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28일 공개된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씨민과 나데르, 별거'는 별거에 돌입한 중산층 부부가 겪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이란 사회의 현주소를 묘파한 수작이다.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작치고는 다소 무거운 감이 있지만, 켜켜이 쌓이는 이야기의 밀도감, 배우들의 물샐틈없는 연기,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사건들을 통해 개인의 순도 높은 감정과 사회의 모순을 조목조목 드러낸다는 점에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이 영화가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고 작품상인 황금곰상을 탔는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법하다. 여운까지 진하게 남는 이 영화는 영화 팬이라면 단언컨대 올해 영화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이다.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씨민은 딸 테르메를 위해 이민을 떠나려 하지만 남편 나데르의 반대에 부딪힌다.
이혼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집을 나간 씨민.
나데르는 우여곡절 끝에 아버지를 돌볼 간호인 라지에를 고용한다.
어느 날 낮에 딸과 함께 집에 온 나데르는 아버지가 침대 밑에 쓰러져 있는 장면을 목격하고 자리를 비운 라지에를 추궁한다.
승강이를 벌이던 중 라지에는 계단에서 넘어져 유산된다. 감정이 격해진 라지에의 남편은 나데르를 살인죄로 고소하고, 나데르도 라지에를 폭력 등의 혐의로 맞고소하면서 사건은 일파만파로 번진다.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오듯, 꼬리를 문 사건이 쉴 새 없이 스크린을 점령한다. 각 사건이 유기적으로 맞물리면서 인물들의 감정들도 촘촘히 쌓인다.
영화의 두 줄기는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그리고 나데르와 라지에의 고소전이다. 영화는 두 사건을 통해 인물들의 내밀한 생각과 심리변화를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아울러 70대 노인이라도 허락을 받고서 씻겨야 하는 이란 사회의 보수성, 지극히 단순명료해서 개인사를 구체적으로 살피지 못하는 현대 법체계의 문제점을 비롯해 거짓말의 윤리적 문제, 종교적 신념, 선과 계급의 문제 등을 폭넓게 다룬다.
눈에 들어오는 장면이 여럿있다. 원칙주의자인 나데르가 딸에게 원칙의 중요성을 누누이 가르치면서도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이 나올까봐 딸이 '알아서' 거짓말하도록 내버려두는 장면은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뛰어난 장면이다.
막판, 별거를 막으려는 씨민과 나데르의 딸의 소리없는 울음은 앞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아놓은 감정 덕택에 마음에 큼지막한 파도를 일으킬만하다.
법정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씨민과 나데르가 법정에서 판결을 기다리며 끝을 맺는다. 인물들은 치열하게 갑론을박을 벌이지만 영화에 그 어떤 악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저마다 양심에 따라 행동하지만, 이들의 삶은 점점 힘들어지기만 한다.
'어바웃 엘리'로 2009년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을 수상했던 아스가르 파르허디 감독의 5번째 장편영화다. 영화는 올 여름께 개봉될 예정이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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