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아쉬웠던 번역의 감옥을 떠나며
최인자_소설<해리 포터> 4~7부 번역자 해리 포터와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신춘문예로 등단한 지 얼마 안되는 햇병아리 문인이었다. 어느 날 문학수첩의 주간이자 문단의 원로 시인이셨던 김종철 선생님이 <해리 포터와 불의 잔> 번역을 도와달라고 부탁하셨다. 3권까지 번역한 다른 역자가 있는데다 이미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작품이라 솔직히 부담이 앞섰다. 지금은 가장 오랜 기간(8년)을 함께해온, 가장 고생했고, 가장 힘들었고, 가장 아쉬운 번역서로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해리 포터>를 번역하는 동안 수많은 독자들이 질문을 던졌다. “번역자는 책을 먼저 받아보나요?”이번 기회에 꼭 알리고 싶은 사실은 번역자도 <해리 포터>가 (영국)서점에 처음으로 출시되는 날에야 비로소 책을 받아본다는 것이다. 원고에 대한 보안이 그만큼 철저했기 때문인데, 덕분에 나에게는 영국의 <해리 포터> 출간일이 공포의 날로 다가왔다. 그날부터 넉달 동안은 거의 감금생활을 해야 했으니까. 작업실을 따로 얻어놓고 아침부터 밤까지 번역에만 매달렸다. 그래도 시간은 늘 부족했고, 좀더 꼼꼼한 번역을 할 수 없어 많이 속상해하던 기억이 난다.
<해리 포터>는 책의 특수한 성격 때문에 번역하기가 무척 힘들었던 작품이다. 조앤 K. 롤링의 머릿속에는 책의 전반적인 구성이 처음부터 다 들어 있었다고 하지만 한낱 역자가 그걸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소소한 사건이 나중에 어떻게 중요한 복선으로 작용하는지, 숨은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고 번역했다가 나중에 당황한 경우가 꽤 있었다. 게다가 책이 엄청나게 두껍고 등장인물이나 마법용어는 많아서 매번 새 시리즈를 번역할 때마다 이전 시리즈를 다시 복습하고 공부해야 했다. 오죽했으면 번역을 위해 ‘해리 포터 용어사전’을 따로 만들었을까! 게다가 독자들은 왜 이렇게 박식한지…. 시리즈를 번역하는 동안 수많은 독자들로부터 (점잖게 표현하면) 셀 수 없는 ‘지적’을 받았던 건 번역하는 자로서의 애환이었다.
그렇게 즐길 여유 없이 빠듯하게 작업했지만 마지막 시리즈인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만큼은 감탄과 희열을 느끼며 책을 읽어내려갔다. 이전까지 등장했던 복잡하고 소소한 사건들과 인물들이 눈앞에서 정교하게 연결되는 걸 보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단어 하나, 사건 하나에 모두 의미가 있었고, 심지어 등장인물의 이름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많은 판타지 소설이 실패하는 이유가 이야기만 거창하게 키워가다가 끝에 가서 마무리를 못해 흐지부지 끝나기 때문인데, <해리 포터>는 7권에서 완벽하게 그 모든 조각들을 이어맞춘다. 솔직히 처음에는 그저 새롭고 재밌는 청소년 소설이라 생각했지만 7권의 번역을 마치고는 정교한 대서사시란 생각이 들었다. 조앤 K. 롤링은 비범한 작가였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의 33장, 스네이프의 과거가 밝혀지던 ‘왕자이야기’를 번역하던 날이 생각난다. 하늘이 유난히 낮고 어두운 날이었다. 혼자 작업실에서 자판을 두들기며 눈물을 흘렸다. 스네이프의 운명이 슬프기도 했지만 드디어 <해리 포터> 시리즈가 끝난다는(그것도 완전히!) 사실에 묘한 감정이 솟구쳤던 것 같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 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에 대한 강의를 하며 가끔 <해리 포터> 얘기를 꺼낸다. 그렇게 <해리 포터>는 애증이 교차하는 책이면서도 내 삶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외전 <헤르미온느의 혼외정사> 어떨까?
남윤숙_<해리 포터> 직배한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이사 <해리 포터>와의 10년, 영화의 카피처럼 이제 모든 것이 끝난다. 이 시리즈는 가장 길게 마케팅과 홍보를 한 작품으로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영화가 됐다. 2001년 겨울 첫편을 시작으로 최종편을 개봉할 때까지 영화일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처음 영화화되었을 때 상상 속의 해리 포터는 깡마르고 체구가 작은 불쌍한 모습의 아이었는데, 귀공자 같은 이미지의 대니얼 래드클리프가 해리로 캐스팅됐을 때의 괴리감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는다. 440만 관객이 관람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시리즈 중 최고 흥행으로 워너의 <인셉션> 다음으로 여전히 2위를 기록하고 있다. 2005년 처음으로 참가한 <해리 포터와 불의 잔> 일본 기자회견에서는 원래 참석하기로 했던 론 역의 루퍼트 그린트가 조모상을 당하여 영상 메시지로 인사를 대신해 많이 아쉬웠고, 그때 당시 케드릭 역할을 맡은 훈남 로버트 패틴슨이 <트와일라잇>으로 대스타가 될 줄은 몰랐다. 2007년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으로 배우들을 만났을 때 훌쩍 큰 그들의 모습이란…. 시리즈가 더해갈수록 때론 놀라고, 경악(?)하고, 감동했다.
매년 전세계의 워너 직원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있다. 대부분이 영화와 더불어 젊음을 보낸 가족 같은 동료들인데 만날 때마다 하던 농담이 있다. 영화일을 그만두고 싶은데 그래도 <해리 포터> 최종편까지는 마무리하고 관둬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 농담이 1, 2년 세월을 덧입어 이제 그 마지막 종착역에 도착했다. 힘들 때 위안삼으며 <해리 포터>에 의지했던 직장생활의 명분이 없어지게 생겼다. 이 시점에서 원작자 조앤 K. 롤링에게 달려가서 <해리 포터>를 다시 영화화할 수 있는 외전을 써달라고 졸라야 하나? 이를테면 <볼드모트의 부활>이나 <프리벳가 머글들의 반란>? 이 정도는 너무 뻔하고 약해 보일 테니 조르는 김에 과격하게 <헤르미온느의 혼외정사>로 요구해볼까?
팬덤과 함께 성장한 시리즈의 힘을 느끼다
박유경_<해리 포터> 국내 최대 팬카페 ‘호그와트’(cafe.daum.net/harryjjang1107) 운영자 현실에서는 대학 4학년의 평범한 여대생, 웹상에서는 해리 포터 커뮤니티 ‘호그와트’의 교장. 이렇게 ‘이중생활’을 해온 지도 벌써 10년이 되어간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을 처음 읽고‘호그와트’에 가입한 뒤,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해리 포터> 한국 번역판이 출간되는 날이면 교복도 벗지 않고 서점으로 달려갔고, 3년간 출간 소식이 없던 <해리 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을 기다리면서는 이전 시리즈의 4부를 말 그대로 책이 너덜너덜하다 못해 떨어질 정도로 복습했던 기억이 난다. 그중에서도 가장 잊지 못하는 에피소드는 덤블도어의 죽음에 대한 논쟁이다. <해리 포터와 혼혈왕자>가 출간된 뒤 덤블도어의 죽음을 목격한 팬들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호그와트’에도 한 회원이 ‘덤블도어는 죽지 않았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쟁이 시작됐었다. 그 생각에 동조하는 회원들과 덤블도어는 죽었다고 믿는 회원들이 패를 갈라 설전을 벌였고, 급기야 내가 ‘결투클럽’이란 게시판을 카페에 개설해야 했을 정도로 큰 논쟁이 벌어졌다. 재미있었던 건 1주일 뒤 해외에서도 ‘덤블도어는 죽지 않았다’는 이름의 웹사이트(www.dumbledoreisnotdead.com)가 개설됐고, 그로부터 이틀 뒤 조앤 K. 롤링이 직접 인터뷰를 통해 “덤블도어는 정말로 죽었다”고 발표한 점이었다. 국경을 넘어선 팬들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던 한순간이었다.
사실 영화 시리즈가 끝나는 건, 우리 카페에 그리 반가운 소식만은 아니다. 영화 한편이 개봉할 때마다 새로운 회원이 가입하는 일도 이제는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도 어떤 초등학생은 10년 전 나와 비슷한 심정으로 카페에 가입하고 있을 것이며, 우리 팬들에겐 소설과 팬아트라는 2차 창작물이 남아 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른 뒤에도 해리 포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아 계속 무언가를 창작해나간다면 시리즈는 끝났어도 해리 포터는 떠난 게 아닐 것이다. 이 기회에 프로 소설가 못지않은 우리 카페 회원들의 <해리 포터> 팬픽을 읽어보는 건 어떨는지. 일단 기숙사 배정부터 받으셔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