 못된 심보가 발동한 것일까. 그날처럼 우연히 문자메시지를 발견할 때마다 몰래 확인한다. 그때마다 훔쳐보기의 쾌감과 여자친구에 대한 죄책감이 동시에 들었다. 결국 이 글을 쓰기 며칠 전, 그간의 범죄를 고백했다. 역시 이번에도 욕을 엄청 먹었지만 참회하고 나니 마음은 편해졌다. 정말 미안해요. 다시는 훔쳐보지 않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