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내 죽음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했어요. 그리고 이야기의 끝에는 현재를 열심히 살자고 말하고 싶었어요."
문제작 '49일'을 끝낸 소현경 작가에게는 질문이 필요 없었다.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자마자 봇물 터진 듯 이야기가 쉴새 없이 나왔다.
빙의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 멜로드라마 '49일'은 지난 19일 막을 내렸지만 그 결말을 둘러싸고 네티즌의 갑론을박이 여전히 뜨겁다. 주인공 중 한 명이 끝내 죽었고, 두 주인공이 자매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드라마의 팬들은 꽤 큰 충격을 받은 듯하다.
지난 24일 작가의 작업실이 있는 경기 고양 일산에서 소 작가를 만나 '49일'의 뒷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사진 찍는 것은 사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힘든 작업이었다"는 소 작가는 결말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어쩌겠나. 욕먹는 것도 감수해야 하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으니…"라며 웃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독특한 이야기였다.
▲살다보면 고통스러운 순간이 있는데 언젠가 그런 때에 혼자 지리산 종주에 나선 적이 있다. 2박3일간 산을 타고 내려오려니 체력이 고갈돼 계획한 시간 내에 내려오지 못하고 그만 산속에서 홀로 밤을 맞게 됐다. 12월 말 겨울 산속에서 시계도 없고 휴대전화 배터리도 나가버렸다. 그때 '여기서 내가 무슨 일을 당하면 아무도 모르겠다' 싶더라. 무서우니까 별별 생각이 다 들더라. 그런데 내 인생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아니라 남겨진 사람들이 안타까웠다. 내가 뒤처리를 못 하고 떠나버리면 우리 가족은 어쩌나 싶었다. 인간이 나 하나 잘 살자고 살아가는 게 아니구나 느꼈고 그 생각으로 3시간 동안 깜깜한 산길을 헤쳐 내려왔다.
몇년 전에는 동료작가 한명이 젊은 나이에 갔다. 암 투병 중이긴 했지만 방송사 편성을 받아두고 대본을 집필 중이었다. 그 작가는 잠깐 낮잠을 잔다고 방에 들어갔다가 그 길로 떠났다. 아무런 준비도 안하고 간 것이다. 그런 일련의 일들을 겪고 나니 죽음 앞에 정리의 필요성을 느꼈다.
--결말에 대해 이견이 분분하다.
▲애초 계획했던 대로다. 이 드라마는 처음부터 지현이 죽는 설정이었다.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게된 사람이 자신을 정리하고 떠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준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지현은 살아나고자 아등바등했고, 민호(배수빈)와 인정(서지혜)의 계략을 막아보려했다. 지현이가 이 기간을 안 거쳤으면 가짜 인생을 살다 죽었을 텐데 그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시간을 준 것이다. 지현의 죽음에 대해서는 '사람에게는 정해진 수명이 있는데 뜻하지 않은 돌발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는 이수의 대사를 통해 두 차례 복선을 깔았다. 다만 더 많은 것을 미리 알려줄 수 없었기 때문에 시청자가 적잖이 당황한 것 같다. 나 역시 중간에 고민하기도 했다. 지현이를 죽이면 욕을 많이 먹을 것임이 분명했지만 그래도 계획대로 갔다.
지현과 이경이 자매라는 것도 처음 계획대로다. 부모는 지현이 때문에 이경을 잃어버린 것이었는데, 결국 지현이가 잃어버린 언니를 찾아주고 떠나는 것이다. 또 지현이를 떠나보낸 부모의 심정을 생각해 이경이를 그들의 잃어버렸던 또다른 딸로 설정했다. 물론 굳이 혈연이 아니어도 이경이 남겨진 지현의 부모에게 가족같은 존재가 될 수 있겠지만 그가 다시 찾은 딸이라면 더욱 위안이 될 것 같았다.
--지현(남규리 분)이 되살아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시간으로 49일을 준 이유는 뭔가.
▲처음에는 단군신화에서 곰이 사람이 되는 데 소요된 100일로 하려고 했다. 그러다 사람들에게 뭔가 익숙한 숫자여야겠다고 생각해 우리 장례문화에도 있는 49일로 정했다. 49재는 불교 제례이기도 하지만 우리 전통신앙에서도 찾을 수 있다.
--지현이 되살아난 후 6일을 더 살았던 것에 대해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종교적 의미는 전혀 없다. 드라마가 종교색을 띄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냥 마지막 정리를 위해서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전체적으로는 56일간의 이야기가 됐다. 지현이 도중에 페널티를 받으면서 49일에서 이틀이 줄어든 47일간 동분서주했고, 다시 살아나서는 6일을 보냈다. 그리고 지현의 장례 후 이경(이요원)이 지현의 언니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그것까지 지켜본 스케줄러 이수(정일우)가 최종적으로 떠나기까지 3일이 흘렀다.
--지현과 이경, 그리고 빙이경(빙의된 이경)까지 셋을 오가는 스토리가 복잡했다.
▲네티즌이 빙의된 이경에게 '빙이경'이라고 붙여준 것을 보고 '딱이다' 싶었다. 네티즌들 참 대단한 것 같다.(웃음) 빙의를 소재로 한 드라마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런 식은 없었던 것 같다. 셋을 오가느라 순간순간 많은 문제에 부딪혔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당연히 빙이경이다. 그러나 사람이 결코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외로움 끝에 죽으려고 하는 이경이 필요했고, 빙의를 소재로 한 여느 드라마와 다르게 하기 위해서는 지현이의 영혼도 계속 등장시켜야했다. 그러다보니 쓰기가 어려웠고 시청자도 혼돈을 느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뭐였나.
▲거창한 것은 없다. 그저 현재에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후회가 없는 게 아닌가 말하고 싶었다. 나이를 먹어도 매일 후회의 연속인데 어느 고비를 넘기고 나니 이제부터라도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49일'은 나 자신에게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찬란한 유산' '검사 프린세스' '진실' 등 미스터리 멜로에서 남다른 재주를 과시해왔다.
▲누구는 나보고 '달달한 신'을 많이 안 써준다고 뭐라고 하던데 그런 것은 다른 작가들도 많이 쓰지 않나. 난 기본적으로 뒤가 궁금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러다보니 멜로에 미스터리를 가미하게 된다. '찬란한 유산'이 잘돼서 이런 소재도 해볼 수 있었다. 나 역시 늘 망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있다. '49일'이 대박은 아니었지만 망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봤다는 점에서 내겐 의미가 있다.
pretty@yna.co.kr
( )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