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레이, <행운>(La Fortune), 1938, Oil on canvas, Overall 24x29in, Framed 60.96x73.66cm
<이것이 미국미술이다: 휘트니 미술관전> / 6월11일~9월25일 / 덕수궁미술관 / 02-2188-6000 뉴욕에 짧게 체류할 일이 있었다. 미술관 두곳 정도를 둘러볼 시간밖에 안됐는데, 가장 먼저 달려간 곳이 휘트니 미술관이었다(이후엔 MoMA에 들렀다). 당시 미국 최대 규모의 컬렉션을 자랑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과감하게 포기한 까닭은, 가장 미국적인 미술 작품들을 먼저 접하고 싶어서였다. 휘트니는 1931년 설립된 이래 ‘미국의 미술과 작가들을 지원’한다는 하나의 목표를 지속적으로 실천해왔다. 앤디 워홀, 만 레이, 에드워드 호퍼, 로이 리히텐슈타인, 조지아 오키프 등 쟁쟁한 미국 예술가들이 휘트니 미술관에 작품을 건 대표적인 인물이다.
앞서 언급한 다섯명의 작가를 비롯해 미국을 대표하는 예술가 47명의 87여개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이 개최하는 <이것이 미국미술이다: 휘트니미술관전>을 통해 소개된다. 휘트니 미술관의 컬렉션이 아시아에서 전시되는 건 이번이 최초다. 공개하는 작품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번 전시가 시대와 장르를 넘어서 말 그대로 전방위의 미국 현대미술을 조명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존 슬론의 <그리니치 빌리지의 뒷골목>(1914)은 사실주의적 화풍으로 미국의 일상을 들여다봤던 1900년대 초반의 작품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서도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골목의 풍경을 묘사했지만 포근하고 정다운 느낌이 드는 감수성 풍부한 그림이다. 미국 작가 중 유일하게 다다와 초현실주의 화풍을 모두 이끌었던 작가로 손꼽히는 만 레이의 <행운>(1938)도 추천작이다. 당구공이 놓인 당구대와, 전혀 관련이 없는 무지개 빛깔의 구름을 한 그림 안에 배치함으로써 마음속에 떠오르는 심상을 자유롭게 표현한 작품이다. 한국 관객에게 인기가 높은 에드워드 호퍼(<해질녘의 철로>)와 조지아 오키프(<추상>)의 작품도 소개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미국 미술의 전성기를 알린 팝아트 작품들이다. 팝아트의 대명사인 앤디 워홀의 <녹색 코카콜라 병>과 팝아트에 색채를 입힌 웨인 티보의 <파이 진열대>, 만화의 기법을 회화에 도입해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 사이의 장벽을 허물었다고 평가받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크리스탈 그릇이 있는 정물> 등 지금은 클래식이 되어버린 팝아트 작품들을 마음껏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