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새론이는 머리가 풍성해야 예쁜데 머리를 왜 저렇게 꽁꽁 묶어놨대?” MBC 주말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의 ‘작은 미숙이’ 김새론은 잠자는 장면 빼곤 늘 잔머리 없이 핀을 꽂고 두 갈래로 묶어놓은 헤어스타일로 등장한다. 처음에는 안 예쁘다고 투덜거리다 문득 무릎을 쳤네. 저거, 어릴 때 엄마가 빗겨주던 머리구나! 빚쟁이에게 쫓겨다니느라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아홉살인데도 아직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는 청각장애인 엄마와 단둘이 산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온전히 다 해주지는 못하지만 엄마는 아마도, 매일 아침 아이의 머리에 물을 묻혀 정성스럽게 빗기고 삐져나온 머리칼 없이 꽁꽁 묶어주었을 거다. 우리 어릴 때도 그랬다. 양 눈꼬리가 째질 정도로 단단하게 묶은 머리에 알록달록한 고무줄이며 머리핀들을 찌르고 다니는 아이들은 엄마 손이 야무지다는 소리를 대신 듣고 다녔다. 드라마 속 작은 미숙이의 머리는 방치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연출의 목소리가 아닐까. 드라마를 연출한 김상호 PD는 캐릭터 디테일을 잡는 세트나 소품 의상까지 무척 꼼꼼하게 챙기는 스타일이다. <환상의 커플>에서는 나상실의 매니큐어까지 미리 발라보고 색을 체크할 정도였으며, 아이들의 방 벽지에는 ‘진짜 애들’의 낙서가 필요한 것을 아는 연출가다.
TV드라마에서 소시민이나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방에 가난을 상징하는 몰취향의 물건들을 대충 배치하고, 벽면에는 생활감을 주겠다며 급조한 검댕을 발라놓는 것을 보면 어쩐지 모욕당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우선은 미술팀 소관이나 드라마의 차이는 이런 것을 용인하는 연출가가 만들어낸다. 반면 캐릭터가 오래 곁에 두고 버리지 못하는 물건들, 하나둘 사모은 살림이나 소품들을 알아볼 줄 아는 연출이 개입한 방은 대사 외의 경로로 인물에 접근하게 한다. 극중 작은 미숙이는 한글을 거꾸로 외울 줄 안다고 자랑한다. 별게 다 자랑이다 싶다가 모녀의 방을 보고야 의문이 풀렸다. 모녀가 세들어 살던 곳은 영규(정보석)네가 창고로 쓰던 허름한 방인데 몇컷 나오지도 않던 그 방엔 한글 벽걸개그림이 붙어 있었다. 엄마가 딸의 머리를 곱게 빗겨주고 일을 나가면 아이는 가나다라를 다 외우고도 할 일이 없어 거꾸로 외우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작은 소품 하나가 극에 드러나지 않던 아이의 시간들을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내 마음이 들리니?>의 거의 모든 인물들은 15년 전의 한 사건에 매여서 타인을 위해 산다. 그리고 혼자 몰래 울기도 많이 운다. 이렇게 말하면 착한 사람들이 슬퍼하는 우중충한 신파극인데 연출은 여기서 우중충함을 걷어내고, 에피소드별 디테일과 캐릭터의 사연이 탄탄한 작가 문희정은 신파의 속살을 들여다본다. 사람이 하루 24시간 슬퍼하면서 살 수만은 없으며 헤실헤실 웃는다고 그 속도 그렇지는 않은 것처럼 이 드라마는 밝은 곳이 어둠을 진하게 하고, 어두운 시간이 사람들과 부대끼고 살아야 할 낮을 밀어올린다.
드라마는 작가와 궁합이 맞는 연출이 있다. 소외된 사람들의 애환을 그리겠다는데, 현란한 카메라 앵글과 감정이 고일 새도 없는 편집이 만나 스타일리시한 괴작이 탄생하기도 하고, 너무 많은 의미와 말들을 쏟아내는 극본과 우직한 연출이 만나면 촌스러운 평작이 되기도 하더라. <내 마음이 들리니?>는 상성이 꽤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