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국정원과 북한 보위부가 등장한다. 영화는 남북의 첨예한 대치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진로다. 그런데 이 영화, 기괴하다.
영화는 첩보물인가 싶더니 멜로드라마로 장르를 갈아타고, 어느새 블랙코미디로 나아간다. 소소한 웃음이 곁들여져 있지만 영화를 관통하는 정서는 비극이다. 그러나 비장미 없는 비극이라는 점에서 비극적 세계관마저도 비꼰다.
영화 '풍산개' 이야기다.
'풍산개'는 김기덕 감독이 제작하고 시나리오를 쓴 영화다. 첫 장편 '아름답다'(2008)로 주목받은 전재홍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전 감독은 "김기덕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주셨지만 연출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기괴한 상상력은 김기덕 감독의 손길을 떠올리게 한다.
관객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허물어뜨리는 이 영화는 색다르게 남북 관계를 설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휴전선을 넘나들며 3시간 안에 사람과 물건을 배송하는 정체불명의 사나이 풍산(윤계상). 어느 날 국정원으로부터 남한으로 탈출한 북한 고위층 간부의 애인 인옥(김규리)을 데려와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탈북 과정에서 풍산과 인옥은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인옥을 데려오는 데 성공하지만 풍산을 기다리는 건 약속한 금액 대신 철창. 국정원은 그의 정체를 캐물으며 고문을 가하지만 풍산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한다.
한편, 북측 간첩단은 망명한 북한 고위층 간부를 암살하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모진 고문을 받은 풍산은 국정원의 은밀한 제안을 받아들이고 나서 풀려난 후 고위층 간부를 감시하기 시작한다.
'풍산개'에서 풍산의 존재는 끝까지 미스터리로 남는다. 남측 인사인지 북측 인사인지 도통 가늠할 수 없다. 국정원 관계자도, 북측 간첩도 그를 고문하면서 "너는 어느쪽"이냐고 닥달하지만, 그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는다.(풍산의 대사는 한마디도 없다). 마치 최인훈의 소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처럼 그는 남도 북도 선택하지 않는다.
풍산을 연기한 윤계상의 실룩이는 표정처럼 영화는 자주 이죽거린다. 남한 국정원과 북한 간첩단의 비열한 행동을 비꼬는 태도에서도, 장르를 갈아타면서 앞선 장르를 전복하거나 예측 가능한 스토리를 뒤엎는다는 점에서도 이러한 '이죽거림'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풍산이 남과 북측 요원들에게 복수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장점으로 삼을 만할 정도로 재미있고, 메시지도 있다. 풍산과 인옥이 포박된 상태에서 옆구리를 바닥에 댄 채 서로의 입술을 찾는 장면도 독특하다.
작품에 따라 고르지 않은 연기력을 선보였던 윤계상은 적어도 이번 작품에서는 합격점을 줘도 될 만큼 호연했다. 말 한마디 없이 감정을 전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비교적 내면의 격동을 잘 표현해냈다. 평양 사투리를 연기한 김규리뿐 아니라 출연진 대부분의 연기도 자연스럽다.
전반적으로 고른 수준이 장점이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사회를 고찰하는 깊이 있는 시선까지는 다가가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영화의 순제작비는 2억원, 모든 배우가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상영시간은 2시간이다.
6월23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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