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 점심시간이었다. 근처 식당에 앉아 밥술을 뜨는데 어디선가 ‘뚜뚜루뚜루뚜뚜’ 하는 노래 추임새가 들려왔다. 소리의 근원은 컴퓨터에 연결된 식당 스피커. 점점 더 급박한 호흡으로 달려가는 그 ‘뚜뚜루뚜루뚜뚜’에 정신이 팔려 밥을 대충 우겨넣고 사무실로 돌아와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 검색어는 당연히 ‘뚜뚜루뚜루뚜뚜’. 아 이게 장안의 화제라는 김범수 버전의 <님과 함께>로구나!
이소라의 <넘버원>도 식당에서 들을 노래는 아니긴 하다. 오늘도 한목숨 이어가자고 밥숟가락을 들었는데, 저승의 뭐라도 능히 소환할 수 있을 것 같은 ‘흐어으흐으흐’ 하는 노래 소리가 들려오면 괜히 국건더기를 뒤적이며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군가?’를 되묻게 된다. MBC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를 생방송으로 보게 되면 누군가 탈락하게 되는 형식의 긴장감도 있고 무대에 도취된 가수와 관객의 영상이 있으니 감동을 주거나 얻기 쉬운 상황이겠지만 그런 요소가 빠진 채로 잔뜩 고양된 무언가가 해가 창창한 대낮 식당가를 휘어잡을 때의 그 애매하고 기묘한 공기 덕분에 나는 <나가수>를 이상한 방식으로 즐기게 된 셈이다. 소리와 이미지와 장소의 사적인 조합이 소환하는 기억들.
다른 오디션, 서바이벌 형식의 프로그램을 볼 때도 핀트는 조금씩 어긋난다. 요리사를 선발하는 QTV의 <예스 셰프>는 매회 마지막에 에드워드 권이 도전자의 가슴에 붙은 벨크로 이름표를 찌익- 뜯어내며 “당쒼은,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외치는 것이 프로그램의 공식이다. 그런데 이것도 어쩐지 웃긴 그림이 떠오르는 것이다. 탈락 위기에 놓인 도전자가 이름표에 꼼꼼하게 바느질을 해놓는다든지, 분노한 에드워드 권이 가위를 찾는다든지. 실제로 이 비슷한 웃긴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팀이 패배한 책임을 지겠다며 한 도전자가 나서서 자기의 이름표를 자기가 떼버린 것이다. 중요한 역할을 침범당한 에드워드 권은 도전자의 이름표를 다시 가슴팍에 붙여서 자리로 들여보냈다.
KBS <휴먼 서바이벌 도전자>도 처음 시작부터 어쩐지 두 끼니쯤 굶은 것 같은 얼굴로 등장한 진행자 정진영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정작 도전자들은 워터파크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선남선녀들마냥 생기 넘치는 모습인데, 갓 2회 진행한 정진영은 자꾸만 수척해져 간다. 게임에 져서 점심을 굶거나 저녁에 야영을 한 팀원들의 얼굴은 반짝반짝한데, 그저 진행을 하는 정진영 본인이 밥을 굶고 노숙을 한 것 같은 몰골로 사뭇 진지한 것이다. 무인도도 아니고 아름다운 하와이에서, 이게 묘하게 빵 터진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이런 오디션이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본다고 모두 다 이글이글한 열기, 별로 따르고 싶지 않은 규칙들, 설정 안에서의 절박함에 동의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휴먼 서바이벌 도전자>에서 탈락자 결정의 순간을 견디느라 피식 웃어버린 모 도전자에게 진지하지 않다고 질책하는 노 교수 심사위원도 사실 이렇게 웃긴 코미디가 없다. 반말하면 탈락시킬 기세다. 아무튼 이 추세로 가면 내년쯤엔 각종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들을 모아 노래도 하고, 요리도 하고, 옷도 짓고, 연기도 하고, 운동도 하는, 서바이벌 왕중왕 프로그램을 꾸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어딘가 엇나가서 구경하고 낄낄거리는 사람이 나뿐일 리는 없지. 우리 나사 빠진 사람들은 그때를 기다려 우승자를 세계대통령으로 추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