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룡동 판타지-신화재건 프로젝트>(왼쪽), 구룡마을(오른쪽)
서울 강남의 끝자락 구룡마을. 정확히는 서울시 강남구 개포2동 567번지 일대다. 그 배경이 되는 도곡동 일대의 고층건물군이 높고 화려한 만큼 철거민들의 마을인 구룡마을은 낮고 초라하다. 하지만 그 이름은 예사롭지 않다! ‘타워’나 ‘팰리스’ 혹은 ‘인스토피아’, ‘휴스포’, ‘캐릭터’, ‘아크로빌’을 어떻게 ‘아홉 마리 용’의 카리스마에 견줄 것인가? ‘우리 시대의 신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라는 무용가 김윤진의 상상력을 펼치기에 이보다 더 극적인 장소는 없었다.
엉켜 있는 아홉 마리 용 혹은 나뭇잎의 수맥처럼 수없이 쪼개지고 갈라지는 구룡마을의 골목길에 눈을 가린 선녀가 나타난다. 그 선녀를 인간 남자가 인도하며 아홉개의 여의주를 찾아 함께 마을을 누빈다. 골목길의 구조상 전체를 파악할 수도 없고 다음 모퉁이에서 무엇이 나타날지 알 수도 없다. 장애를 가진 ‘신’과 그를 돕는 ‘인간’의 위태위태한 동행은 전문 촬영감독 혹은 동네 아이들의 손에 쥐어진 카메라가 기록한다. 이 과정은 몇 차례 반복된다.
모든 존재와 장소를 신화적 관점에서 보는 것이 <구룡동 판타지-신화재건 프로젝트>의 묘미다. 다리가 불편해 주로 방 안에서 기거하는 주민 ‘보노사 엄마’는 모성 그 자체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에 마음을 쓰며,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이를 위해 기도한다. 그녀는 또 다른 현대판 신화인 <매트릭스>의 오라클을 연상케 한다. 선녀를 인도하는 ‘참여적 관찰자’ 중 하나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마일런 하트마넥은 처용신화의 주인공과도 같다. 혹자는 여러 장면에 등장하는 동네 아이들을 그리스 신화의 사티로스에 비유했다. ‘너는 누구냐?’는,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스핑크스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골목길의 구조는 크노소스의 미궁보다 더 흥미롭다. 신화로 보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신화로 보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 서울시는 구룡마을을 민간개발이 아닌 공영개발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내용대로라면 김윤진은 그야말로 절묘한 시점에서 이 마을을 배경으로 한- 어쩌면 마지막일- 창작 작업을 한 셈이다. 이야기는 만들어졌고 그 장소는 없어질 것이다. 씨앗은 뿌려졌다. 세상은 구룡마을의 신화를 받아들일까? 세상은 준비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