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사(김곡, 김선)는 확실히 남다른 도전의식을 지녔다. 아이돌이 세상의 중심이자 또한 구멍이라는 개념을 세우고, 그 개념을 아이돌 잔혹사라는 내용으로 그려내기 위해 과감하게도 현역 아이돌을 기용한 뒤, 아이돌이 차례로 끔찍하게 죽어나가는 공포영화 한편을 만들어낼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돌이 번성한 이래 아이돌을 잔혹하게 그려 세상을 담으려 한 시도는 없었다. 작품의 결과를 떠나 곡사는 늘 미답의 땅에 발을 디뎌왔고 그게 곡사의 전위였다. 물론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가 충무로와 곡사가 맺은 제도적 서약처럼 보이는 면이 없진 않다. 하지만 곡사 자신들이라면 또 한번의 개척에 의의를 둘 것 같다. 가령 이쪽과 저쪽의 경계에 선 제3의 전위 단계. 그 점에 대해 묻고 싶었다. 인터뷰 도중 그들은 ‘같은 문제’로 ‘각자 다른 사람’과 ‘동시에’ 통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마침내 그들이 쌍둥이 형제감독 곡사라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닫게 해주었는데, 그러니 지면 관계상 합쳐야 할 필요를 제외하더라도 그들이 실제로 한 사람이 둘로 나뉜 것처럼 말해주었으므로 인터뷰는 두 사람이 말한 걸 하나로 뭉쳐 전한다.
-곡사는 말하자면 한국에서 활동하는 어떤 감독과 영화집단을 통틀어 비교한다 해도 가장 고집 세고 아방가르드한 창작집단으로 꼽혀왔다. 어떤 의도를 따지기 이전에 일단 그 곡사가 대기업과 손을 맞잡고 일하게 된 것부터 화젯거리였다. 이 과정에서 곡사의 입장과 기대는 무엇이었나. =생각해보면 우리가 굳이 ‘아방’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현상들을 보이는 대로 풀어내고자 했던 거다. 다만 이번에 대기업과 맞잡고 갈 수 있었던 건 그쪽에서 아이돌이라는 사회적인 증상에 관심이 있을 때 우리도 거기에 관심이 생긴, 그런 타이밍의 문제인 것 같다. 돌아보니 우리가 항상 매달렸던 이미지들이 있다. 마네킹이나 마리오네트! 그런 게 지금은 사회적으로도 표면에 드러나고 있고 대표적인 게 아이돌인 거다. 그러다보니 접점에서 만난 거다. ‘아방’하다는 말은 우리에게 부끄럽다. 이 말 꼭 써달라. 부끄부끄! 어쩌다보니 최고의 칭찬을 받은 건데, 음지에서 더 전위적이고 공격적인 영화를 만드는 분들께는 부끄럽다. 우리에게는 다른 소명이 있는 것 같다. 상업영화와 실험영화의 경계지점에 있는 것이 지금 우리의 위치다. 여기서 교두보를 잘 만드는 거다. 양쪽의 칼날을 쥐고 우리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잘했으면 좋겠다. 칼춤을 춘다고 할까, 맞네! 칼춤. 그걸 잘 췄으면 좋겠다.
-기획의 시작은? 구상의 초기 단계에 대해 들려달라. =초기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모델이 나오는 공포영화도 있었고. 거울 귀신이 나오는 미러 돌스 이야기도 있었고. 윤성호가 만들면 재미있을 아이돌 노동조합 코미디도 있었고. 아이들의 반목과 시기에 지금보다 더 강하게 초점을 맞춘 버전도 있었고. 그런데 좀 불편해 보일 수 있는 그런 것들이었다. 회사에서는 너희들 이렇게 하면 투자 못 받는다고 했고. 여러 가지 버전을 거쳐서 낙점된 게 지금 이야기다.
-곡사가 호러 장르를 연출하면 흥미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호러라는 장르는 평소에 곡사에게 영화적으로 어떤 가능성을 지닌 장르였나. =엄청난 관심이 있었다. 원래 공포영화 마니아이기도 하고. 하지만 우리가 봤던 공포영화가 귀신영화는 아니더라. 이번 영화는 귀신이 나오지 않나. 그게 좀 힘들었다. 귀신 같은 타자는 끈적거려야 하거든. 아, 근데 얘를 끈적거리게 하는 게 어려운 거다. 이거 우리가 너무 추상적으로 말하나? 하여튼 귀신영화는 끈적거려야 한다. 콘티를 짤 때도 그랬다. 정적으로 콘티를 짜다가도 이게 아이돌을 주제로 한 거라고 생각하면 갑자기 안 붙기 시작하는 거다. 아이돌이면 현란한 뮤직비디오가 있고 앵글도 리드미컬하고 이런 것들을 반영해야 하니까, 이때부터 난점이 생기더라. 빠른 아이돌스러움과 느린 공포영화의 서스펜션을 섞으면서 생기는 어려움 같은 거였다. 앞으로 누군가 아이돌영화 만든다면 말리고 싶다. 이거 생각보다 쉽지 않다.
-좀더 설명해보자. =아이돌은 화려하다. 퍼블릭하고 오픈되어 있다. 하지만 공포는 내밀해야 하고 거기서 서스펜스가 나온다. 그런데 서스펜스 중에서도 가장 좋은 서스펜스는 정신적인 서스펜스다. 그건 사람이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곳에서 나와야 제대로다. 말하자면 가족이나 집의 느낌. 화장실, 이불 이런 데서 나와야 하는 건데 아이돌은 실상 고아에 가깝다. 엄마, 아빠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스포트라이트와 대중의 시선만 있다. 형제도 없고 대신 동료만 있다. 그 때문에 한 공간 안에 갇힌 가족적인 무언가로 만들어 보려고 다른 컨셉을 생각해본 적도 있다. 아이돌 학원 컨셉도 있었고 아이돌이 산장에 가서 합숙하는 합숙소 컨셉도 있었다. 가족을 대체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본 거지. 한마디로 개드립치는 거지, 개드립! 결과적으로 무대 위에서, 뮤직비디오에서, 쇼프로그램에서 귀신을 배치하려고 노력한 이유다. 그래서 귀신이 화면에 나온다든지 춤추다가 나온다든지 한다. 그런 건 또 한편으로는 편집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편집감의 문제와도 직결됐던 거고.
-이런 궁금증이 있다. 실제로 영화의 주인공 함은정은 현역 아이돌이다. 그녀가 그러지 않겠다고 마음먹는다 해도 영화를 찍다 보면 이 영화가 어딘가 자신의 현실을 건드린다는 느낌 때문에 불편해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도 걱정했다. 하지만 그녀는 단단하다. 아이돌로 성장한 캐릭터 때문일까. 대범하다. 아, 어떻게 말해야 할까. 뭐가 들어가면 잘 통과시킨다. 하지만 은정은 잘 통과시키고 객관화시킨다. 간접화법의 소유자라고 해야 하나?
-15세 관람가에 맞추려고 했다. 중·고등학생 관객을 염두에 두었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런데 이 아이들 대부분이 아이돌에 미쳐 있다. 그러니까 아이돌에 미쳐 있는 상대방에게 그들이 열광하는 아이돌의 소멸을 보여준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아이러니하지! 그렇다. 그들의 아이러니가 우리의 아이러니였다.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불편해질 수 있는 거다. 그래서 조정을 하는 거다. 하지만 어느 면에서 우리처럼 올드 제너레이션은 불편해 할지 모르지만 그들은 오히려 더 빨리 소비를 하고 더 빨리 적응하는 면이 있다. 어제 시사를 보면서 느낀 것이 있다. 회사에서는 플리커 페이스(영화 속 여주인공의 얼굴 위로 빛과 어둠이 강렬하게 번갈아 쏟아져내리는) 장면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너무 아방하니 빼라고도 했다. 그런데 어제 영화 속 핑크 돌즈로 출연한 여배우 네명 그리고 함은정의 팬들에게 물어봤는데 다들 재미있고 신선했고 무서웠다고 하더라. 우리가 시스템 안에서 우려하는 것보다 그들은 훨씬 빠르고 자연스럽게 소구하고 있는 것 같다.
-곡사가 이번 영화에서 상업적인 요소를 감안하지 않을 거라는 순진한 예상을 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곡사 영화를 순차적으로 보아왔던 관객으로서 개인적으로는 어떤 곡사만의 호러를 기대했다. 그 점에서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예컨대 곡사만의 호러라면 어떤 질감으로서의 공포가 될 거라고 여겼는데 결과적으론 질감 대신에 상황으로서의 공포를 선택한 것 같다. =실망스러웠나? 일단 사과를 드린다. 하하하. 상황으로 대체하려 한 건 맞다. 하지만 그럼에도 잃지 않으려고 했던 건 기존의 공포와 달라야 한다는 것이었다. 뮤직비디오를 찍는 장소에서 공포가 시작된다든지 화면의 일그러짐이 일어난다든지 주사선이 어긋난다든지 하는 것들이 지금 말한 일종의 질감에 해당할 거다. 그건 일종의 상황을 전제한 질감들인데 <자가당착>이나 <고갈>에 비하면 물론 애들 장난이지만 그럼에도 그걸 잃지 않으려 했다고 고백한다! 대신 더 중요하게 여긴 다른 질감도 있다. 어둠에 잠긴 색깔들이다. 아이돌을 공포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게 그거였다. 그게 촬영의 주제였다. 아이돌은 과연 어떤 색이냐, 그들이 얼마나 어둠에 잠겨 있을 것이냐, 그것 때문에 현장은 아침부터 늘 난리였다. 좀전에 말한 플리커 페이스도 마찬가지다. 그건 소멸과 생성, 어둠과 빛, 주제로서의 비주얼과 관련을 맺고 있다. 전격적으로 드러난 것이 주인공의 후반부 장면이다.
-그 장면은 인상적이었다. =그런가? 하하하. 곡사가 취할 수 있는 아이돌 호러에서 인장 같은 장면이다. 모니터 시사를 해보니 어린 관객이 눈이 아프다, 어지럽다 등의 반응도 있었다. 투자 제작사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넣어야 한다고 했다. 다름 아니라 애들이 거기에 반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논쟁거리로 시끄러웠던 또 다른 장면은 거울 방 장면이다. 일련의 공포영화는 거울상이 실물과 따로 움직인다는 건데, 우리는 그걸 바탕으로 하되 속도감이 느껴지도록 마구 밀려오는 것을 해보고 싶었다. 정리하자면 질감의 문제는 색, 플래시, 플리커가 주안점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극의 설정에서 궁금한 게 있다. 이를테면 이 영화는 ‘그건 그렇다 치고’ 한 다음 진행하는 장면이 많은 것 같다. 녹음실에서 주인공과 동료 언니와 프로듀서 셋이 모여 뭔가 일이 일어난 것처럼 혹은 해결점을 찾은 것처럼 분주하게 서로들 긴장하고 환호하고 하는데 사실 그 이유를 관객인 우리는 잘 못 느끼겠다는 것이다. 영화 혼자 ‘이거 다 알지? 그렇다 치고!’ 한 다음 진행된다고 할까. 서사적으로 본다면 무언가 보충이 필요하지 않았을까. =그런 게 흥미롭지 않나? 묘사가 없고 서사만 있는 희한한 경우라 한편의 뮤직비디오 같은 거다. 만약 너무 빠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올드한 것일 수 있다는 거다. 하하하. 하여간에 알게 모르게 한편의 뮤직비디오처럼 전개가 된 것 같다. <CSI> 같은 거 있지 않나. 그것도 그렇다 치고 가지 않나. 그런데도 신나지 않나. 유튜브하고 비슷하다. 이 영화를 보려는 젊은 세대들에게는 맞는 속도인 것 같다. 우리는 서사의 불친절함을 감수하고서라도 아이돌 뮤직비디오의 속도를 찾으려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정리해보자. <화이트: 저주의 멜로디>는 곡사의 필모그래피에서 어떤 의미로 남을까. 그리고 곡사는 이제 또 어디를 향해 가나. =전초전이다. <자가당착> 시리즈를 하면서 느꼈던 이미지들, 마리오네트의 그 이미지가 이제는 춤까지 추는 것이다. 그게 아이돌이다. <자가당착>에서 어떤 절대자가 있고 그들이 포돌이, 마네킹을 조종한다고 가정했을 때 지금 그 상황이 아이돌로 옮겨온 것 같다. <자가당착>이 코미디와 정치 풍자였다면 이쪽은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같다. 나중엔 또 나아가겠지. 뭘 하게 될까? 아 방방 뛰고 접신하겠지? 그러고 보니 실제로 접신에 대한 영화를 준비 중이다. 무당들, 영매야말로 진정한 마리오네트 아닌가! 그들에 대한 아이템이 있다.
-충무로를 바탕으로 계속 진전할 계획인가. =그러고 싶다. 우리가 그런 밸런스를 찾는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 같진 않다. 망할 때도 있고 본전도 치겠지만 근근이 적당히 살아가고 싶다, 우하하. 다른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번 우리 상황은 되게 힘든 경우였다고 하더라. 하지만 오히려 우린 견딜 만했거든. 우하하하. 곡이가 생각하는 독립영화가 하나 있고 선이가 생각하는 상업영화가 하나 있다. 어느 쪽이든 더 좋은 걸 찾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