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개그 프로그램을 너무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MBC의 <웃으면 복이 와요> <청춘만만세> <소문만복래>, KBS의 <유머1번지> <쇼비디오자키> 등을 말 그대로 한회도 빠지지 않고 다 봤다. 당연히 본방 사수가 기본이었고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잊지 않고 예약녹화를 했다. 사실 본방 사수를 할 때도 무조건 녹화를 했으니 그 많은 영상을 다 가지고 있었다고 보면 된다. 내 기억에 녹화하기 시작한 시점의 최초 프로그램은 <웃으면 복이 와요>였던가, 배일집과 배연정이 부부로 나오고 이규혁이 시동생으로 나와 무슨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며 “햄벅~”이라는 터무니없는 유행어를 낳았던 코너로 기억한다. ‘햄벅’이 뭐가 웃기다고 하루에도 몇번씩 입에 달고 다녔는지.
나보다 더 코미디 프로그램 마니아셨던 아버지가 비디오 플레이어를 사셨던 이유도 오직 그 녹화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당시 비디오숍에 가서 무슨 비디오를 빌려봤던 기억이 없다. 그저 만날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또 봤다. 아버지와 여동생과 나는 심형래가 제풀에 쓰러지고 조금산이 장두석의 머리를 깨물며 전유성이 최양락의 머리를 후려치는 같은 장면을 몇번이나 보면서도 똑같이 웃었고 어머니는 그런 우리를 혐오스런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나나 여동생은 꼬마여서 그랬다고 하지만 성인인 아버지는 참.-_-;
아무튼 그때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전성시대라 학교에서도 아이들의 대화가 늘 유행어의 연속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잘 모르겠는데요”, “척 보면 앱니다”, “달릴까 말까 달릴까 말까”, “잘돼야 할 텐데”, “잘될 턱이 있나”, “지구를 떠나거라”, “조상이 돌봐서”, “숭구리당당 숭당당”, “어 장사장~ 어 김사장~”, “나는 봉이야”, “신이시여!”, “망했다 망했다”, “별들에게 물어봐” 등 내가 하루 종일 쓰는 문장의 50%가 그저 유행어의 변형이었다.
하지만 고3 때 EBS 교육방송을 녹화하는 공테이프 가격을 빼돌리느라 일부 그 영상들을 없애는 만행을 저질렀다. 녹화 테이프들에다가 교육방송을 3배속으로 녹화했던 것. 물론 남아 있는 테이프들도 많이 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아깝다. 다 입시제도로 인해 웃음을 잃어버리고 황폐화된 인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지금도 여전히 코미디 프로그램은 내 삶의 유일한 낙이다. 그래서 일요일 밤 <개그콘서트>가 끝났을 때 찾아오는 이른 월요병이 세상에서 제일 괴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