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여기에 썼던 글을 지우기 위해 쓴다. 언젠가 이곳에 플라톤의 ‘코라’(chora)를 주제로 한 데리다와 아이젠만의 건축 프로젝트에 관해 쓴 적이 있다. 그들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자기들끼리 주고받은 구상을 담은 한권의 책으로 남았다. 이 프로젝트의 발주자는 뒤에 “두 사람은 애초에 건축을 지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애초에 그들의 작업이 초점이 어긋났다는 느낌에서 쓴 글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내 글 역시 살짝 초점이 어긋났다는 느낌이다.
‘코라’의 개념으로 돌아가보자. 플라톤은 ‘이데아론’을 수립하다가 이데아계와 현실계가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설명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념계가 보편자의 세계라면 현실계는 개별자의 세계다. 이념계가 정신의 세계라면 현실계는 물질의 세계다. 이렇게 성질이 급진적으로 다른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것일까? 이 대목에서 플라톤은 두 세계를 무리 없이 매개해주는 제3의 요소를 상정하게 된다. 그 매개항이 바로 ‘코라’(chora)다.
한마디로, 코라는 (정신의 눈에만 보이는) 이데아에 (감각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 형상을 부여해주는 장치라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플라톤은 코라의 모습을 일종의 ‘체’로 상상했다. 즉 이데아라는 이름의 추상적 관념들이 이 ‘체’를 통과해 나가는 과정에서 구체적이고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형태를 얻어 입는다는 얘기다. 물론 이 순서를 뒤집어, 구체적이고 감각적이고 물질적인 사물들을 이 ‘체’로 통과시키면 거기서 이데아계에 속하는 추상적 관념들이 걸러질 거다.
코라의 모더니즘
따로 ‘코라’와 같은 명칭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철학자들도 비슷한 지점에 주목한 바 있다. 가령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모든 것의 바탕에는 근원적 의지가 있다. 예지계에 존재하는 세계의지가 현상계에 들어오면 ‘나’, ‘너’, ‘그’와 같은 개별의지들로 쪼개진다고 한다. 이를 쇼펜하우어는 ‘개별화 원리’라 불렀다. 플라톤이라면 그것을 ‘코라’라 부르지 않았을까? 또 하이데거에게 ‘코라’의 정의를 요청한다면 아마도 그것을 ‘존재에서 존재자를 생성하는 기제’라 규정했을 것이다.
데리다와 아이젠만이 미처 몰랐던 것은, 코라의 형상화가 결코 새로운 시도가 아니라는 점이다. 가령 평론가 로잘린드 크라우스는 ‘그리드’(grid)의 사용을 모더니즘 미술의 한 특징으로 들었다. 공교롭게도 그리드는 플라톤이 코라의 은유로 사용한 ‘체’를 닮았다. 이집트인들은 벽화나 조각상을 제작하는 데 모눈을 사용했고, 오늘날 디자이너들도 그림을 그릴 때 종종 모눈종이를 사용한다. 이때 예술가의 머릿속에 들어 있던 관념이 모눈종이라는 ‘체’를 거쳐서 구체적 형상으로 태어난다.
현대의 예술가들은 그리드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기보다는 아예 그리드 자체를 그림으로 그리는 경향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분석적 입체주의 시절의 피카소와 브라크다. 이들은 단일한 공간을 이질적 시점의 파편들로 해체한다. 이때 각기 다른 시점을 머금은 그 파편들은 화폭 위에 그리드를 연상시키는 격자모양으로 배치된다. 이집트 화가들이 그리드를 통해 구체적 형상으로 나아갔다면 이들은 거꾸로 구체적 형상들에서 추상화함으로써 그리드에 접근했다고 할 수 있다.
몬드리안은 어떤가? 그는 ‘나무’ 시리즈를 통해 나무의 형상이 점차 기하학적 도형으로 단순해지는 과정을 보여준 바 있다. 이 과정의 끝에서 그는 더이상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은 순수추상에 도달한다. 그의 최초의 순수추상(1917)은 교차하는 수직과 수평의 막대기들의 분포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우주생성의 원리를 디지털(수평/수직)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이어지는 시기에 몬드리안은 아예 화면 전체를 수직선과 수평선이 만들어내는 원색의 색면들로 구성하게 된다.
가장 극단적인 예는 말레비치일 것이다. 그는 화면에서 모든 것을 지우고 달랑 검은 사각형 하나만 남겨 놓았다. 이 정사각형은 그 안으로 세상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블랙홀일 수도 있고, 거기서 세상의 모든 형상이 튀어나오는 화이트홀일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의 극한, 다시 말하자면 존재와 무의 경계이자, 존재와 존재자의 경계이자, 동시에 회화와 비(非)회화의 경계라 할 수 있다. 말레비치 자신은 이 정사각형, 이 프레임, 이 그리드가 ‘모든 의미를 함축한 무(無)’라고 말했다.
솔 르윗을 비롯한 60년대 미니멀리스트들은 글자 그대로 ‘그리드’를 그렸다. 그들은 왜 이처럼 그리드에 집착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모더니즘의 자기 지시적 성격, 즉 자기 반성적 성격 때문일 것이다. 전통예술이 ‘자연이 무엇인가’를 물었다면 현대예술은 그전에 ‘회화란 무엇인가’부터 묻는다. 회화의 본질에 대한 이 철학적 반성을 통해 모더니스트들은 회화의 극한, 즉 그 너머에서 더이상 회화일 수 없는 경계에 도달했다. 거기서 그들이 발견한 것이 그리드였다.
그리드의 포스트모더니즘
공교롭게도 이는 플라톤이 철학에서 했던 작업과 비슷하다. 당시의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플라톤 역시 ‘자연이란 무엇인가’를 물었다. 자연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반성을 통해 그도 자연의 극한, 즉 그 너머에서 더이상 자연일 수 없는 경계에 도달했다. 거기서 그가 발견한 것이 바로 코라였다. 코라, 그 너머에 더이상 자연은 없다. 그 너머는 이데아의 세계다. 모더니즘의 예술가들은 회화라는 수단으로 플라톤이 철학에서 했던 것과 똑같은 작업을 했는지도 모른다.
1960년대 이후에 추상의 시대는 끝나고 ‘포스트모던’의 이름으로 회화 속으로 구상이 복귀한다. 이 시기에도 화가들은 여전히 그리드를 사용하나, 방향은 정반대로 뒤집힌다. 가령 포토 리얼리스트들은 사진을 전사(轉寫)하기 위해 그리드를 사용했다. 말하자면 사진과 캔버스 위에 그리드를 친 뒤, 사진 위 그리드의 격자들을 하나씩 일일이 캔버스 위의 그리드로 옮긴 것이다. 포토리얼리즘이 사진을 방불케 하는 놀라운 사실성을 자랑하는 것은 그리드를 통한 이 전사의 마술 덕분이다.
모더니즘 예술에서 그리드는 이미지의 도달점이었다. 하지만 포스트모던의 미술에서 그리드는 이미지의 출발점이다. 이 차이 속에는 당연히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들어 있다. 가령 모더니스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의 재현을 포기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화하려 했다. 한마디로 현상계를 부정하고 예지계를 지향했던 셈이다. 반면, 포스트모던의 미술은 예지계를 부정하고 현상계를 긍정한다. 그것도 복제로 이루어진 가상계, 즉 시뮬라크르의 세계를 긍정한다.
모더니즘 예술이 그리드를 통해 ‘회화의 조건’을 드러낸 것처럼 데리다와 아이젠만은 그들의 기획을 통해 ‘건축의 조건’을 드러냈어야 했다. 구체적인 건축물이 아니라, 모든 건축적 구조, 모든 건축적 구축의 바탕이 되는 조건은 과연 무엇인가? 건축에도 회화의 ‘그리드’에 해당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이것이 그들의 고민이 되었어야 했다. 하지만 데리다와 아이젠만은 다소 썰렁한 아이디어를 주고받는 가운데 지향성을 잃어버린 느낌을 준다.
사실을 말하면, 건축의 그리드 역시 이미 오래전에 나타난 바 있다. 가령 러시아 구성주의를 생각해보라. 따라서 데리다와 아이젠만이 설사 방향을 잃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의 기획에서 특별히 생산적 결과가 나왔을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