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들의 도구에 대한 애착에는 일종의 정신병적인 징후가 있어….” 이번주 책 지면(115쪽)에 소개한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에 나오는 대목이다. ‘서투른 목수가 연장 탓한다’는 속담대로라면 장인(아내의 아버지 말고)은 연장을 ‘밝히지 않는’ 태도의 소유자여야 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특히나 몸으로 일을 하는 사람일수록 손에 익은 연장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고, 나아가 손에 맞는 연장을 맞춤제작하느라 심혈을 기울이는 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교토에서 만난 일식 요리사인 할아버지는 일본주 데우는 중탕기를 비싼 값에 주문제작해서 쓰고 있었다. 일본주 온도를 맞추는 일의 섬세함과 술에 곁들이는 음식과의 조화 등 30분은 족히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유럽 작가들의 서재를 보면 부러 맞춘 넓고 큰 책상이라든가, 이제는 부속을 구하기도 힘든 타이프라이터가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곤 한다. 꼭 비싼 물건이 좋다는 뜻은 아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전통 기술을 사용해 물건을 만드는 사람들이 사라져가므로 공들여 만든 좋은 물건이 비싼 값에 거래되는 게 현실일 뿐.
하지만 내가 연장 탓을 하는 것은 역시 장인보다는 서투른 목수에 가깝기 때문일 거다. 이유야 어쨌든 손에 쥐는 연장은 일의 진행을 돕는 데 미묘하지만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게 사실이니까. 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건 읽고 교정보기 위해서건 필기구나 공책에 심하게 집착하는 버릇이 있는데(그러고 보니 이건 직업병도 장인정신도 아닌, 그냥 불치의 초딩병인가?), 생각이 절로 글로 옮겨진다고 할 정도로 잘 써지는 펜과 무슨 말이든 쓰고 싶은 기분이 들게 하는 공책이라는 마물이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 그러니까 파랑새는 있고 산타클로스는 부모님의 거짓말이 아니고 어딘가에는 그런 환상적인 필기구가 있다고! 어쩌다 그런 좋은 물건을 찾으면 공책 몇권 펜 몇 자루를 그 자리에서 사버린다. 참고로 연필은 집에 5다스, 좋아하는 펜은 색깔당 5개씩이 있고 안 뜯은 노트는… 셀 수 없다. 한동안 잠잠하던 이 ‘장비병’이 재발한 건 몇달 전이다. 돈이 아까워서 아이폰 구입을 차일피일 미루는 주제에 맥북에어에 꽂혔다. 심지어 사과라는 과일마저 좋아하게 되었다!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맥북에어. 맥북에어만 있으면 뭐든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컴퓨터 말고, 그냥 노트북 말고, 그거 있잖아 그거. 집에 있는 공책 표지에 한입 베어문 사과라도 그릴까보다. 이름을 맥북에어라고 붙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