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에겐 ‘로망’이 있다. 흔히 말하는 ‘남자의 로망’이라는 거,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남성 우월주의니, 마초니 이런 걸로 공격하진 말자. 어차피 일장춘몽이다. 이런 남자의 로망은 단 ‘하나’로 규정할 수 없다. 자동차면 자동차, 양복이면 양복 등 카테고리별로 세분화되어 있는 편이다. 가령 자동차의 경우엔 허머나 포르셰 정도로 압축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디지털카메라 분야에서도 엄연히 남자의 로망은 존재한다. 바로 플래그십. 물론 핫셀블래드나 마미야 같은 중형을 꼽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것은 람보르기니와 포르셰 정도의 갭이라고 할까. 일반적인 범주에서 그나마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 같은 로망의 대상이라면 브랜드별 플래그십 카메라를 뽑는 것이다. 플래그십은 간단히 말하자면 각 브랜드의 기함(旗艦), 대표작, 최상위 모델을 말하는 것이다(사전적인 의미와 차이는 있다).
니콘의 한 자릿수 시리즈, 캐논의 마크 시리즈 등 메이저 브랜드의 플래그십은 그런 로망의 대상이었다. 안타깝게도 서드파티 브랜드들은 플래그십 자체가 없어 메이저 브랜드에 놀림감이 되거나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물론 서드파티 브랜드를 사용하는 유저들을 존중해주어야 마땅하나 보이지 않는 브랜드간의 알력은 상상 이상. 이런 상황에서 브랜드의 대표 격인 플래그십이 없다는 것은 분명 괄시받을 만하다.
시그마가 그런 브랜드 중 하나였다. 물론 시그마가 찬밥 신세는 아니다. 시그마 특유의 포베온 센서로 풍성한 색감의 화질을 표현하는 것은 발군이다. 포베온 센서는 픽셀 하나에 3원색을 모두 받아들이는 구조. 이론적으로도 뭔가 기존 브랜드와 차별성이 있는 것 같다. 실제의 색감에 가깝게 기록하는 필드에서의 사용도 그렇다. 한 픽셀에 모든 색상의 정보가 있다는 것은 후보정 시에 관용도도 상당히 뛰어나다는 것. 시그마의 색감에 빠져든 유저가 결코 시그마를 벗어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시그마에는 플래그십이 없었다. 그저 사람들에게 ‘싸구마’의 이미지였던 것. 그러나 이 모든 서러움은 과거의 일이 될 듯싶다. 바로 시그마의 플래그십 시그마 SD1이 등장했다.
시그마 SD1은 4600만의 무지막지한 화소에(4800 X 3200 X 3레이어) 24X16mm APS-C X3 다이렉트 이미지 센서와 듀얼 “TRUE II” 이미지 프로세싱 엔진을 채용 고해상도의 이미지를 빠르게 처리한다. 비로소 전문가의 스펙에 걸맞은 제품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제조사의 말에 따르면 강력한 마그네슘 보디는 혹독한 환경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보디 성능을 자랑하고 있다고. 특히 버튼 등에 O링 덮개 방식을 적용, 보디에 먼지나 물이 유입되는 것을 막아주는 방진방적 기능도 있다고 한다(물론 새롭지는 않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그럴듯한 플래그십에 대한 설명이다. 그러나 반전은 있었다. 거의 1천만원에 가까운 엄청난 가격! 풀 프레임도 아니고 엄청나게 뛰어난 보디 성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대책없는 이 가격은 마니아에게 충격과 공포다. 이런 원성에 급기야 출시 직전에 가격을 낮추는 해프닝도 낳았다. 그러나 여전히 비싼 가격, 시그마 마니아에게 더욱 상처만 주고 말았다. 이미 발표한 샘플 사진의 디테일은 감탄이 나오지만 사실 다른 브랜드 플래그십으로도 능히 가능한 것이었다. 혹시 100% 수작업? 보디 안에 금이 들었을까? 가격을 뒷받침 할 수 있는 여러 이유를 추측해보지만 ‘진실은 저 너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D1을 지른다면 진정 당신은 용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