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른 날에> 5월29일까지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 1544-1555 기억하고 계십니까. 31년 전 오월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우리 현대사에서 잊을 수 없는 아픔이다. 그 불편한 진실이 무대 위에서 되살아났다. 그 쓰라림 탓일까. 연극 <푸르른 날에>는 한 차례 ‘엎어진’ 진통을 겪고 올랐다. 차범석희곡상 제3회 수상작을 무대화한 작품이다.
2층 구조로 된 무대. 막이 오르면 1층에는 스님이 수행 중이고, 2층에는 중년의 여인이 바느질 중이다. 이어 승려 여산은 조카이자 딸인 운화의 결혼 소식을 듣는다. 스님과 그 여자 사이엔 무슨 일이? 기억은 그들이 푸르른 날이었던 30년 전으로 돌아간다. 전남대를 다니는 야학 선생 오민호는 전통 찻집 아르바이트생인 윤정혜와 사랑에 빠져 있다. 둘의 사랑이 깊어가던 80년 5월18일 항쟁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친다. 정혜의 동생 기준은 전남도청에서 숨지고, 민호는 살아남기 위해 비겁해진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신의 삶을 끝내 인정하지 못하고 민호는 속세를 떠나 승려가 된다. 민호의 아이를 가진 채 그의 형과 결혼한 정혜, 그리고 아버지를 삼촌으로 알고 살아온 딸. 이들은 30여년이나 지나서야 화해와 용서를 하게 된다. 통속극 구조다. 하지만 아프고 웃음이 난다.
고선웅 연출은 어둡고 무거운 서사와 멜로드라마식 대사를 희극적인 연극어법을 사용해 유쾌한 통속극으로 변주한다. 짓눌리는 5·18의 무게는 만화적인 과장과 웃음으로 여러 번 출렁였다. “지난 시대의 아픔이 요즘 관객에게도 자연스럽게 배어들었으면 좋겠다”는 고선웅의 진심이 전달되는 순간이다. 더불어 광주민주화운동이 과거의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역사로 이어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극 마지막에 울려퍼지는 서정주 시, 송창식 노래 <푸르른 날>의 가사처럼.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