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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취향] 국물이 끝내주는, 심야식당
강병진 2011-08-26

도시남녀의 비밀스러운 일상을 공유하는 한편, 문화적 트렌드와 ‘힙’한 아이템들을 알리고, <씨네21> 구성원의 캐릭터를 드러내는 ‘타인의 취향’이지만, 별 취향이 없는 나는 그냥 맛집을 소개하려 한다. 연신내역 6번 출구 라인에 있는 ‘한솔이네 칼국수’다.

이곳을 처음 찾게 된 건, <씨네21>에 입사하고 약 1년이 지난 어느 겨울 밤이었다. 그때만 해도 열정이 가득했던 터라(사실 안 그러면 잘릴 것 같아서), 회의시간마다 “제가 하겠습니다”를 자주 외치던 나는 그만큼 자주 심야택시를 타고 퇴근했다. 일을 끝내고 가는 길에 따뜻한 국물과 소주 한잔을 마시는 진짜 아저씨스러운 로망이 발동했고, 무작정 들어간 곳이 ‘한솔이네’였다. 주인 아저씨는 국물에 면을 넣고, 유부와 파, 김가루를 뿌린 뒤 그릇 한 귀퉁이에 양념장을 채워주었다. 그릇을 받자마자 멸칫국물의 냄새가 진동했다. 입에 넣은 면의 식감은 부드러우면서 쫄깃했다. 처음에는 주는 대로 먹었다. 나중에는 입맛에 따라 청양고추를 달라고 했다(주인아저씨는 “제대로 먹을 줄 안다”며 칭찬하셨다). 그 뒤에는 다 먹고 난 빈 그릇이 아쉬워 국물만 더 달라고 했다. 출출하거나 마음이 허할 때는 어김없이 이곳을 찾아갔다. 주인 아저씨가 알아서 청양고추를 넣어주는 단계가 됐을 즈음에는 그에 걸맞게 체중도 늘어났다.

연신내 6번 출구 라인에는 약 7개의 포장마차가 있다. 모두 칼국수와 수타 자장면 등을 파는 곳이다. 주 이용고객은 콜을 기다리는 대리운전기사들과 나이트클럽 순회를 마치고 마지막 한잔을 하러온 형님, 누님들 그리고 나처럼 배고픈 사람들이다. ‘한솔이네’는 그중 6번 출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는데, 찾기는 쉽지만 먹기는 어렵다. 다른 포장마차에 비해 개점하는 날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번은 축구애호가인 주인 아저씨가 조기 축구회에서 다리를 다쳐 약 한달간 문을 열지 않던 암흑기가 있었는데, 그 이후부터 개점시간이 일정치 않았다. 겨울에 비해 칼국수 시장의 비성수기인 여름은 특히 더 그럴 것이다. 그때마다 아쉬운 마음에 다른 포장마차의 칼국수를 먹어보니, 한솔이네의 칼국수가 연신내역 6번 출구 라인에서 멸치의 밀도가 가장 높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지면을 통해 정기적인 개점을 부탁드리는 바다. 칼국수를 먹을 생각에 잔뜩 부풀어 있다가, 텅 빈 도로를 보게 됐을 때의 절망감을 아저씨는 모르실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