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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취향] 네일 케어의 해소감
장영엽 2011-06-03

매주 마감이 다가올 때마다 치르는 의식이 있다. 방 한켠에 놓인 침대와 싸우며 오늘도 긴 밤을 버텨보자 다짐하는 작은 위로다. 입사한 첫해인 2008년에는 마감 전날 늘 드립커피를 내려 마셨다. 여과지에 담긴 커피알갱이들이 넘칠세라 끓는 물을 조심스럽게 따르고 있자면 마감 때문에 조마조마한 마음이 한결 가라앉는 듯했다. 이듬해부터는 커피통과 여과지를 치우고 아세톤과 네일 케어 도구들을 가까이 하게 됐다. 아직까진 네일 케어에 대적하는 적수가 없어 에나멜의 코를 찌르는 냄새와 함께 마감을 시작하고 있다.

셀프 네일을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길거리 혹은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색감이 마음에 드는 매니큐어 제품을 하나둘 구입하다보니 사모은 게 아까워서라도 1주일에 한번씩은 꼬박꼬박 손톱 색깔을 바꾸게 되었고, 손톱 사이로 삐져나온 큐티클이 흉해 보여 그걸 정리해주는 니퍼를 사게 되었고, 손톱을 빠르게 말려준다기에 퀵 드라이어 제품을 찾게 되었고…. 이렇게 다단계 구매를 거듭하다보니 어느덧 옷상자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의 컬렉션을 보유하게 된 거다. 그런데 마감과 네일 케어가 대체 무슨 관계냐고? 매니큐어가 잔뜩 담긴 옷상자를 볼 때마다 한마디씩 덧붙이시는 어머니에게 하는 변명으로 대답을 대신하련다. “안 번지게 바르다 보면 정신 집중에 도움이 돼요. 색깔이 예뻐서 기분 전환도 돼고. 그리고 저는 왠지 매니큐어 냄새를 맡으면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나도 네일 케어를 하기 전까지는 몰랐다. 기껏해야 가로 1cm, 세로 1.5cm 정도 되는 작은 손톱에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액체를 바르는 데 이렇게 큰 해소감을 느낄 줄이야. 오를리의 ‘그린 위드 엔비’를 바르면 <해리 포터> 시리즈의 슬리데린이나 <오즈의 마법사>의 에메랄드성이 생각나 기분이 묘해진다. 차분한 일주일을 기원할 때는 펄이 점잖게 섞인 제시카의 ‘미드나잇 스타’를, 활력소가 필요할 때는 멀리서도 눈에 들어오는 누바의 ‘파이어 스파클’을 바르면 그만이다. 그러고보니 내게 네일 케어는 마감 속 잠깐의 일탈을 넘어서 ‘소망하는 한주’의 모습을 미리 짚어보는 의미로 다가오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주의 손톱 색깔이 궁금하다고? 어제 네일할 시간을 놓쳐서 아직까진 살색이다. 그러나 가방 속에서 누바의 ‘파이어 스파클’이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