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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뜻밖의 호사
황두진(건축가) 2011-07-14

<남극의 쉐프>에서 발견한 극한 환경에서 쾌적성 확보하는 비법

해안가에 자리한 남극 세종과학기지

나에게 한장의 사진이 있다. 방한복으로 중무장한 지인이 액자를 들고 있고 거기엔 내 이름이 담겨 있다. 배경에는 ‘Geographic South Pole’이라고 써 있다. 남극점에서 찍은 사진이다. 여행사 대표인 지인은 색다른 여행 상품의 개발을 위해 그 먼 곳까지 갔다. 이 사진을 찍은 직후 인근 기지를 방문, 반팔에 반바지로 돌아다니는 다국적 연구원들과 즐겁게 놀았다고 한다. 절대 오지 남극에 대한 내 환상은 이렇게 깨졌다.

대한민국도 세종기지에 이어 제2남극기지를 추진 중이다. 호기심에 남극에 있는 각국 기지들을 찾아보니 대부분 해안가에 자리한다. 온난한 시즌에 쇄빙선으로 접근할 수 있는가가 큰 변수이기 때문이란다. 그중 하나, 물론 가상이긴 하지만 일본 기지, 돔 후지(Dome Fuji)가 영화 <남극의 쉐프>의 무대다.

<남극의 쉐프>에는 이렇다 할 스토리가 없는 대신 미묘함이 있다. 영화는 좁은 공간에 모여 사는 남자들의 희로애락을 가감없이 그려낸다. 어떤 이들은 답답함에 못 이겨 바이러스도 못 산다는 극한의 추위 속으로 뛰쳐나가기도 하고, 전화 통화 중 애인에게 이별을 통보받기도 한다. 물론 묵묵히 연구에 몰두하는 사람들도 있다.

절대 오지에서 누리는 호사 <남극의 쉐프>

절대 오지에서 누리는 호사 <남극의 쉐프>

주방장 니시무라는 말이 없고 수줍다. 일본의 다른 음식영화나 만화, 소설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앞치마 두른 사무라이 같은 비장함도 없다. 그는 타인을 배려하고 유머가 있으며, 무엇보다 음식 만드는 즐거움을 안다. 니시무라 덕분에 대원들은 동토의 남극에서, 오히려 일본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맛의 호사를 누린다. 이 통쾌한 역설이 이 영화의 매력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극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오히려 늘어난다. 장기간 우주여행, 극지 및 오지 연구 등 앞으로 인간의 거주 능력을 테스트하는 상황들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지금까지 주로 인간이 참고 견디는 쪽으로 문제를 해결해왔다면 앞으로는 쾌적성이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다. <남극의 쉐프>를 보면서 좋은 음식을 제공하는 것도 의외의 답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뜻밖의 호사는 의외로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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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겨례 류우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