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도련님 사는 게 별개 아니유. 삼시 세끼 밥 먹고 이리 등 대고 서로 의지하며 살면 되는 거유."
40년 전 등에 업힌 채 친엄마를 찾으며 울다 잠든 꼬마 영규를 향해 가사도우미 순금(윤여정 분)은 이렇게 혼잣말을 하며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자신의 목 아래로 드리워진 잠든 영규의 두 손을 끈으로 묶어 행여 업고 가다 아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순금은 이어 한마디를 보탰다. "모자란다고 버리는 게 부모여…".
40년 후 '바보' 영규(정보석)는 치매를 앓는 백발노인이 된 순금을 등에 업고 즐겁게 길을 걸었다. 영규 역시 순금이 떨어질세라 자신의 목 아래로 힘없이 떨어진 순금의 두 손을 끈으로 묶었다.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영규와 순금은 핏줄보다 더 진한 정을 나누는 모자지간이 됐다. 그리고 순금은 영규의 넓은 등 뒤에서 모든 것을 놓고 영원한 잠에 빠졌다.
MBC 주말극 '내 마음이 들리니?'가 10일 욕쟁이 할머니 순금과 함께 모든 갈등을 떠나보내며 막을 내렸다.
드라마는 영규가 어머니 순금을 위해 시도때도없이 불렀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한평생 살고싶네'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며 용서와 화해, 사랑, 그리고 사람에 대한 믿음을 화폭에 담았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15.6%. 지난 4월2일 12.6%로 출발한 드라마의 30회 평균시청률은 15.4%였으며, 최고 시청률은 지난 4월30일의 21.6%였다.
◇"아이구 시상에 이렇게 고마울 수가. 참말루 고맙네유" =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순금은 주인댁이 모자란다고 버리고 간 아들을 친자식 이상으로 극진히 키웠다.
입만 열면 욕이 나와 '욕쟁이'라 불리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따뜻한 그의 사랑은 이 드라마가 보여주려고 했던 휴머니즘이었다.
'내 마음이 들리니?'는 핏줄을 넘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다. 드라마는 과연 가족이란 무엇인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막장 드라마가 판치는 현실 속에서 여운이 진하게 남는 휴먼스토리를 펼쳐냈다.
순금의 사랑은 영규가 이어받았다. 영규는 순금의 딸 신애(강문영)가 버리고 간 아들 마루(남궁민)를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마루가 '바보 아빠'가 싫다며 갖은 구박과 멸시를 해도 다 감내하며 마루를 향해 그야말로 '바보 같은 맹목적인 사랑'을 보냈다.
순금과 마루는 또 생판 남인 우리(황정음)도 가족으로 받아들여 16년을 함께 지냈다. 순금-마루-우리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남이지만 그 어떤 핏줄보다 끈끈하고 애틋한 정을 나누며 진짜 가족을 이루며 살았다.
그렇게 '남'에게 사랑을 베풀며 살아온 순금은 그러나 치매로 정신을 놓은 뒤 자신을 돌보는 '남'들에게 "고맙다"며 시종 고개를 주억거린다.
자신이 한평생 거둬 키운 아들과 손녀에게 "아이구 세상에 이렇게 고마울 수가. 참말루 고맙네요"라며 감사한다.
드라마는 그런 순금을 통해 우리가 살면서 고마움을, 사랑함을 혹시 잊고 사는 것은 아닌지 물었다.
또한 비록 불순한 의도였지만 현실(이혜영)이 마루를 16년간 뒷바라지한 것이나, 진철(송승환)이 동주(김재원)의 의붓아버지라는 것도 가족의 의미를 확장시키기 위한 설정이었다.
드라마는 이들의 갈등을 극대화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저마다의 가슴 밑바닥에 자리한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을 끌어내며 사람이 사람인 이유를 보여줬다.
◇"내 마음이 들리니?" = 이 드라마의 또 다른 한 축은 장애였다.
재벌 2세지만 사고로 귀가 안 들리게 된 동주가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몸의 장애와 마음의 장애를 대비시키며 장애의 의미 역시 확장시켰다.
그리고 결국 동주가 "난 안 들리는 게 아니라 더 잘 보는 거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하며 귀가 멀쩡히 들리면서도 남의 말을 듣지 않는, 남의 마음을 들으려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냈다.
영규 역시 지적장애가 있는 바보지만 드라마는 마음의 장애로 세상을 똑바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이 과연 영규에게 바보라고 할 수 있는지 질문한다.
욕망에 사로잡혀, 복수심의 노예가 돼 주변을 돌아보지 않았던 자들과 비록 귀가, 머리가 정상이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그들에게 진실한 사랑을 베풀 수 있는 동주와 영규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내 마음이 들리니?'는 이처럼 문예작품 같은 면모로 주말 밤 깊은 여운을 남겼다. 사건이 아니라 감정들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은 다소 난해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드라마는 최근 드라마의 하향 평준화 추세에 잠시나마 제동을 거는 역할을 했다.
여기에 윤여정, 정보석의 명불허전의 연기와 '우리' 역의 황정음의 일취월장한 면모가 어우러지며 '보는 재미'를 더했다.
prett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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