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이 동화 원작에서 출발했다는 걸 알고 나면 그 원작이 궁금해지고 그걸 쓴 원작자가 궁금해진다. 이미 베스트셀러에 오른 유명 작품의 원작자이지만 우리는 황선미 작가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았다. 그녀에 관하여, 그녀의 작품 세계에 관하여, 그녀 작품의 배역들에 관하여. 매해 지금의 계절이면 여행을 떠나 작품 구상과 집필에 매진한다는 황선미 작가. 캐나다에 있는 그녀에게 질문지를 보냈고 답장을 받았다.
-동화에 앞서 먼저 등장하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유년 시절에 폐가 나빠 군인이나 경찰, 형사처럼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 했던 ‘아이’가 지금은 작가가 되었다는 말이 그러했습니다. 유년 시절의 건강과 그에 관련해 가졌던 꿈과 소망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사연 혹은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머리말에 적은 그대로예요. 폐병 환자였거든요. 그것도 심각한. 지금도 엑스레이를 찍으면 폐에 흔적이 커서 의사가 재검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합니다. 엄마 말로는 보건소 사람이 집에 데려가서 맛있는 거나 사주라고 했다더군요. 아무리 어려도 자기가 약하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지요. 그러니 안 아픈 애들이 부럽고, 걱정 없는 애들이 부럽고, 멋지고 강해지고 싶었지요. 그걸 소망이라고 할 것까진 없을 거예요. 그저 간절한 본능적인 바람이었지요. 순수한 본능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폼나고 낭만적으로 보이는 ‘꿈’이나 ‘소망’보다 몸이 간절히 원하는 것이었다고 하고 싶네요.
-동화작가의 길을 걷게 된 그간의 과정을 듣고 싶습니다. 이를테면 작가가 말하는 나의 동화작가로서의 경력이랄까요(동화작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를 포함해서요). =제가 할 줄 아는 건 어려서부터 끼적이는 것뿐이었어요. 6학년 때부터 저만의 노트를 해마다 만들어 가졌지요. 쓰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일상입니다. 할 수 있는 게 쓰는 것뿐이라 문예창작과에 지원했고, 그것이 삶의 방편이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취직자리도 경리나 화원의 점원 같은 것으로 구하려고 했으니까요. 그러다 독서지도사 과정을 공부할 기회를 가졌고, 그 옆반에서 동화창작 과정이 시작되었는데 거기서 공부하는 과정에 데뷔를 하게 됐습니다. 데뷔를 하고도 제 직업은 초등학생에게 논술을 가르치는 학원 선생이었어요. 글로 수입이 생긴다는 건 정말 늦게야 알게 된 셈이지요. 동화는 그 당시 직업과 연결지점이 컸고, 지금도 잘 맞는 옷을 찾았다는 생각입니다.
-쓰신 동화들 중 동물을 소재로 한 다른 작품이 있으신지요. 있다면 그건 어떤 이야기들인지요. =저는 동물을 등장시켜 쓰는 동화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훨씬 더 자유롭거든요. 쥐와 고양이, 나무귀신, 사람, 찌르레기, 오리가 등장하는 <과수원을 점령하라>(사계절), 개와 토끼, 다람쥐, 고라니가 등장하는 <해오름 골짜기 친구들>(사계절), 곰과 토끼, 그리고 너구리가 등장하는 <고약한 녀석이야>(웅진 주니어), 삽살개가 주인공인 <푸른 개 장발>(웅진 주니어), 여우 남매가 주인공인 <빈집에 온 손님>(아이세움)이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건 어떤 설명보다도 직접 읽어야 정확히 알 것입니다. <과수원을 점령하라>에는 사람을 포함하여 여섯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한 가지 사건을 각기 다른 주인공의 입장에서 받아들이게 되는 구성의 작품이에요. <해오름 골짜기 친구들>은 네 동물이 삶, 정체성, 독립, 분단 상황이라는 각기 다른 주제를 보여주는 연작 동화입니다. <푸른 개 장발>은 개를 키워서 용돈벌이를 하는 노인과 잡종 삽살개가 삶의 끄트머리에서 인간적인 화해를 하는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로 저는 이 작품을 참 좋아합니다. 우리 아버지의 삶을 개와 노인으로 나누어 스케치했거든요.
-<마당을 나온 암탉>에 관하여 “소망을 간직한 삶과 자유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 작품을 써 나갔다”고 쓰셨습니다. 이것에의 고민은 동화작가 ‘황선미의 작품세계’에서 어느 정도의 몫을 차지하고 있는 고민인가요. 혹은 그에 준하는 작가로서의 고민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요. =글쎄… 암탉의 모델이 말기암 환자였던 아버지였기 때문에 나로서는 육친을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글을 쓴다는 게 역겨우면서도 자유로움이 느껴졌어요. 그걸 지면에 다 표현하기는 어렵군요. 아버지가 마지막 순간까지 보였던 태도가 이 작품에 주제를 확보하게끔 했다는 것만 밝히지요. 여성의 이야기라기보다 소시민이었던 한 사람의 인생, 아버지의 인생과 삶을 이렇게 기억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닭, 이라는 동물이 친근함이라는 면에서 본다면 사실 사람과 가깝지는 않습니다. 귀엽지도 않습니다. 토끼나 고양이나 개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그것도 난용종 암탉은 더 낯설고 덜 친근합니다. 그럼에도 새끼 없는 토끼나 고양이나 개가 아니라 닭장에 갇힌 ‘닭’의 이야기를 떠올리게 된 과정이 듣고 싶습니다. =오리와 닭에 관한 사실적인 정보들이 시차를 두고 레이더에 걸렸어요. ‘길들여진 오리는 자기 알을 품지 않는다’는 정보와 자연스러운 상태의 암탉은 ‘털이 빠진 가슴으로 알을 품는다’는 상반된 정보였지요. 두 가지 정보가 부딪히며 ‘자유 의지’라는 주제를 낳았어요. 참 묘한 경험이었지요. 나머지는 그 정보들이 제 속에서 꿈틀대며 유기적인 관계를 형성해나갔다고 할 수 있어요. 좋은 글감은 생명력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운이 좋았습니다. 전에는 저도 닭이란 그저 부식재료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쓰면서 한창때의 닭은 중년여성 혹은 어머니처럼 보이기 시작했고, 닭이 사람처럼 말하는 꿈도 여러 번 꾸었어요. 어떤 정보 하나가 작품을 만들지는 않아요. 작가의 여러 경험과 삶의 많은 양태들이 선택되어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는 거지요.
-잎싹이라는 이름에 관하여 잎싹은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잎사귀는 꽃의 어머니야. 숨쉬고, 비바람을 견디고, 햇빛을 간직했다가 눈부시게 하얀 꽃을 키워내지. 아마 잎사귀가 아니면 나무는 못 살 거야. 잎사귀는 정말 훌륭하지.” 잎싹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초록머리(영화에서는 초록이입니다)라는 이름을 ‘작명’하게 된 작가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나요. =우리는 흔히 꽃이나 열매만 주목합니다. 그러나 잎사귀의 희생이 없다면 꽃도 열매도 불가능하지요. 이것은 우리 집에서 살다 간 군자란의 유산이라고 해야겠네요. 그리 비싸지도 예쁘지도 않은 길쭉한 군자란에 꽃이 피고 지는 걸 보는 과정에서 잎싹이라는 의미와 존재감이 생겨났습니다. ‘잎사귀는 어머니다’라는 은유를 얻었고 그것으로 일찌감치 수필을 쓴 적이 있는데 나중에 작품에 주인공 이름으로 가져다 썼어요.
-원작의 잎싹이와 영화의 잎싹이는 성격이 다소 다릅니다. 원작의 잎싹이가 조용하고 속이 깊은 반면 영화의 잎싹이는 좀더 활달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4차원’ 닭입니다. 이 둘 사이의 차이를 어떻게 보셨는지요. 어떤 느낌이 들던가요. =이는 전적으로 감독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영화가 되는 과정에서 영역에 맞는 인물로 재창조되는 건 당연하겠지요. 그렇다고 원작이 훼손되는 건 아니니까요. 전체를 활용하든 부분을 확장하든 그것은 원작을 읽어낸 사람의 감수성과 책임의식에 걸맞은 또 하나의 텍스트가 되는 거지요. 저는 그저 즐거운 관객이 되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이미 연극으로 여러 번 무대에 올랐고, 국악으로도 재창조되었고, 어떤 독자의 그림자극이 되기도 했어요. 매번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작품의 원작자라는 것만으로도 괜찮은 기분이에요. 원작이 어떤 지점이라면 거기서부터 다양한 사고가 작동하고 또 다른 결과가 파생되는 일은 문화의 다양성에 매우 긍정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잎싹의 목소리를 연기한 배우 문소리의 목소리 연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셨는지요. =처음에는 어색했어요. 단조로운 느낌도 들고, 컬러가 약하다고 할까. 애초 작업할 때 제 머리에는 빨강머리 앤 같은 주인공이 살아 움직였거든요. 그러나 그분을 선택한 전문가의 감각을 믿어도 될 것 같았어요. 나중에는 잎싹이 배우 문소리처럼 보이더라고요.
-영화 <마당을 나온 암탉>에는 원작에는 없던 캐릭터, 수달이 등장합니다. 그의 등장이 영화에서는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한 활기를 주는데요, 원작에는 없고 영화에는 있는 이 캐릭터에 대한 원작자의 인상을 듣고 싶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영화의 특성에 맞는 감독의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원작은 사실 무겁고 진중하지요. 사람이 등장한 작품이었다면 절대로 동화로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 원작에서도 그걸 상쇄한 부분이 훌륭한 일러스트입니다. 그때도 화가가 원고를 잘 읽어냈다고 생각했어요. 마찬가지로 달수의 등장이 쉽지 않은 이 작품을 웃게 만들고 모든 연령대가 같이 봐도 좋을 작품으로 잘 연출해냈다고 봅니다. 탁월한 선택이셨어요.
-영화에는 원작에는 없는 장면인, 청둥오리들의 파수꾼이 되려는 초록이의 비행 시합 장면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셨습니까.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지요. 처음에는 어리벙벙했고, 잎싹이 아닌 초록이 주인공으로 뒤바뀌는 인상이라 염려가 좀 됐어요. 그러나 몇번 보니까 감독의 고민이 보이더라고요. 살짝 걱정이 된 건 앞서 보여준 자연 상태와 비행의 속도를 감안하면 그렇게 오래 날고 나뭇가지 사이를 통과할 정도의 숲이 우리 환경에 가능할까… 싶은 거요. 그러나 아무도 이 부분은 거론하지 않더라고요. 아마 문학과 영화의 차이가 아닐까요.
-원작 <마당을 나온 암탉>의 대사들은 간결하면서도 온기가 있습니다. 대사를 쓸 때 고려하는 바가 있으신지요. =당연히 충분히 고민하고 고려합니다. 작가가 가진 건 이미지도 음악도 아닌 문자뿐이니 문자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야 합니다.
-영화는 이런저런 새로운 시도를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원작의 이야기를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원작이 표현하고자 했던 바에 대한 적극적인 공감일 겁니다. 그런데 이 엔딩을 두고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치고 너무 어두운 버전이 아니냐는 말들이 있었나 봅니다. 혹시 원작을 쓰실 때에도 그런 염려가 있으셨는지요. 혹은 어떤 확신으로 그 염려를 밀어내셨는지요. =안 했어요. 애초에 책을 낼 의도는 없었으니까요. 그저 글이 쓰고 싶었고, 만족할 만큼 쓰고 싶었어요. 그러나 책을 낸다면 동화책이 되어야 했고, 생태를 바탕으로 썼기 때문에 결말은 피할 수 없는 거였어요. 우리 아이들이 어른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는 존재라고 생각하나요? 천만에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얼마나 역동적이고 유기적인 존재인데요. 감추고 가릴 수 없다면 좋은 문화적 장치가 그 역할을 해야 하지 않나요? 동화는 아이들에게 예쁜 걸 보여주고 착한 아이들을 만들기 위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런 건 부분에 불과해요. 잎싹이 죽었으니까 새드엔딩이라고 보는 건 단순하지요. 잎싹은 비록 죽었으나 하고 싶은 걸 거의 다 한 인생입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그림책에 들어가는 글을 새로 쓰셨습니다. 애니메이션 장면을 그림으로 옮겨놓고 거기에 어떻게 조화로울지를 생각하면서 짧고 간명한 글로 다시 압축하는 작업이었을 텐데, 어떤 점들을 고려하셨는지요. 전격적인 동화를 쓰는 것과는 분명 좀 다른 작업인데요. =그와 반대입니다.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줄여볼까 했어요. 그런데 저의 글맛이 아니라 입에 붙지를 않더라고요. 또한 영화의 특성에 맞추느라 스토리라인이 바뀌었고. 영화 장면이지만 이것을 책으로 봐야 하는 독자라면 전체 이야기가 녹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원작을 펴고 작업했습니다. 장면이 먼저가 아니라 구성을 늘어놓고 필요한 장면을 가져온 셈이지요.
-동화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와 실력을 갖춰야 좋은 동화작가가 될 수 있을는지요. =동화가 어린이의 전유물이라는 편견부터 버려야 좀더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정확한 문장과 묘사력이 중요하니 문학 공부를 충분히 하기 바랍니다.
-캐나다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누군가가 “한국적 동화를 쓰신 분이 캐나다에 살고 계시는 줄은 몰랐다”며 말하더군요. 그 말을 듣고 궁금해졌습니다. 거기에 살고 계신 건지요. 어떤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혹은 짧거나 조금 긴 여행이신지요. =저는 서울에 삽니다. 방학을 이용해서 정기적으로 여행을 하는데 지금이 그 시기입니다. 학기 중에는 제대로 독서도 여행도 못하니 지금이 아주 중요한 시간이에요. 휴식과 작업을 할 절대적 시간이니까요. 올해는 이런저런 일이 자꾸 연결되니 집중이 잘 안돼 원고 작업이 밀리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