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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을 바라봐 넌 죽을 수도 있고
주성철 2011-07-05

‘초능력 특수부대원’ 이야기 다룬 기막힌 코미디 <초(민망한) 능력자들>

‘<오션스 일레븐>이 <X파일>을 만났다’는 얘기처럼 <초(민망한) 능력자들>은 황당하면서도 진지하다. 아니 너무 진지해서 헛갈리게 만든다. <엑스맨>의 돌연변이들처럼 각자 서로 다른 초능력을 지닌 병사들이 사랑과 평화로 전쟁에서 승리하는 법을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는 무척 낭만적으로 들린다. 존 론슨의 원작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을 원작으로 삼은 이 동명 원제의 2009년 영화는 인물들이 전혀 민망하지 않은 초능력을 사용함에도 이런 한국식 제목이 붙어 유감이긴 하다. 어쨌건 조지 클루니와 이완 맥그리거, 제프 브리지스와 케빈 스페이시의 힘 빠지고 넉살 좋은 모습만으로도 유쾌한 경험이다. 당신도 당신 안의 제다이를 발견할 준비가 됐는가.

나는 지금 이 글을 손과 키보드로 쓰고 있는 게 아니다. 하얀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는 것일 뿐인데도 저절로 원고가 써지고 있다, 고 말하면 무슨 빌어먹을 헛소리냐고 하겠지만 하루에도 몇번씩 편집장의 사나운 얼굴(“그건 아니지~”)을 떠올리며 그런 상상을 하곤 한다. 누가 좀 대신 써줬으면 좋겠다, 나도 정말 단숨에 멋진 글을 써내려가고 싶다, 그런 초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엑스맨>처럼 수많은 인명을 구하고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초’ 명분있는 능력 따윈 바라지도 않으니 그저 싫은 소리 안 듣고 적당히 생계에 도움이 되는 능력만이라도 어떻게 안될까, 하는 소심한 마음 말이다. 혹은 영화에서 본 것처럼 전설의 마스터를 길거리에서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1분에 1천자씩 써내려갔던 전설의 저널리스트를 만나 그 비법을 전해들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그로부터 영화를 보지 않고도 영화를 속속들이 본 것처럼 장문의 프리뷰를 뚝딱 써낼 수 있는 능력을 전수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나는 시사회를 가지 않고도 영화 촬영현장에 가지 않고도 그저 모니터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기사를 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전설의 마스터가 어딘가 꼭 있을 거란 기대를 품고 살고 있다. 언젠간 그를 꼭 만날 것이라고.

미 육군 비밀부대의 코드명 ‘제다이 프로젝트’

이것부터 얘기하자. <초(민망한) 능력자들>은 ‘이 영화는 실화에 바탕했습니다’ 혹은 ‘이 영화는 어디까지나 픽션입니다’ 하는 상식적인 오프닝 자막으로 시작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는 의외로 사실인 것이 많습니다’라는 아리송한 자막으로 시작한다. 뭐 어쩌란 말이야, 라고 투덜댈 만도 하다. 의외로 사실인 것도 많다는 말은 그냥 관심을 흐트려놓으려는 것일 뿐 그저 ‘잘 봐달라’는 부탁일 뿐이다. 보면 알겠지만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라는 진지한 태도로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간 금방 길을 잃어버릴 것이다. 첫 장면부터 보자. 미 육군정보부 홉굿 준장은 부하에게 자신은 옆방으로 가겠다고 얘기하고는 벽을 향해 뛰어간다. 자신의 초능력으로 벽을 뚫겠다는 심산이었지만 쾅 하고 부딪히고는 쓰러지고 만다. 그건 영화가 얘기하는 초능력이 거짓이어서가 아니라 홉굿 준장의 수련이 부족해서다. 제대로 훈련도 하지 않아서 감히 누굴 탓한단 말인가.

한 지역신문사의 별볼일 없는 기자 밥 윌튼(이완 맥그리거)은 어느 날 괴이한 사람을 취재하란 명을 받는다. 정신만으로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원격투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거스 레이시’라는 남자다. 네스호 괴물의 영혼과도 교감했다는 그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최고 비밀부대에서 초능력 스파이로 길러졌다느니, 그저 노려보는 것만으로 동물을 죽이는 훈련을 받았다는 헛소리만 하고 있으니 밥은 ‘오 그래요?’라며 관심있게 듣는 척하면서 취재수첩에는 ‘You are crazy’라고 적는다. 그러면서 자기가 노려보는 것만으로도 햄스터를 죽였다며 그 실제 동영상을 보여준다. 실제로 몇분 뒤 툭 쓰러지고 마는 햄스터. 밥은 처음으로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놀라지만 이내 거스 레이시의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와 성웅 이순신 장군스러운 경고의 메시지를 날린다. “햄스터의 죽음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마라.”

뭐가 사실이고 거짓인지 헛갈려하는 밥은 그 일과 무관하게 애인에게서 버림받는다. 애인의 새 ‘외팔이’ 남자친구에게 목이 졸리는 굴욕까지 당했으니 과연 그 아픔을 어디서 보상받을 수 있을까. 때는 1980년대. 그래, 전운이 감도는 이라크로 취재를 떠나자. 순간 TV에서는 “미국인들은 언제나 불굴의 용기로 다시 태어났다”는 당시 부통령이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일장 연설이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미국을 떠난 그는 어느 날 묘한 분위기의 린 캐서디(조지 클루니)라는 남자를 만난다. 바로 그는 거스 레이시가 ‘자기가 만나본 최고의 초능력자’라고 말했던 린 캐서디와 동일인물이다. ‘린 캐서디’라는 이름표를 너무나 크게 달아놓은 탓에 그 옆을 지나가는 사람이라면 이름을 알아보지 못할 수 없을 정도인데도 그는 심각한 얼굴로 “나를 어떻게 알았지?”라고 되묻는다.

린 캐서디 역시 거스 레이시처럼 황당한 얘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심지어 <스타워즈>에 등장하는 제다이가 바로 자기란다. 미 육군 비밀부대에서 코드명 ‘제다이 프로젝트’를 통해 탄생한 제다이가 바로 그라는 것. 그렇게 길러진 많은 제다이들이 적의 생각을 읽고, 벽을 통과하며, 투명인간까지 될 수 있단다. 황당하지만 호기심을 자극하는 그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 밥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란 심정으로 그의 비밀임무에 동행해 이라크 국경을 넘는다. 그곳에서 자신의 실연의 아픔과 고통을 말끔히 씻어줄 특종을 발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하지만 그들은 곧 반군에 잡혀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베트남전 참전용사 빌 장고(제프 브리지스)의 얘기를 듣게 된다. 마치 플라워 무브먼트처럼 꽃을 들고 사랑과 평화의 힘으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살상이 아닌 대안적 전투방식을 꿈꿨던 알려지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 얘기를. 정말 꿈만 같은 얘기다.

초능력 특수부대, 구소련이 먼저 창설

장 클로드 반담과 돌프 룬드그렌이 출연한 <유니버셜 솔저>(1992)라는 영화가 있었다. 날로 잔인해지고 대형화하는 테러리즘에 대처하기 위한 방편으로 미국 국방성이 극비리에 개발한 프로젝트. 싸움터에서 전사한 시체를 이용, 종래의 로봇이나 사이보그보다 훨씬 인간적인 안드로이드 유니버설 솔저를 만든 것이다. <초(민망한) 능력자들> 역시 마찬가지다. 투시력으로 요원이나 적의 위치를 알아내고, 그저 노려보는 것만으로 상대를 쓰러트리는 놀라운 기술. 심지어 이들은 제다이다. 다리가 부러질 것을 알지만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무슨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춤을 추며 자아를 개발한다. 어렸을 적 아버지의 꾸지람 때문에 춤을 좋아하면서도 제대로 출 수 없었던 린 캐서디는 “네 속에 숨어 있는 춤을 바깥으로 내보내!”라는 빌 장고의 일갈에 군대에 와서야 마음껏 스텝을 밟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초(민망한) 능력자들>의 군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데 미 국방부가 추진했던 특급비밀작전에 초능력 특수부대가 이용됐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얻기 불가능한 정보를 초능력 특수부대를 이용해서 얻고자 했다는 것인데, 가령 북한 내 핵무기 시설의 위치를 초능력부대를 활용해 찾으려 한 적도 있었다. 물론 그전부터 원격투시가 가능한 초능력자들을 군 작전에 투입해 지금까지도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핵무기와 관련된 군사시설, 테러리스트의 본거지 등을 초능력의 원격투시로 찾아내는 수색작업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성과로 보도된 일도 있었다. 지난 1986년 미국의 리비아 폭격 당시 반미 테러리스트를 지원하던 리비아 지도자 카다피를 제거하는 작전이었다. 당시 스파이 위성과 내부 정보원들을 통해서도 알 수 없던 그 위치를 초능력 특수부대의 원격투시에 의해 알아낸 것. 비록 폭격을 가하고도 카다피는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그 사실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영화에서 구소련이 먼저 그런 초능력부대를 창설했다는 홉굿 준장의 얘기도 사실이다. 소련은 1930년대 스탈린 시대부터 초능력 연구를 국가비밀 프로젝트로 채택, 처음부터 군사적 시각으로 발전시켜나갔다. 심지어 스탈린은 그 아이디어를 히틀러에게서 얻은 것인데, 히틀러는 어릴 때부터 초능력을 신봉해 실제로 전시에 활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미국이 초능력을 군사작전에 도입한 것은 소련의 영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영화에서는 고양이를 가지고 장난치는 수준으로 묘사되지만 실제 군당국의 초능력 사용은 오랜 실화다. 그러니까 사랑과 평화라는 대안적 무기를 주창하는 <초(민망한) 능력자들>은 바로 그 실화를 재구성한 유토피아다.

초능력자의 검증 안된 기술들

초능력자 조지 클루니의 기술 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자. 전쟁 지역에서 자주 쓴다는 ‘번쩍이는 눈 기술’은 눈빛만으로도 ‘뭔가’를 해내는 기술이다. 그게 뭐냐는 이완 맥그리거의 물음에 조지 클루니는 운전을 하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아 유 레디?’ 묻고는 말 그대로 눈을 번쩍 크게 뜨고는 상대를 쳐다본다. 예상대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번쩍이는 눈 기술이 무엇인지는 이완 맥그리거도 모르고 그걸 보는 관객도 모른다. 이 영화 자체가 그런 식이다. 게다가 반군과의 육박전 도중 조지 클루니는 ‘에크마이어’ 기술을 시도한다. 베트남전에서 63명을 사살했다는 반 에크마이어가 창시한 기술이다. “현재까지 유일한 비한국계 ‘콰라도’ 사범”이라는 게 조지 클루니의 얘기인데 어쨌건 플래시백 속 에크마이어의 뒤편으로는 ‘합기도’라는 한자가 쓰여 있다. 역시 어떤 기술일까 궁금하지만 에크마이어는 마치 변강쇠처럼 ‘거시기’에 무거운 물건을 달고 버텨 서 있다. 저렇게 해서 어떻게 사람을 죽이는 걸까, 궁금하지만 역시 해결되는 건 없다. 그 기술을 흉내낸 조지 클루니도 결국 주먹으로 상대를 때리는 것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마지막으로 그 효과가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희미한 자국’이라는 기술이다. 이른바 ‘죽음의 터치’라 불리는 이 기술은 그저 손가락으로 살짝 상대의 이마를 치는 기술인데 그러고 나면 한번에 죽어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기술이다. 조지 클루니가 과거 중국의 전설적 무도인 웡 위포가 이 기술로 죽었다고 얘기한다. “바로 죽었나요?”라는 이완 맥그리거의 물음에 조지 클루니는 “아니, 18년 뒤에 죽었어”라고 말한다. 18년의 시간이라면 그냥 노환으로 죽은 것일 텐데 그 대답이 압권이다. “희미한 자국은 그 효과가 내일이건 내년이건 언제 나타날지 몰라, 그래서 무서운 거야.” 어차피 다 말이 안된다. 하긴 생각해보면 <스타워즈>의 새로운 프리퀄 에피소드 1, 2, 3에서 전설의 제다이 ‘오비완 케노비’를 연기한 이완 맥그리거에게 제다이 프로젝트 운운한 것 자체가 이 영화의 거대한 역설이다. 오비완 케노비를 연기한 사람에게 ‘네 안의 제다이를 느껴봐’라고 하고 있으니 이 영화는 거대한 농담이라고 스스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바보 연기를 해도 멋진 조지 클루니

“좋아, 여기까지. 이로써 나는 내 생애 마지막 바보 연기를 끝냈어!” 코언 형제의 <번 애프터 리딩>(2008) 촬영 마지막 날, 조지 클루니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코언 형제는 그들이 쓰고 윌리엄 로드니 앨런이 엮은 책 <코언 형제: 부조화와 난센스>를 통해 “그동안 우리를 위해 기꺼이 바보 연기를 해준 조지 클루니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듬해 출연한 <초(민망한) 능력자들>에서 조지 클루니가 연기한 것은 바보가 아니란 말인가. 가슴에 ‘신 지구군’의 상징인 커다란 눈동자 문신을 새기고, 완전히 몸을 써서 밥을 내동댕이치고는 태연하게 “봐, 전혀 안 움직이고 너를 쓰러뜨렸지?”라고 으스대며, 그가 출연한 그 어떤 영화들과 비교해도 ‘저질댄스’를 추는 이 영화를 두고 그는 ‘바보 연기’라고 생각하지 않는가보다. 바보다 바보가 아니다, 하는 논쟁은 뒤로 하고라도 영화 속 조지 클루니는 역시 멋지다. <코언 형제: 부조화와 난센스>를 엮은 윌리엄 로드니 앨런은 <참을 수 없는 사랑>(2003)의 그를 두고 “NG장면마저 근사한, 캐리 그랜트의 전성기 시절 이후로 가장 생기 넘치는 코믹 연기를 구사하는 미남자”라고 썼다. 그리고 <초(민망한) 능력자들>로 데뷔한 그랜트 헤슬로브 감독은 바로 <참을 수 없는 사랑> 당시 초짜 제작자였다.

조지 클루니와 그랜트 헤슬로브가 함께 각본을 쓰고 조지 클루니가 연출한 <굿나잇 앤 굿럭>(2005)은 미국에 불어 닥쳤던 매카시 광풍에 맞서 미국의 진정한 가치인 자유를 지켜야 한다고 외쳤던 CBS 앵커 에드워드 R. 머로의 실화를 그린 흑백 영화다 (원래 배우인 그랜트 헤슬로브는 머로 뉴스팀의 일원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어쩌면 <초(민망한) 능력자들> 역시 그런 연장선에 맞닿아 있다. 혹은 조지 클루니가 이라크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금괴를 맞닥뜨렸던 데이빗 O 러셀의 <쓰리 킹즈>(1999)를 떠올려 봐도 좋을 것이다. <굿나잇 앤 굿럭>이 오직 진담의 힘으로 사건과 맞서는 얘기였다면 <초(민망한)능력자들>은 농담도 계속하면 진담처럼 들리는 마술을 부리는 영화다. 라스트의 기도가 그것을 대변한다. “어머니 지구 당신은 내 삶의 지원계. 병사로서 난 당신의 푸른 물을 마시고 당신의 붉은 진흙 속에 살고 당신의 초록 피부를 먹어야 합니다. 날 균형있게 도우소서. 우주가 날 살게 하는 것을 알기에 내 군화가 당신 얼굴에 입 맞추게 하시고 내 걸음이 당신 심장박동과 일치되게 하소서. 나는 당신의 것, 당신은 나의 것.” 그렇게 조지 클루니는 평화의 메시지를 남기고 마치 <델마와 루이스>(1991)의 그녀들처럼 헬기를 타고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으로 떠나갔다. 이 참을 수 없도록 멋진 남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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