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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의 눈높이를 사려깊게 맞췄네
이화정 2011-08-02

<마당을 나온 암탉>이 개척한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지형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던가. <마당을 나온 암탉>의 암탉 ‘잎싹’의 울음은 놀랍게도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명필름의 프로덕션 노하우, 오돌또기 프로덕션의 애니메이션 제작 노하우가 대중과의 만남이라는 목표로 수렴된 결과다.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으로 새롭게 부화하기까지 꼬박 6년의 시간이 걸렸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한국 애니메이션에 제시한 새로운 지점을 살펴보고, 애니메이션을 연출한 오성윤 감독에게 작품의 제작과정을 들어보았다.

엄마가 운다. 엄마가 아니어도 운다. 그러니 아이들도 따라 운다. 너도나도 운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준 감동의 크기는 컸다. 개봉 전 가진 시사회 뒤 극장을 나서며 한 엄마 관객이 말한다. “애들 보여주러 왔다가 내가 울고 나가네.” 오열을 했다는 동료 기자가 거든다. “난 엄마와 동물에 약한데 이건 동물 엄마 이야기잖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지 않은 나는(어디까지나 개인적 성향이지만) 졸지에 몰인정한 인간으로 지탄의 대상이 됐다. 울었다, 는 시장에서의 성공을 감지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바로미터다. 이해도도 연령대도 다른 관객이지만 신기하게도 감동의 지점은 같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을 보러 온 가족이 극장 갔다가 손잡고 들어간 어른까지 감동하게 만드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보편적 정서와 퀄리티가 보장된다면 메인 타깃층 이외의 관객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단 전략이다. 지극히 간단해 보이지만 이 단순한 전략은 지금까지 한국 장편애니메이션 프로젝트들이 간과해온 지점이다. 장편애니메이션은 곧 성인용이어야 승산이 있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마당을 나온 암탉>은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물론 이 작은 발상의 전환이 한국 장편애니메이션이 걸어온 지난한 흥행 실패의 역사에 해답과 기준을 제시해주었다.

부모와 자식 세대 아우르는 각색의 힘

<마당을 나온 암탉>은 2000년 발간, 100만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아동문학의 베스트셀러로 자리한 황선미 작가의 동명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원작은 양계장 안에 갇혀 알만 낳는 난형성 닭 ‘잎싹’이 양계장을 탈출하면서 겪는 자유에의 의지, 그리고 모성애에서 출발해 자연의 섭리를 이해하기까지의 과정을 아우른다. 고뇌하는 암탉 잎싹의 자아는 철학적인 주제의식과 심오한 자연관을 내포하며 소설을 이끌어간다. 애니메이션은 원작이 가진 세계관을 고스란히 빌려오지만 원작 이외의 요소들이 여럿 첨가되어 다채로움을 준다. 가장 크게 강화된 건 잎싹(문소리)이 품은 알이자 청둥오리 초록(유승호)의 성장이다. 초록이 엄마와 같은 닭이 아닌 청둥오리로서 갈등하고 정체성을 찾아가고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은 잎싹 캐릭터와 동등한 비중으로 영화의 한축을 차지한다. 각각의 세대를 대표하는 잎싹과 초록의 캐릭터의 배치는 <마당을 나온 암탉>이 폭넓은 관객층에 어필할 수 있는 역할을 한다.

양계장을 탈출한 암탉 잎싹의 모험은, 농장을 장악하고 착취하는 인간에게 반대하는 동물의 반란을 그린 존 할라스 감독의 영국 애니메이션 <동물농장>(1954)을 연상시킨다. 반면 성장하면서 점차 철새 무리를 이끌 파수꾼으로서의 용맹을 드러내는 초록의 무용담은 할리우드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1994)이나 <인크레더블>(2004)에서의 아메리칸 영웅주의를 담고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는 이 두 요소가 모두 개별적으로 포진해 있으며, 각각의 이야기로 극의 재미에 봉사한다. 그러나 잎싹과 초록의 관계를 모자 관계로 유기적으로 결합시킴으로써 영화는 할리우드와 유럽과는 사뭇 다른 한국적 정서를 표현하는 새로운 단계로 나아간다. 암탉의 자유의지는 평생 알만 낳는 양계장의 닭들을 선동하거나 철학적 사색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모성이라는 본능적인 감정을 내포하며, 초록의 비행은 혼자만의 영웅담을 완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을 길러준 이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환원된다. 이 과정의 표현방식은 핏줄을 나눈 한국적인 부모자식간의 모습과 다분히 겹친다. 비록 이종의 알이지만 양계장 주인에게 잡힌 초록을 구하기 위해 제 몸을 날려 돌진한다거나 초록이 발에 묶인 끈을 끊어주려다 부리가 다 닳을지언정 개의치 않는 잎싹의 모습은 천생 자식을 위해 몸 바친 부모 세대의 헌신과 닮아 있다. 철새의 이동을 감지한 초록이 제 살길을 찾기 위해 보이는 반항심에 이르면서 영화는 부모와 자식의 골, 세대간의 갈등을 세밀하게 포착해낸다.

13분 동안 거세게 몰아치는 철새들의 비행

탄탄한 스토리는 <마당을 나온 암탉>이 풀어낸 가장 기초적이고 튼실한 해법이다. 그러나 94분의 러닝타임을 지루하지 않게 이끈 동력은 따로 있다. 거세게 몰아치듯 배치한 다양한 액션신의 활용은 <마당을 나온 암탉>을 원작의 틀에 가두지 않고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로 온전히 편입하게 만드는 막강한 장치다. 영화에서 가장 스케일이 큰 장면 연출은 단연 파수꾼 선발을 위해 초록이 참가한 시합장면이다. 목표지점을 향해 날아가는 철새의 비행장면 한신에 영화가 허용한 시간은 무려 13분에 달한다. 단순히 일직선으로 날아가는 장면을 상상한다면 오산이다. 경주의 시작과 함께 청둥오리들은 호수의 물살을 박차고 상승한다. 이는 수직과 하강의 다채로운 움직임을 구현한 이 장면의 시작에 불과하다. 긴박감 넘치는 비행은 하늘의 맨 꼭대기에 있는 구름부터 숲속의 나뭇가지 그리고 배수로 안쪽까지 다양한 지형지물의 활용과 함께 긴박감있게 전개된다. 마치 <해리 포터> 시리즈의 볼거리인 퀴디치 게임을 연상할 정도로 이 장면의 속도감과 스케일이 주는 파워는 엄청나다. 관객의 눈의 속도가 빠르게 날아가는 철새의 속도를 감당해내지 못할 지경의 순간, 이를 조절할 완급장치도 마련된다. 빠른 카메라워크, 속도감있는 장면 연출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보조 캐릭터인 수달(박철민)의 익살스런 해설이 삽입되며, 경기가 펼쳐지는 장소와는 별도로 한가하기 그지없는 마당의 풍경이 경기의 하이라이트를 뚫고 배치된다. 오케스트라가 동원된 음악 역시 액션의 호흡을 돕는 중요한 요소다. 상승과 하강, 긴장과 이완, 진지함과 유머 사이를 거리낌없이 오가는 이 장면은 만드는 데 꼬박 1년 이상이 걸린 장면으로, 한국영화사의 한 장면으로 기억하기에 손색이 없는 명장면이다. 초록을 구하기 위해 동원된 닭들의 반란신, 애꾸눈 족제비의 공격에 맞서는 나그네(최민식)와 이후 잎싹과 초록이 애꾸눈과 맞서는 장면 등 긴장을 놓치기 힘든 다양한 액션신들은 <마당을 나온 암탉>이 구현해내는 성공적인 지점이다. 100% 2D 셀애니메이션을 바탕으로 <마당을 나온 암탉>은 3D의 공간감이 없이 이 화려한 장면들의 연출을 모두 소화해낸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는 지점들은 이토록 다채롭다. 그럼에도 이 작품을 명불허전으로 만드는 것은 작품의 말미에서 다시 새롭게 찾을 수 있다. 어느덧 장성해 넓은 세상을 보러 간 초록을 떠나보낸 뒤 잎싹은 홀로 되뇐다. “나는 왜 한번도 날아야겠다는 생각을 안 했을까?” 봄의 마당을 나와, 여름의 늪에서의 생활을 하다, 마침내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과 초록이 떠나는 겨울이라는 사계절의 순환을 겪으면서 암탉은 자신의 지난 삶을 오롯이 반추한다. 그 당연한 자연의 순환과 흐름 속에 선 잎싹은 청년기의 철새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늙고 병들어 있으며 초라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가장 나약해진 모습으로 그는 제 자식에 대한 사랑뿐만 아니라 이 거대한 지구, 우주의 법칙에 한발 더 나아가는 위대한 모습을 선사한다. 애니메이션으로 담아내기 버거운 원작의 결론 앞에서 <마당을 나온 암탉>은 주저할 틈 없이 확고한 결단을 내린다. 다소 파격적이지만 이 선택이 주는 울림은 어마하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도전한 모든 지점들과 더불어 이 결론 역시 도전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한국 애니메이션도 비로소 좁은 마당을 나올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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