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때문에 종종 아이돌을 만난다. 물론 내가 여고생이 아닌 이상 이걸 딱히 자랑할 데가 있는 건 아니다. 게다가 아직 중학교도 채 졸업하지 않은 아이돌이 점점 늘어나는 요즘, ‘누나’를 넘어 ‘이모’에 가까워지고 있는 나로서는 “중학생 때까진 못 느꼈는데, 고등학생이 되니까 먹으면 살이 쪄요” 같은 고민을 듣고 있노라면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의 공황 상태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아이돌과의 인터뷰는 언제나 반가운 일이다. 우리 아버지를 포함한 어른들이야 “만날 똑같이 생긴 애들이 우르르 몰려나와서 똑같은 노래나 부르고…”라며 떨떠름한 얼굴을 하시지만 100팀의 아이돌에겐 100가지 서로 다른 매력이 있다는 게 나의 변치 않는 지론이다. 자신감과 생기로 가득 찬 소년 소녀들은 실로 경이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팀은 씩씩해서 예쁘고, 저 팀은 웃겨서 예쁘고, 그때 그 팀은 또릿또릿해서 예쁘고….
그러니까 어리면 무조건 다 예쁘다는 거 아니냐고? 오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도 말하지 않나. “알면 보이고 보이면 사랑하게 되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이미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 즉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랑하게 되기 전’, 그들을 ‘알아’ ‘보게’ 만드는 계기인데, 최근 몇년간의 추세에 의하면 적지 않은 신인 아이돌이 팀 이름을 건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으로부터 눈도장을 받는다. 무대 바깥에서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인지도를 높일 수 있다는 면에서 이는 상당히 효과적인 방식이지만 이런 프로그램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면서 팬들조차 지루함을 참고 본다는 망작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도 사실이다.
Trend E채널의 <에이핑크 뉴스>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은 솔직히 그 때문이었다. 갓 데뷔한 신인 걸그룹, 샬랄라한 의상을 입고 “이러지 마요 Baby 그대는 몰라요 내 맘을 아직도 그대는 몰라요” 같은 노래를 부르면서 용케도 손발이 오그라들지 않아 팔랑팔랑 ‘나비춤’을 추는 ‘요정돌’ 에이핑크의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니. 십중팔구 예쁜 척의, 예쁜 척을 위한, 예쁜 척에 의한 방송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붐 성대모사로) 방송 앞에 제가 경솔했습니다.
아마도 <에이핑크 뉴스>에 부제를 단다면 ‘엽기적인 그녀(들)’가 될 것이다. 바퀴벌레 한 마리 못 죽일 것 같은 멤버 둘은 각각 합기도 3단과 태권도 3단에, 팬 사인회에서는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인 닭발과 부대찌개 재료가 선물로 들어온다. 가냘픈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다 함께 혹독한 다이어트를 하지만 야식이 차려진 상 앞에서는 카메라가 있건 말건 텍사스의 물소 떼처럼 우르르 뛰어간다. 뮤직비디오 촬영장에서는 자신도 미처 몰랐던 괴력으로 세트를 부수고, ‘수줍은’ 연기나 ‘청순한’ 표정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며 당황한다. MT를 간 소녀들이 장작패기 경쟁을 하다 도끼자루를 망가뜨릴 때 임재범의 비장미 넘치는 보컬이 일품인 KBS <추노> O.S.T <낙인>을 BGM으로 깔아주는 제작진의 비범한 센스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전에 없이 ‘삼촌 팬’에 빙의되었던 나를, 소녀들은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다. <에이핑크 뉴스>에서 숙소 문틀을 타고 오르며 허경영의 공중부양을 흉내내던, 눈웃음이 여느 ‘오빠야’들을 녹일 법한 부산 아가씨는 말했다. “저는 원래, 그냥 걸치고 있으면 그게 옷이라 생각했어요.” 그것은, 걸그룹 멤버와 나 사이에 성별 외에도 공통점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최초의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