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다량 있습니다. <고지전>에서 가장 이상한 인물은 이 영화의 유일한 여자, “2초”로 불리는 차태경이다. “2초”는 사람이 쓰러지고 2초 뒤에 총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악어중대 병사들이 인민군 저격수에게 붙인 별명이다. 이 저격수의 정체가 밝혀지는 건 영화가 어느 정도 흐른 뒤인데, 그전에 먼저 애록고지의 특수성을 말해야 할 것이다. 악어중대로 파견된 강은표(신하균) 중위는 애록고지를 점령하기 위한 전투가 2년가량 지속되면서 남북한 병사들이 고지를 탈환할 때마다 벙커에 술, 담배, 사진, 편지 등을 숨겨두고 교환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런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남한 병사들은 차태경이라는 인민군 병사가 부모에게 전달해달라는 편지에 동봉한 사진을 본다. 사진 속에는 앳된 소녀가 웃고 있는데, 병사들은 소녀가 차태경의 여동생일 거라고 짐작하고 김수혁(고수)은 짓궂은 표정으로 그 사진은 자기가 갖겠다고 말한다. 뒤에서 좀더 자세히 말하겠지만, 이후 우리는 영화가 2초와 차태경, 그리고 사진 속 소녀를 동일 인물로 설정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그러하나, 영화에서 이들을 하나로 묶는 연결고리가 너무 헐겁고 이 극적인 사실을 이야기로 취합하는 데 어떤 영화적 야심도 찾아볼 수 없어서, 영화의 그런 설정에 쉽게 수긍하기가 어렵다. 여하튼 이 인물은 김옥빈이 연기했다. 나는 이 글에서 그녀를 차태경이 아닌 김옥빈으로 부르려고 한다. 그 편이 이 캐릭터를 설명하는 좀더 적절한 호칭이라는 생각이다.
김옥빈을 통과해야 인민군이 보인다
개봉 첫주차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나온 평들을 보면, 이상하리만치 김옥빈의 캐릭터에 대한 언급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이 영화의 화두가 남자들의 전쟁을 통해서 전쟁의 본질을 짚어내는 데 있고 그녀의 분량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이 전쟁 이야기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생각보다 중요하고 복합적이다. 그녀가 그 위상에 걸맞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고지전>의 전체 이야기 구조를 휘청거리게 만드는 결함이며, 나는 영화가 그 점을 사소하게 취급한 게 의아하다. 차태경이 알고 보니 여자라는 설정, 남한 병사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2초가 바로 그녀라는 설정은 다소 상투적일 수는 있어도 단순히 정보 나열로만 그칠 수 없는, 일단 그런 설정을 취한 순간 어쨌든 이야기의 굵은 줄기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고지전>은 어느 한편의 시점을 두둔하지 않고 전쟁 그 자체의 참혹함을 말하는 반전영화로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영화다. 달리 말해, 애록고지를 중심으로 남한 병사들과 북한 병사들을 번갈아 등장시킬 때, 이 영화는 (비록 남한 병사들에게 훨씬 무게를 두지만) 양 진영에 공평한 영화적 자리를 주어야 함을 의식하고 있다. 그 시도가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김옥빈이 중요해지는 건 이 지점에서다. 영화는 거의 언제나 그녀를 통과해서 인민군의 자리로 넘어간다.
여러모로 그녀는 더 설명되어야 할 인물이다. 그녀의 개인사가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이 인물의 구체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문제다. 지난호(813호) <고지전> 관련 인터뷰에서 김도훈과 강병진은 이 캐릭터에 대해 짧게 호의적인 평가를 했고 장훈도 김옥빈 역할에 대해 잠시 언급했는데, 누구도 이 캐릭터를 크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김옥빈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이유도 없이 전쟁터에 끌려가서 거기서 자란 캐릭터다. 아무런 생각 없이 사람을 죽이는 거다. 직접 만나면 너무나도 연약한 여자아이라 다들 놀라게 되는 캐릭터다”)만이 그녀에 대해 알 수 있는 가장 자세한 정보다. 장훈의 설명은 좀 길지만 인용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적은 분량에 비해 아이 같기도 하고 소년 같기도 하고, 여자처럼 보이기도 하는 등 다양한 임팩트를 가진 캐릭터였다. 멜로의 분량을 더 넣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도 있었는데, 그랬다가는 다른 부분의 색깔이 바랠 것 같더라. 또 현재 단계보다 덜 넣지 않은 건 김옥빈이라는 배우가 주는 기대 때문이었다. 사실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분량이 더 적었고, 더 차가운 인물이었다.” 나는 편집단계에서 김옥빈의 분량이 상당 부분 잘린 건 아닐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장훈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애초 비중이 적은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뒤에도, 장훈의 이런 설명을 읽은 뒤에도, 그녀와 관련해서 계속 맴도는 궁금증이 있다. 그렇다면 <고지전>은 왜 그녀를 필요로 하는가. 장훈의 말처럼, 멜로라인은 최대한 배제하면서도 인민군 저격수로 왜 ‘여자’를 필요로 하는가.
한국전쟁 자체가 아니라 분단 뒤 상황을 배경으로 삼은 영화들이긴 하지만, 쉽게 떠오르는 예로 <쉬리>의 이방희(이명현)와 <공동경비구역 JSA>의 소피가 있다. 이방희는 김옥빈처럼 북한군 출신이지만, 이 영화는 이방희와 남한 정보기관 요원의 멜로를 적극 끌어들였고, <공동경비구역 JSA>의 소피는 애초 멜로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 남북의 경계에 선 중립국의 위치에 있었다. 분단의 상처를 고스란히 몸으로 체현하던 두 여인은 어쨌든 장르 안에서 충분히 명징한 인물이다. 그런데 김옥빈은 어딘지 어정쩡하다. 다분히 소녀처럼 보이는 여자가 사람을 죽이고도 태연하게 초콜릿을 먹는 전쟁기계로 그려지는 건 장르적으로 납득할 만한 모습이지만, 문제는 영화가 여기에 멜로의 기운을 허술하게 끼워넣을 때 생긴다. 앞서 장훈은 멜로의 분량을 더 넣으면 영화 전체의 색이 달라질 것을 우려했다고 말했는데, 바로 그 점, 김옥빈과 관련된 멜로라인을 최대한 지우면서도 그녀를 멜로의 가능성 속에 던져둔 것이 결과적으로 그녀의 캐릭터를 애매하게 만들고 있다. 그녀가 전쟁영화의 장르가 필요로 하는 여자의 전형에서 다른 존재로 도약하는 게 아니라, 그런 전형에서 어중간하게 미끄러진 존재로 보인다는 것이다.
‘빨갱이’를 재현하는 태도에 편견이
인민군이 상대적으로 적게 등장하는 이 영화에서 인민군의 대표성은 김옥빈과 인민군 중대장인 현정윤(류승룡)에게 주어지는데, 수컷들의 전쟁을 더 부각하려면 강은표의 첫 플래시백에 강렬한 인상으로 등장하고 영화의 결말에 강은표와 담배를 나눠 피운 뒤 죽는 현정윤에게 김옥빈의 자리를 주는 게 나았을 것이다. 만약 나약함과 잔인함이 공존하는, 아직 덜 자란 전쟁기계의 모습이 필요했다면, 김옥빈의 자리를 소년병으로 대체했어도 무방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나는 이 영화가 그녀의 여성성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야기 안에서 그녀와 관련해서라면, 강은표와 김수혁의 캐릭터까지, 혹은 두 남자의 관계까지 의문투성이인 지점들, 도무지 설명되지 않는 순간들이 많다.
강은표의 경우에서 시작해보자. 아직 영화 안팎으로 김옥빈의 정체가 드러나기 전, 그녀는 민간인의 모습으로 첫 등장하는데, 그때 강은표가 그녀와 마주친다. 겁에 질린 듯한 김옥빈의 표정을 보고 강은표는 초콜릿을 쥐어준다. 그런 다음 여러 차례 고지의 주인이 바뀐다. 다시 남한 병사들이 고지를 차지하게 되었을 때, 그들은 차태경이라는 이름이 써진 편지와 위에서 언급한 김옥빈의 사진을 본다. 강은표는 김옥빈의 얼굴을 알아보고 잠시 놀라지만,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남한 병사들이 다시 전장에 나선 날, 이들 중 가장 어린 신임병 남성식(이다윗)이 말로만 듣던 ‘2초’의 총격을 받고 죽는다. 그때 처음 2초의 시점숏이 나오고 뒤이어 2초를 뒤쫓는 강은표에 의해 그 저격수가 김옥빈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강은표는 그녀가 도망치도록 내버려둔다. 아마도 그는 자신이 초콜릿을 준 그 소녀가 2초라는 걸 즉각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이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수많은 남한 병사들이 그녀에 의해 죽었고, 악어중대 병사들이 그 저격수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가 그런 선택을 한 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김수혁의 경우도 그렇다. 그는 사진 속 김옥빈을 보고 자신의 애인으로 점찍어두는데, 이후 어디서도 김수혁이 그녀에 대해 언급하는 장면은 없다. 전쟁에 지친 남자들의 장난 반, 진담 반의 행동이라고 여기면 이 장면이 그렇게 지나가는 게 그리 이상할 건 없지만, 그가 2초의 공격을 받은 뒤 보이는 행동들은 좀 이상하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2초를 향해 총을 쏘던 그는 총의 뷰파인더를 통해 김옥빈의 얼굴을 보았고, 정황상 그녀를 알아본 것 같다. 결국 그는 2초의 총격으로 죽어가는데, 그때 달려온 강은표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 강은표와 김수혁은 2초가 사진 속의 그 소녀라는 정보를 공유하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에 강은표가 2초를 결국 칼로 찔러 죽이기는 하지만, 그전까지 이 두 남자에게는 그녀를 보호하는 것 같은, 그녀의 정체를 못 본 체 구는 것 같은 인상이 있다. 이들과 여자 사이에 공격을 주저해야 할 어떤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무엇을 망설이는 걸까.
2초가 동정과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소녀이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게으른 대답이고 정황상으로도 말이 안된다. 그녀는 수많은 남한 병사들을 살해한 저격수다. 연이은 전투로 이제는 포로가 된 인민군을 한치의 망설임 없이도 죽이는 데 익숙해진 이들이, 게다가 같은 소속의 상관까지 쏴 죽이는 남자가 이 소녀에게만 인간적인 마음을 주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영화 내적으로 그 이유는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차라리 나는 그 이유가 전혀 다른 지점에, 이를테면 강은표와 김수혁, 둘의 관계 안에서 설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은 엉뚱한 생각을 해보았다. 두 남자의 관계는 처음부터 어딘지 좀 찜찜한 느낌을 내포하고 있었다. 강은표가 김수혁을 회상하는 플래시백에서 인민군이 강은표와 동료들은 풀어주고 김수혁만 포로로 잡아가는 장면이 나온다. 몇년 만에 이들이 재회할 때, 여기에는 살아 있는 전우를 다시 만난 감격보다는 묘한 긴장감과 경계심이 감도는 것 같다. 2년 전, 인민군들은 왜 김수혁만을 끌고 갔는지, 그는 어떻게 탈출한 건지, 그 일을 계기로 두 남자 사이에 원망과 죄의식과 경쟁심이 작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묻고 싶어진다. 지독한 전장을 겪고 잔인해진 김수혁과 그런 그를 의심의 눈초리로 관찰하는 강은표의 변화된 관계에 대해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김옥빈의 실체가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그녀와 두 남자의 관계가 중요한 것도 아니라면, 혹시 그녀를 환영처럼 중심에 두고 실은 두 남자가 맺는 관계가 중요한 것인가. 하지만 영화에서 그런 힌트들을 발전시킬 만한 순간들은 없고, 여기서 더 논의를 진행하면 영화 밖으로 너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김옥빈의 시선으로 일련의 사건들을 읽으면 다른 무언가가 보일까. 그녀는 강은표와 김수혁이 어떤 식으로든 그녀를 의식하는 것과 달리, 두 남자를 모른다. 강은표와 따로 두번이나 대면한 적이 있고, 나중에 그의 손에 죽을 때에도 그녀가 그를 알아보는 건지, 아닌지 잘 모르겠다. 그녀는 김옥빈 말처럼 “아무런 생각 없이 사람을 죽이는” 소녀이기 때문에 영화는 그 여부에 별반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김수혁을 죽이고 나서, 고지로 돌아와 김수혁이 쓴 편지를 읽으며 천진한 표정을 짓고 이후 강은표가 전해준 자신의 사진 뒤에 새겨진 수혁이라는 이름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그녀는 혹시 강은표를 김수혁으로 착각하고 있을까. 아마도 그녀는 끝내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도 그녀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알고 있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남자들은 그녀의 정체를 모른 체하며 영화는 그녀의 죽음을 미루고,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무지의 영역 속에 가둬진다. 부모와 함께한 행복한 순간이 포착된 사진으로 그녀를 먼저 대면한 우리로서는 이후 그녀가 잔인한 킬러의 본색을 드러내어도 그녀 또한 전쟁의 희생양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 본질만큼은 무지하고 순진한 아이. 장훈이 이 영화가 “빨갱이와 싸우는 게 아니라 전쟁과 싸우는” 거라고 여러 차례 강조할 때, 인민군의 대표로 이 아이를 내세운 이유를 알 것 같다. 덕분에 이데올로기적 적대감은 희석되지만, 이데올로기적 차원의 편견이나 불균형이 아니라, 어쩌면 그보다 근본적인 캐릭터의 두께 차원에서, 혹은 그들에게 주어진 앎의 차원에서 두 인물군의 균형은 심하게 맞지 않다. 기존의 반공영화들의 문제는 엄밀히 말해 ‘빨갱이’를 적으로 상정해서가 아니라, ‘빨갱이’를 재현하는 태도에 편견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빨갱이’를 구체적인 인간이 아닌 이데올로기적 집합으로 호명하는 것이 문제다. 그런 구체성의 차원에서라면, 김옥빈이 기존의 ‘빨갱이’들보다 더 나아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선악의 구분은 버렸지만…
뜨거운 감정을 피하려 했다는 장훈의 말은 유일한 여성 캐릭터를 기존의 전쟁물에서처럼 신파적으로 소비하고 싶지 않았다는 뜻으로도 들린다. 그러나 영화는 또 다른 함정에 빠지고 만다. <고지전>은 멜로의 신파적 감정이 일어나는 순간은 차단하면서도 거기 존재하지 않는, 혹은 애초 성립 불가능한 멜로를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존재하게 될 것처럼 상정하거나 상상하며 인물들을 굴린다. 그때, 김옥빈은 남자들의 리얼한 영역에도 들어오지 못하고, 전쟁영화라는 장르적 영역에서도 불충분하거나 과잉인 채로 떠돈다. 그녀는 한마디로 추상적인 존재라고 말해질 수밖에 없다. 영화가, 그리고 두 남자들이 이 추상과 마주할 때마다, 혹은 없는 걸 있는 것처럼 가정할 때마다 서사적 구멍이 생기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빨갱이’와 싸우는 대신 전쟁과 싸우려는 영화의 의중은 알겠지만, 그게 선악의 구분을 버리는 대신, 한쪽을 추상으로 마비시킨 결과라면, 과연 <고지전>을 한국전에 대한 새로운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