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사랑>의 윤필주와 나 사이에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취미생활. 띵똥! “자, 오늘은 윤필주씨의 취미활동인 퍼즐 맞추기를 함께해요.” 윤필주와 구애정이 500피스 퍼즐을 맞춘다. 점프. 윤필주는 이후 구애정을 향한 애정을, 퍼즐을 맞추며 정리하려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잃어버린다. 우왕좌왕. 완벽남에 대한 작은 실망감이 고개를 드는 순간이었다. 어떨 때 직소퍼즐은 단 하나의 조각이 곧 전체다. 그러니 499개의 조각들은 윤필주를 향해 아우성을 쳐야 했다. 퍼즐은 완벽함에 대한 집착의 놀이이니까.
처음으로 퍼즐에 집착했던 때는 20대 초반. 친구의 친구가 해외에서 공수해온 물건이 어찌어찌 내 손에 들어왔다. 갈색과 녹색의 이끼가 낀 거대한 암벽 그림의 500피스 퍼즐이었는데, 퍼즐 조각 하나의 크기가 성인 여성의 엄지손톱만 했다. 새벽마다 거실 불 밝혀놓고 퍼즐과 씨름하는 딸을 보고 어머니는 “얼른 자야지”라는 말씀만 되풀이하셨다. 나도 속으로는 수백번도 더 ‘얼른 자야지’를 되뇌었다. 지구력이 한참 떨어지는 지구인으로서 내가 ‘조금만 더’를 외치며 끈기를 발휘하는 순간은 정말 드물다. 그러나 퍼즐을 할 때면 오기와 집착과 쾌감에 휩싸여 집중력이 향상되고 또 오래 지속된다.
한동안 손대지 않았던 퍼즐에 다시 손대기 시작했다. 얼마 전 르누아르의 <선상파티의 점심>을 1000피스로 쪼갠 퍼즐을 보름간 띄엄띄엄 맞췄다. 초반에 너무 힘을 쏟았는지 한동안 허리가 절단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시력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퍼즐놀이는 계속됐다. 어느 우울한 날엔 눈곱 떼고 일어나 퍼즐하고 라면 먹고 퍼즐하고 빵 먹고 또 퍼즐을 했는데, 쑥쑥 진도가 빠지는 바람에 결국 낄낄대다 잠이 들었다.
퍼즐에도 취향이 있다. 대체로 나는 명화나 풍경화를 선호한다. 단순한 색의 조합이라도 색감이 예쁜 게 좋다. 어려울수록 좋다. 완성된 퍼즐은 액자에 넣지 않고 흐트러트려 상자에 넣어둔다. 내겐 생각이나 마음을 비우는 데 퍼즐만한 게 없다. 퍼즐을 하는 동안에는 한 가지만 생각하면 된다. 한번에 하나씩. 그렇게 끈기(와 약간의 눈썰미)를 가지고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하늘이, 들판이 마술처럼 쑥 눈앞에 나타난다. 완벽하게 제자리를 찾은 퍼즐을 보면 나 자신이 완벽해진 것 같은 기분마저 든다. 그렇게 우쭐해진 기분을 스스로 산산이 뭉개버리는 것은 놀이의 마지막 단계. 그러면 나는 다시 도전하는 사람이 된다. 올겨울엔, 그 험하다는 에베레스트가 아닌 2000피스짜리 퍼즐에 등정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