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어느 한순간이 아닙니다. 저는 매일 매일이 결정적 순간입니다. 제가 카메라 앞에서 가장 조심스럽게 생각하는 건 진실성입니다. 말할 때, 행동할 때 진실을 담고자 합니다. 그건 연기에 있어서 중요한 문제입니다."
감정을 폭발시키는 연기는 어느 정도 숙련된 연기자라면 가능하다. 그러나 마음의 격동을 미세한 표정 변화와 몸의 움직임만으로 온전히 전달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이자벨 위페르는 미카엘 하네케의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그러한 경지를 보여준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 위페르가 지난 25일 6박7일 일정으로 한국을 찾았다. 오는 29일부터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는 '이자벨 위페르-위대한 그녀' 사진전과 26일 개봉되는 영화 '코파카바나'의 홍보를 위해서다. 1998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이후 13년만의 내한이다.
위페르는 클로드 샤브롤 감독의 '비올레트 노지에르'와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피아니스트'로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두차례 받았다. 샤브롤 감독의 '여자이야기'로 베니스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카트린느 드뉘브 등과 출연한 '8명의 여인'으로는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공동수상했다.
세계 3대 국제영화제 모두에서 상을 받은 것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그런 그녀를 프레임에 담기 위해 세계적인 사진작가들이 찾았다. '결정적 순간'의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을 비롯해 로버트 프랭크, 리처드 아베돈, 에두아르 부바 같은 사진작가들이 그녀를 찍었다.
오는 8월13일까지 열리는 전시회에는 위페르의 다양한 면모를 찍은 110여점의 사진이 전시된다. 한국작가 천경우도 참여했다.
위페르는 26일 한미미술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진전과 관련해 "사진전을 열기 위해 찍었다기보다는 영화 홍보, 패션모델 등 여러 활동을 하면서 찍은 사진들을 모아놓은 결과물"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제 얼굴을 가지고 여러 사진작가가 그들만의 방식으로 찍은 사진을 모아 놓은 전시"라며 "그래서 제 자신뿐만 아니라 각자의 표현방식으로 표현해준 사진작가도 모델인 저만큼이나 돋보이는 전시다. 그런 점에서 '위대한 그녀'라는 사진전의 주제가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110여점에 이르는 작품 중에서 특별히 마음에 드는 작품은 있을까.
"작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개성있게 표현했어요. 그들 각자의 시선이 있기 때문에 우열을 가리기는 곤란하지만 사진을 찍으면서 인상적인 경험은 있었어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의 작업은 놀라웠어요. 그가 보여준 작업의 간결성 때문이죠. 제 집으로 찾아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그냥 사진을 찍었어요. 인위적인 포즈를 취하지 않고 자연스런 상황에서 사진을 찍었죠. 삶의 한 부분을 그대로 떼어낸 것 같았어요. 인상 깊었습니다."
26일 개봉된 '코파카바나'는 사이가 틀어진 엄마와 딸이 함께 행복해지는 과정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친딸인 롤리타 샤마와 호흡을 맞췄다.
그는 "'코파카바나의 바부는 긍정적이면서도 타인에게 관대한 캐릭터"라며 "밝고 명랑한 역할을 소화하다보니 나도 즐거웠다"고 했다. 그는 또 '코파카바나'의 바부 역할과 자신의 삶은 전반적으로 다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상상력을 가지고 살아가기, 삶을 긍정적이고 이상적으로 바라보기는 비슷해요. 배우는 꿈을 먹고 살아가는 직업입니다. 그래서 삶을 아름답고 이상적으로 바라보죠. 배우를 잘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상력도 중요해요. '코파카바나'의 바부도 상상력이 중요한 캐릭터입니다. 바부가 항상 지금보다 나은 삶을 꿈꾼다는 점도 제 삶과 비슷하네요."
위페르는 장뤼크 고다르, 클로드 샤브롤, 미카엘 하네케 등 거장 감독들과 호흡을 맞췄다. 어느 감독과 궁합이 가장 잘 맞았을까라는 질문에는 "샤브롤 감독"이라며 "그분과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찍었다. 여성으로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발산케 해 주셨다"고 했다.
그는 "영화라는 매체는 서로의 문화를 평화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대화의 창"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팬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그러면서 한국 영화에 꼭 출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같이 일하고 싶은 한국 감독이 있느냐는 질문에 "꼭 받고 싶은 질문"이라며 "한국 감독과 언젠가 호흡을 맞추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한국영화를 좋아해요. 한국영화는 프랑스에서도 인기가 높아가고 있습니다. 이창동, 홍상수, 임상수, 김기덕, 박찬욱, 봉준호 등을 알아요. 언젠가 그들과 호흡을 맞춰보고 싶습니다."
그는 2009년 칸영화제에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심사위원상을 받았던 때다. "박찬욱 감독은 제가 좋아하는데 (칸 영화제)당시 '박쥐'를 심사했었죠. 봉준호 감독은 올해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 심사위원장을 맡기도 했고요."
한국영화가 프랑스에서 인기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프랑스인에게 통하는 비슷한 감성을 건드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영화에서는 프랑스인에게 통하는 비슷한 감성이 있는 것 같아요. 약간의 거리를 두는 것, 차가운 정서 등이 프랑스 사람들과 잘 맞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세련되고 절제된 느낌이 납니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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