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자전거>는 자전거 집배원 구웨이와 그의 자전거를 훔친- 아니 정확히는 장물인 줄 모르고 산- 지안이라는 두 소년의 이야기다. 이 두 소년은 서로 다른 이유로 자전거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공간적 배경을 빼놓고 이 영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 그것은 베이징의 역사적 골목길, 즉 후통(胡同)이다. 영화의 대부분은 낡고, 지저분하며, 좁디좁은 후통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마지막 부분의 집단 자전거 추격신은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에서 박진감있게 전개된다. 미친 듯이 골목길을 달려가는 수많은 소년들. 우연이었을까, 이상의 <오감도>가 떠올랐던 것은.
베이징에 후통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여항(閭巷)이 있다. 여항은 도시의 골목길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내가 살고 있는 서울 서촌이 바로 대표적인 여항 지역이다. 조선후기 중인문학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20세기 초 이 지역을 매일 같이 오갔을 사람 중에 시인이자 소설가, ‘모던뽀이’ 이상이 있었다.
그는 옥인동의 백부집에서 머물면서 지금은 철거되고 없는 총독부에서 건축과 기수로 일했다. 그의 집과 직장의 위치로 보아 그가 매일 오갔을 출퇴근길은 서울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었을, 그리고 지금도 일부분이나마 잘 남아 있는 통의동 일대의 골목길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뒤에 <오감도>의 도입부를 보면 양쪽 벽에 손이 닿을 듯한 이 좁은 골목길이 결코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十三人의兒孩가道路로疾走하오. (길은막다른골목길이適當하오.)
나는 이 대표적 난해시에 등장하는 골목길이 실재하는 구체적인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믿는다. 건축가로 훈련받은 신지식인 이상에게 조선의 답답한 골목길은 그가 그토록 혐오했던 전근대성의 상징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렇게 반복하여 ‘무서움’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었을까. <북경자전거>의 쫓기는 두 소년이 느꼈을 바로 그 무서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