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산개>에서 풍산(윤계상)과 인옥(김규리)의 사랑의 완성 뒤엔 북한 고위층 간부가 있었다. 집착과 욕망의 화신인 그는 “키스야, 인공호흡이야?” 하며 인옥을 다그치고 윽박지른다. 사뭇 진지한 모습이지만 어쩐지 이 캐릭터, 우습다. 극과 극을 달리는 감정의 파고. 북한 고위층 간부를 연기한 김종수가 궁금했다. 연극 <에쿠우스>(1985)를 시작으로 울산 지역에서 연극배우로 잔뼈가 굵은 그는 <밀양>에서 이창동 감독의 ‘저인망 싹쓸이’ 지역배우 캐스팅의 그물망에 걸려 처음 영화 연기를 시작했다. 이제 그는 독립영화, 상업영화 가릴 것 없이 부름을 받는 자칭 ‘신인 영화배우’다.
-북한 고위층 간부라는 캐릭터가 만만치 않다. 암살 불안감에 결국 사랑하는 여자에게 집착하며 바닥을 보이는, 감정 폭이 넓은 역할이다. =북한 사람은 어릴 때 TV에서 많이 봤지만 고위층 간부를 다룬 경우는 잘 없었다. 그런데 이산가족 상봉 때 북에 갔던 분의 말을 들어보니 북한 간부들의 첫 이미지가 ‘섹시하다’라는 것이었다. 확고한 신념, 자기 행동에 대한 분명한 선이 있는 사람이 풍기는 매력에서다. 그래서 나도 최대한 섹시함을 살리려 했다. 그런데 이 캐릭터는 인옥이 오면서 혼돈에 빠지는 게 핵심이었다. 목숨이 위협 받고, 자기 자신이 소진되는 상황에서 마지막 딜이 여자였다. 그 와중에 여자의 마음을 뺏는 남자가 나타나니 어떻게든 되찾을 수밖에 없는 거다. 멋있게 되질 않고 결국 찌질한 남자가 되는 거다. 이 영화에서 극본을 쓴 김기덕 감독의 색깔이 유일하게 나오는 부분이기도 하다.
-노개런티에 대한 부분은 애초부터 알고 있었나. =처음엔 몰랐다. 출연분량이 40신 정도 되는데, 서울에서 울산 왔다 갔다 할 차비에 좀 못 미치는 정도의 금액을 주겠다고 하더라. 독립영화니 으레 적겠거니 했지만 뜨악했다. PD가 좀 도와달라고 하는데, 속으로 ‘그러지 말고 나를 좀 도와주지’ 싶었다. (웃음) 어쨌든 어느 정도 상황인지 터놓고 들어갔다. 감정 집중을 요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전날엔 특별히 모텔을 빌리기도 했지만 대부분 김기덕 필름 사무실에서 소파를 개조한 침대에서 스탭들과 함께 자면서 촬영했다.
-열악한 상황임에도 욕심이 있었으니 그 조건들을 수락한 걸 텐데. =당연히 있다. 난 배우니까. 이번에 놓치면 금방 다시 보기 힘든 캐릭터 아닌가. 풍산 역이나 인옥 역이나 다 마찬가지였을 거다. 단 내 걱정은 주연배우 둘은 연기 경험도 있고 유명세도 있는데 삼각구도에서 내가 너무 뒤처지는 거 아닌가 싶었다. 연기로 승부하는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말마따나 젊은 배우들보다 영화 경력에선 한참 뒤진다. =30여년 울산에서 연극 연기를 했지만 영화는 <밀양>이 처음이었다. 밀양 연출부가 울산으로 오디션을 보러왔고, 후배와 동료들과 함께 재미삼아 가보자 했다. 2차 때 이창동 감독님이 직접 오셔서 오디션 보고, 그게 첫 출연이었다.
-그전엔 영화 연기를 할 생각이 없었나. =루트가 없었다. 부산만 해도 연극과 영화를 병행하는 분들이 많은데 울산은 상대적으로 그런 것과 거리가 있다. 우리가 영화일도 할 수 있을까, 서울말도 안되는데. 영화 연기는 자연스러운데 연극과는 거리가 멀지 않을까, 이런 것들에 대한 가늠이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치열하게 하는 연극이 있으니 다른 쪽은 별로 돌아보지 않게 된 것도 있다. 어쨌든 이창동 감독님이 좋아해주셨고, 단역이 아니라 조연이었던 것도 영화를 하게 된 계기가 됐다. 함께 출연한 조연들이랑 언론 인터뷰도 하고, 간간이 학생들 독립 단편영화 제의도 들어오고 하니 우리도 영화해도 되나보다 싶어진 거다.
-그 뒤로 울산과 서울을 오가며 꾸준히 독립영화에 출연했다. <플레이>와 <풍산개> <도약선생>이 한꺼번에 개봉한다. =그동안 많은 경험을 했다. 에이전시에서 연락 와서 가보니 리딩도 없고 바로 오케이 하는 그런 장면들도 많았다. 물론 상업영화에 출연하면 그런 단역도 연극 한편 출연할 때 정도의 페이를 받는다. 그런데 감독과 배우가 소통하는 것도 아니고 단순 출연이라면 이건 좀 아니다 싶더라. 내가 워낙 무명이라 시나리오를 읽지 못할 때도 많다. 그런 걸 따지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캐릭터있는 역할을 하고 싶다.
-<풍산개>에선 캐릭터 비중이 워낙 커서 앞으로는 앞서 말한 우려는 탈피할 수 있게 됐다. =이걸 계기로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것보다는 감독이나 현장에서 일하는 분들이 고려하는 배우 리스트에 올라갔으면 한다. ‘풍산개 효과’를 볼 수 있다면 그런 정도다. 역할이 고정된 배우가 아니라 다양하게 쓰임새 있는 배우였으면 싶다. 그래서 지금도 꾸준히 오디션 보러 다닌다.
-지역에서 같이 연기하는 후배들에겐 롤모델일 수 있다. =물론 연기 시작하는 친구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꾸준히 이 길을 걸어온 친구들에겐 왠지 바람 넣는 게 아닌가 싶어 조심스럽다. 내가 완성형도 아닐뿐더러 모범적인 경우인지 아닌지 검증도 안됐다. 좋은 인연으로 여기까지 왔지만 아직은 조심스럽다.
-앞으로의 각오는. =나이 많다고, 연기 경력 많다고 좀 모셔야 하는 분위기가 된다면 그건 싫다. 연극 경력은 30년이지만 영화에선 신인급이다. 오디션 보러 오라고 하다가도 울산이라고 하면 깜짝 놀라면서 다시 연락 안 주시는 분도 많은데 KTX 타면 2시간20분밖에 안 걸리니 막 불러달라. <풍산개>에선 설정 때문에 나이가 좀 많아 보이는데 화면보다 실제로 보면 훨씬 젊다. 안 그런가?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