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밴드 '장기하와얼굴들'은 최근 발표한 2집 '장기하와얼굴들'에서도 실험적인 틈새를 영리하게 찾아냈다. 곡마다 1960-90년대까지 여러 시대의 감성을 담았지만 복고의 재현과 답습이 아니라 분명 동시대 음악이기 때문이다.
최근 압구정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한 멤버들은 "복고의 자양분을 흡수했지만 독자적인 2000년대 음악"이라고 소개했다.
2년 4개월 만에 낸 2집은 '복고와 독창성의 조화'란 점에선 대표곡 '싸구려 커피'와 '별일 없이 산다'의 연장선에 있지만 한층 다양한 스펙트럼의 세련된 사운드로 완성됐다.
수록곡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한 곡에서만 후렴구는 1960-70년대 영미권 음악, 전주는 1970년대 색채를 보이고, '깊은 밤 전화번호부'는 후렴구에 1980-90년대 풍, '그렇고 그런 사이'는 1980년대 스타일로 편곡했지만 곡마다 현재성이 뚜렷하다.
"멤버 전원이 산울림, 송골매, 비틀스, 도어스 등 옛 음악을 좋아해요. 시간의 흐름과 세련미가 함께 간다고 생각해 옛것은 촌스럽다고 여기는 분들은 우리가 일부러 촌스럽게 음악을 만든다고도 하죠. 하지만 우린 복고의 감성을 세련된 소리로 뽑아내려고 노력했죠. '복고를 잘 구현했어'가 아니라 '요즘 소리와 다른데 괜찮네'란 느낌을 주고 싶었죠."(멤버들)
이러한 지향점을 2집에서 오롯이 실현한 기반은 1집 때와 달라진 밴드 구성의 변화 덕택이다.
안무와 코러스를 맡던 '미미시스터즈'가 빠지고 기존 멤버인 장기하(보컬)ㆍ이민기(기타)ㆍ정중엽(베이스)ㆍ김현호(드럼)에 이종민(건반)이 정식 멤버로 가세했다. 또 김창완밴드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기타리스트 하세가와 요헤이가 객원 멤버로 참여했다.
"1집은 제가 작사, 작곡, 편곡했기에 솔로 싱어송라이터의 음악과 크게 다를 바 없었죠. 하지만 2집에선 제가 전곡을 썼지만 밴드 멤버들이 편곡에 참여, 함께 소리를 섞는 연구를 해 제대로 된 밴드 음악으로 구현했습니다. 밴드로 새 출발한다는 의미에서 2집 제목도 팀 이름을 붙였죠."(장기하)
장기하의 설명처럼 사운드의 변화는 뚜렷하다. 1집이 언플러그드 색채가 강한 포크록이었다면 이번엔 아날로그 느낌의 플러그드 밴드 음악이다. 밴드 사운드를 극대화시키고자 악기를 각각 녹음하지 않고 합주로 녹음했다.
장기하와 정중엽은 "1집 때는 드럼, 베이스, 기타를 차례로 녹음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엔 함께 스튜디오에 들어가 공연하듯이 합주했다"며 "'디테일이 명품을 만든다'는 생각에 사운드에 더 신경을 썼다. 베이스가 원하는 앰프가 국내에 없어 미국에서 공수했고 기타도 깁슨, 펜더 등으로 바꿔가며 연주했다. 대중은 '도어스가 쓴 앰프를 사용했군'이라고 듣진 않겠지만 이런 요소가 더해지면 '노래 좋네'라고 여기게 된다. 장비와 사운드에 해박한 하세가와 요헤이 씨의 도움이 컸다"고 설명했다.
사운드에 공을 들이면서 건반의 전면 배치가 귀에 쏙 감지된다.
1집 이후 건반에 관심을 가진 장기하는 건반 앞에서 곡 작업을 했다. 이종민은 타이틀곡 'TV를 봤네'와 '보고 싶은 사람도 없는데' '뭘 그렇게 놀래' 등에서 피아노, 오르간, 무그, 멜로트론, 클라비넷 등 다양한 건반 악기로 연주했다.
또 수록곡들의 예상하기 힘든 변칙적인 전개도 드라마틱해 허를 찌른다. 일례로 '마냥 걷는다'에서 곡 후반부 연주 상승 부분의 변칙박자가 상상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을 주는 식이다.
정중엽은 "장기하가 드러머 출신으로 박자에 민감해 평이한 박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며 "그래서 밴드 멤버들이 눈치껏 숨소리로 연주의 호흡을 맞춘다"고 말하자, 장기하는 "그 경계를 줄타기하는 느낌을 좋아하는데 그런 게 밴드의 매력이다"고 맞장구쳤다.
멤버들은 이 모든 과정이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라고 입을 모았다.
"음악은 듣기에 좋은 게 제일입니다. 억지로 뭔가를 비틀려고 노력한다거나, 해괴한 소리를 만들려 하지 않았죠."(정중엽)
"작위적인 것도, 평범한 것도 싫어요. 자연스러우면서 독특한 걸 포착했을 때의 쾌감은 창작의 고통에 비할 바가 아니죠."(장기하)
이들의 의도는 세시봉 열풍, MBC TV '나는 가수다'의 인기에서 보여지듯, 들리는 음악에 대한 목마름이 표출된 요즘 가요계 흐름과도 맞닿아 있다.
멤버들은 "그간 TV가 비주얼이 중시된 음악을 획일적으로 전달한 점은 아쉽지만 결국 대중은 매력적인 소리에 귀기울인다는 방증"이라며 "밴드 음악도 특유의 매력적인 소리를 뽑아내면 찾아듣기 마련이다. 아이돌이든, 인디 밴드 음악이든 들어서 좋으면 좋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밴드가 나아갈 미래는 무엇인지 물었다.
"우리는 미래가 아닌 앞일만 생각해요. 오늘 살고 또 오늘을 살아내면 몇년 뒤가 돼 있을 거니까요. 하하."
장기하와얼굴들은 오는 17-19일 서울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2집 발매 기념 공연을 연다. ☎1544-1555, 02-563-0595.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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