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 블랭, < Untitled >, 2007, Light jet print two face mounted on Diasec, 180x153cm
<오늘의 프랑스 미술: Marcel duchamp Prize전>
10월1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02-2188-6000 마르셀 뒤샹이 아니었더라면, 이제까지 변기는 변기이고 숟가락은 숟가락이었을 것이다. 그가 남성용 소변기를 <샘>이라 부르지 않고, “회화는 망했다”고 외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현대미술의 가장 중요한 개념인 ‘오브제’를 잃을 뻔했다. ‘오브제’는 잘 알려져 있듯 예술과 무관해 보이는 물건을 예술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유발하는 상징적인 물체를 뜻한다. 뒤샹 이후 수많은 예술가들이 오브제를 가지고 ‘놀았다’. 9월25일까지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는 휘트니미술관 소장품전 <이것이 미국미술이다>에서 만나볼 수 있는 만 레이, 재스퍼 존스, 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오브제를 작품의 키워드로 사용한 작가들이 그 예다. 팝아트 작품에 친숙한 한국 관객에겐 앤디 워홀의 코카콜라와 톰 웨셀만의 TV 속 미녀 등 지극히 미국적인 오브제가 친숙할 수 있겠지만, 여기 진짜 뒤샹의 후예들이 만든 작품들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프랑스의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 수상자 및 후보자 중 16명을 선정해 ‘오늘의 프랑스 미술’이란 제목 아래 전시를 연다. 한마디로 프랑스적인 오브제가 어떤 것인지 살펴볼 좋은 기회라는 얘기다.
이번 전시에 참여하는 열여섯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으로부터 받은 인상부터 말하자면, 예술과 철학의 나라 출신다운 사색이 느껴진다. 미국 작가들의 오브제는 대량생산과 소비문화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만 프랑스 작가들의 오브제는 조금 더 추상적이고 복합적인 개념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사진가 발레리 블랭의 작품이 있다. 그의 관심은 ‘빛’이다. 그는 빛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오브제를 선택해 작품을 만든다. 포도의 알갱이들이 빛에 반사돼 저마다 다른 각도로 반짝거리는 <Untitled>만 보아도 그가 추구하는 작품관이 어떤 것인지를 쉽게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설치작가 미셸 블라지(<Foam Fountain>)는 죽음 속에서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에 관심이 있다. 부패하면 미생물이 생겨나는 ‘음식’은 그런 그의 관심을 대변하는 오브제다. 이 밖에도 현실과 그 현실이 담고 있는 추억 사이의 혼돈을 포착해 작품에 담아내는 비디오 아티스트 로랑 그라소(<Projection>), 예술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 시각예술과 문학, 음악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시를 설치작품에 도입하기도 하는 사단 아피프(<Stalatites>)의 작품 등이 소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