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베이 접속 빈도수가 부쩍 늘었다. 짬만 날라치면 호시탐탐 들어가는 건 예사. 어느새 본연의 일을 잊고 이베이의 망망대해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가 한두번이 아니니 이건 중독, 맞다. 찾는 아이템은 딱 하나다. 바로 찻잔과 접시, 프라이팬, 냄비, 커트러리를 통칭하는 식기류. 사실 말이 식기류지 입력할 수 있는 검색어의 수는 무한증식한다. 찻잔만 따져보더라도 종류가 커피잔, 에스프레소잔, 티웨어, 워터글라스로 나뉘는데다, 브랜드까지 세분화하면 아라비아 핀란드, 피기오, 로열 코펜하겐, 빌레로이 앤드 보흐 등 셀 수가 없다. 여기에 접시, 프라이팬 같은 기타 부엌용품들을 추가하는 순간, 꼼짝없이 눈이 빠지고 등짝에 통증이 올 만큼의 무한검색질이 요구된다. 물건은 주로 버지니아, 매사추세츠, 아이오와 같이 생전 가보지 않은 미국의 지역이 대부분. 런던, 뉴욕, 루마니아에도 산재해 있다. 그러니까 난 밤낮으로 세상의 모든 상인들이 한번 혹은 여러 차례 쓰다가 내놓은 그릇들을 한도 끝도 없이 클릭해대는 셈이다.
간사한 게 취향이라고 난 취향의 영속성을 믿지 않는다. 그러니까, 내가 이럴 줄은 나도 몰랐다는 거다. 자고로 그릇이란 본연의 목적이 음식을 담고 먹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면 내가 이렇게 그릇에 집착하는 건 미스터리에 가깝다. 일단 난 요리하는 데 전혀 관심이 없으며, 제대로 세팅해서 챙겨먹는 스타일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이다. 나름 곰곰이 분석을 해보건대 아무래도 그릇 본연의 속성보다는 ‘빈티지’라는 요소에 더 끌린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접시 하나에 그릇의 디자인사와 개인의 가정사가 공존하는 오묘한 조화! 덕분에 요즘은 여행을 갈 때도 몸과 마음의 준비를 충실히 하고 간다. 어느 벼룩시장에서 절대취급 주의를 요하는 깨지기 쉬운 50년 된 찻잔세트를 만나게 된다면 싹 쓸어올 체력과 구매의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사실 그래서 내 트렁크 안엔 언제나 뽁뽁이라는 비장의 패킹 시스템이 함께한다). 빈티지 그릇 애호가, 특히 미드센트리 모던디자인에 환장하는 나로서 지금의 바람이 있다면 1950~60년대 덴마크로 딱 하루만 여행 가서 그릇 상인들과 수다를 떤 후, 물건들을 죄다 한국 배송하고 오는 거다.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소설가가 1920년대로 가서 자신의 우상인 헤밍웨이와 F. W. 피츠제럴드를 만나 대화를 나누는 환상적인 체험을 한 것의 그릇 버전쯤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