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잡지중독자다. 가만 생각해보니 <씨네21> 입사원서에도 ‘잡지가 좋아서’라는 말을 ‘영화가 좋아서’라는 말 뒤에 다소곳하게 써붙였던 것 같다. 단순히 영화가 좋았다면 평론가가 됐거나 시나리오작가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아, 그럴 능력은 없었던 걸까. 어쨌든 나는 잡지가 좋다. 보는 것도 좋고 만드는 것도 좋다. 잡지를 배송받아 뜯는 순간의 희열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매주 잡지 한권을 만들면서 매달 수십권의 잡지를 사모은 것도 어언 7년째다. 매달 나오는 교양, 패션 잡지, 디자인 관련 잡지, 인테리어 잡지는 물론, 동서양 잡지도 끊임없이 사모은다. 언젠가는 매달 잡지 구입에 쓰는 비용이 얼마인지를 머릿속으로 계산해본 적이 있다. 적어도 10여만원, 많게는 20여만원. 그걸 월급으로 나누면 몇 퍼센트가 되는지 계산해보았더니….
하루는 큰 방 가득 쓰러질 듯 쌓여 있는 잡지를 보면서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단행본보다 많은 잡지들이 방 안의 습기를 빨아들이며 서로의 무게에 허덕이고 있는 꼴을 보고 있으려니 이게 무슨 짓인가 싶었다. 버려야 했다. 오래된 잡지들을 방 안 가득 펼쳐놓고 버릴 것과 남길 것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키노> 몇권을 버리려 마음먹었다. 버릴 수가 없었다. 중년의 거구가 되기 전 열혈영화소년 주성철 기자가 쓴 기사를 한동안 진지하게 읽어내리다가 생각했다. 이건 정말로 버릴 수가 없군. 트윗에 발췌해서 싣겠다 협박한 뒤 평양냉면을 얻어먹어야겠어.
그러다보니 버릴 게 하나도 없었다. 오래된 <씨네21>은 박광수 감독의 반나체 표지 때문에 버릴 수 없었고, 오래된 <에스콰이어>는 지금이라면 ‘워스트 리스트’에 올릴 만한 옷들을 걸치고 활짝 웃는 모델들 모양새가 귀여워서 버릴 수 없었고, 오래된 음악 잡지 <Sub>는 추억 때문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럼으로써 나는 세상의 모든 잡지쟁이와 잡지 수집광들이 그토록 오랫동안 고민해온 고민에 도달하고야 말았다. 이 모든 잡지들을 모두 스캔해서 파일로 만들어 간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태블릿PC가 등장했다.
잡지의 위기, 혹은 변화의 바람
아니다. 태블릿PC의 등장을 잡지쟁이들의 구원자라고 말하려는 건 아니다. 솔직히 스티브 잡스가 검은 터틀넥에 청바지를 입고 아이패드를 들고 나와 떠들던 순간에도 나는 그것이 잡지의 또 다른 방향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기술치였다. 또 한번 솔직히 말하자면, 내 주변의 사람들도 다를 바 없었다. 그들은 말했다. 누가 태블릿PC 따위를 사? 나라면 그 돈으로 랩톱을 하나 더 사겠어. 태블릿PC로 잡지를 본다고? 잡지라는 건 종이를 한장한장 넘겨가며 보는 맛이지. 그런데 이런 말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전자책이 처음 등장했을 때를 한번 되돌아보자. 책은 종이로 읽어야 진정한 맛이 난다고들 했다. 문고판만한 전자책에 책을 다운로드해 본다는 개념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고백하자면 나도 그중 한명이었다.
세상은 우리의 저항정신보다 더 빨리 바뀌었다. 359달러라는 비싼 가격에 판매를 시작한 아마존닷컴의 전자책 킨들(Kindle)은 판매 개시 5시간30분 만에 매진됐고, 여전히 잘 팔린다. 국내 대형서점들도 국내 회사들이 발매한 전자책과 연계해서 다양한 서적들을 쏟아냈다. 한번은 비행기에서 킨들로 책을 읽고 있는 외국인을 보며 부러움에 떨었다. 슈트 케이스의 무게 때문에 호텔방에 버릴 수밖에 없었던 테드 창의 단편집이 떠올랐다. 만약 그걸 전자책으로 읽었더라면 파리의 호텔방에 쓸쓸하게 버리는 짓 따위 하지 않았을 것이다(죄송합니다, 테드 창 선생. 당신을 존경하지만 책은 너무 무거웠습니다).
전자책이 출판시장을 뒤흔들었다면, 태블릿PC는 잡지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2010년 6월 미국의 정보기술 관련 월간 잡지 <와이어드>(Wired)가 내놓은 디지털 잡지는 그야말로 혁명이었다. 첫달에만 10만부가 다운로드됐다. <토이 스토리3>를 표지로 내세운 <와이어드>의 디지털 창간호는 종이 잡지 가격과 다르지 않은 4.99달러에 서비스됐고, 아마도 <와이어드> 기자들은 보너스를 끝내주게 받아챙겼을 것이다. 부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물론 의심은 어디에나 있었다(나도 그중 하나였다고 고백한다). 모든 잡지가 뛰어들 시장은 아니라고들 했다. <와이어드> 디지털 매거진의 성공은 기술적인 혁신을 다루는 잡지의 성격 덕분에 가능했다고들 했다.
2010년 9월. 전통적인 잡지 중독자들이 마지막 종이 잡지의 보루라고 생각했을 <뉴요커>(The New Yorker)가 디지털 매거진을 선보이자 믿음은 무너져내렸다. <뉴요커>는 첨단을 다루는 잡지도 아니고 비주얼로 승부를 보는 잡지도 아니다. 문화와 정치와 경제와 세상의 모든 것을 지성적인 뉴요커의 시선으로 다루는 진지한 잡지다. 심지어 1920년대 첫 출간 당시의 레이아웃도 거의 바뀌지 않았다. 그런 ‘형식적인 보수주의자’들의 잡지가 디지털 매거진을 내놓은 것이다. 소극적인 출발도 아니었다. 그들은 프랜시스 코폴라의 아들인 감독 로만 코폴라에게 제이슨 슈워츠먼이 등장하는 바이럴 필름을 제작해서 인터넷에 홍보용으로 뿌렸다. 본격적으로 한번 해보자는 승부수다.
디지털 잡지 시대가 바다 건너에서 개막하던 즈음, <씨네21> 역시 디지털 잡지를 준비하며 몇몇 기자에게 아이패드를 무료로 증정했다. 참, 이런 건 ‘증정’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지. ‘비싼 최신 디지털 기기를 줬으니 열심히 연구하고 궁리해서 박봉 값을 어디 한번 해보시라’는 의미였으니까. 아이패드를 받자마자 처음으로 했던 일은 인기 게임 <스머프 빌리지>를 다운로드… 가 아니고, 시중에 나와 있는 디지털 잡지를 구매하는 것이었다. <와이어드>를 다운받는 순간 이거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품의 광고는 살아 움직였다. 레이아웃은 2차원이 아니라 3차원이었다. 손가락으로 밀고 당기고 돌리자 텍스트와 이미지가 눈앞에서 생명을 얻었다. 패션 잡지를 다운받았다. 런웨이의 모델이 걸어왔다. 손가락으로 모델의 옷을 지그시 누르자 그제야 가격과 브랜드 이름이 떠올랐다. 지금 우리는 잡지의 진화를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잡지의 마지막 희망?
아이패드를 만지작거리다 보니 잡지쟁이들이 지난 몇년간 겪었던 공포가 떠올랐다. 다들 침착한 척 연기를 했지만 그건 진짜 공포였다. 한국의 잡지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할 땐 워낙 잡지시장이 협소한 한국 탓이려니 했다. 어느 날 일본의 <에스콰이어>가 사라졌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달에 딱 하나의 주제를 깊이있게 파고드는 일본판 <에스콰이어>는 이 세계의 마지막인 진정한 교양잡지 중 하나였다. 그런 잡지가 사라졌다. 영국의 <아레나>와 미국의 <I.D.> 역시 차례차례 서점(그러니까, 한국의 수입 잡지 쇼핑몰들)에서 없어졌다. 잡지의 위기는 한국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 모든 대륙에서 잡지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었다.
단점도 장점도 미지수인 세계에서
얼리어답터를 지향하는 아날로그의 삶을 사는 나는 일단 디지털 잡지의 탄생에 환호했다. 사람들은 종이 잡지를 더이상 예전처럼 사지 않는다. 그러나 디지털 잡지라면 다를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기존의 종이 잡지에 멀티미디어 기능을 잔뜩 끼얹은 디지털 잡지는 손쉽게 어디서든 다운로드가 용이하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하다. 태평양 건너의 리서치 회사에 따르면 디지털 잡지가 사람들이 잡지 읽는 시간 자체를 늘려놓았다고도 했다. 그들에 따르면, 태블릿PC 소유자들은 이전보다 50% 정도 시간을 더 할애해서 잡지를 읽는단다. “우리는 이걸 독서 혁명이라고 부른다.” 리서치 회사 대표의 말이다.
잡지쟁이로서가 아니라 잡지 수집광으로서, 역시 나는 쾌지나를 칭칭쳤다. 매달 나는 4.99달러짜리 해외 잡지를 3만원 가까운 가격에 구입한다. 관세와 국내외 배송비 등등이 걷어차도 떨어져나가지 않는 애인처럼 들러붙었다. 하지만 태블릿PC로는 미국과 똑같은 4.99달러에, 배송을 기다릴 필요도 없이 곧바로 잡지를 구입할 수 있었다. <와이어드>가 성공을 거두자 해외의 모든 잡지사들이 디지털 잡지를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맙소사, 이건 신세계야. 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미국과 똑같은 가격에 다운로드해 종이 잡지는 제공하지 않는 동영상을 플레이하며 흥얼거렸다.
자, 모든 잡지쟁이 헛똑똑이들의 숙명은 ‘의심’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태블릿PC를 손에 들고 놀면서도 새록새록 의심이 생겼다. 디지털 잡지의 모든 것이 장밋빛인가. 가만 생각해보면 역사는 오래된 기술에서 새로운 기술로 단번에 이동하지는 않는 법이다. 냅스터가 등장하자 CD는 완전히 사라졌는가? 여전히 CD는 생산되며, 당분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자 필름은 사라졌는가? 여전히 필름은 생산된다.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영화를 만든다. 소피아 코폴라는 말하지 않았던가. “저는 필름이 좋아요. 필름이 생산되는 한 계속 필름으로 찍을 겁니다. 필름에는 디지털이 보여주지 못하는 회고적인 맛이 있잖아요.” 나 역시 그러하다. 나는 디지털카메라로 일상을 기록하면서도 여전히 필름으로 사진을 찍고, 디지털 음원을 다운로드하면서도 여전히 CD로 음악을 듣는다. 사람은 기술을 금세 변화시키지만, 기술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는 시간이 더 걸린다. 왜냐하면 우린 오래된 것을 금세 내쳐버리지 못하는, 마음 약한 ‘인간’이니까.
게다가 디지털 잡지가 등장하자마자 비관론이 고개를 쳐들었다. 기념비적인 성공과 함께 막을 올린 <와이어드> 디지털 버전의 판매가 점점 떨어진다는 기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왔다. 디지털 잡지를 런칭하는 주제에 왜 비관적인 이야기까지 지껄이냐고? 글쎄다. 거짓말은 잘 못하는 잡지쟁이의 취향이라고 해두자. 여하튼, 공개 6개월 만에 <와이어드> 디지털 버전의 판매는 1/5 가까이 추락했다. 다른 잡지들도 마찬가지다. 대체 무엇 때문에?
디지털과 출판 전문가들이 꼽는 가장 큰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느리다. 와이파이와 3G망을 통해 잡지 한권을 다운로드하는 데는 여전히 수분에서 수십분이 걸린다.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는 잡지 용량 역시 줄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디지털 매거진의 목표는 다양한 멀티미디어 기능을 통한 종이 잡지와의 차별성이다. 용량을 줄이기 위해 멀티미디어 기능을 축소한다면 디지털 매거진의 의미는 있는가?(나의 질문: 여전히 많은 디지털 잡지가 종이 잡지의 PDF 파일을 그대로 디지털로 옮겨놓은 형식이다. 용량과 기술적인 문제 때문이다. 하지만 종이로만 보던 잡지를 태블릿PC에서 본다는 경험 자체가 이미 일종의 디지털 혁명 아닌가?). 둘째, 비싸다. 미국과 한국 디지털 잡지들의 가격은 대부분 종이 잡지와 별 차이가 없다. 가격을 줄이기 위해서는 정기구독을 통한 할인이 가능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디지털 잡지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애플의 앱스토어는 정기구독이 불가능하다(나의 질문: 물론 디지털 잡지 정기구독이 조만간 가능해질 거라는 예상이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미국 잡지계의 예상처럼, 바로 그 순간이 디지털 잡지의 새로운 도약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셋째,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종이 잡지의 매력을 손에서 놓지 못한다(나의 의견: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디지털 잡지는 종이 잡지의 대체물이 아니라 또 하나의 구독 창구 아니던가?)
물론 낙관론도 비관론도 아직은 이르다. 야심적으로 디지털 잡지를 발간한 <베니티 페어> 관계자는 말한다. “2015년 정도가 되면 확답을 드릴 수 있겠군요. 시간이 더 걸릴 거예요. 발행자와 독자들의 생각 자체를 혁신시킬 시간이 아직은 필요하거든요.” 흠, 위대한 예언가 롤랜드 에머리히의 예언이 틀렸다면 결국 2015년은 오고야 말 것이고, 그때 나는 다시 디지털 잡지에 대한 기사를 쓰겠다(고 독자들에게 약속한다).
서투르지만, 한 발짝씩
사실 나는 이 기사를 아이패드로 써보겠다고 다짐했었다. 아이패드에 연결되는 키보드를 사놓고도 서랍장에 처박아둔 채 잊어버린 마음의 중죄를 조금이라도 씻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몸은 마음을 따라가지 못하는 법이고, 이 기사는 나의 낡은 두뇌, 혹은 일본의 낡은 원전처럼 종종 다운되고야 마는 노트북으로 작성 중이다. 그러는 동안 아이패드는 무슨 일을 했느냐. 이 멀끔한 기계는 오늘 하루만 나를 대여섯번 푸시했다(푸시 기능은 아이패드가 자동으로 인터넷에 접속해 새로운 업데이트 정보를 알려주는 기능이다. 이 기계는 나보다 똑똑하다!). 그중 두번은 종종 구입하는 디지털 잡지의 최신판이 나왔다는 소리였다. 나는 무료로 서비스되는 한국 인테리어 잡지 한권과 2.99달러짜리 미국 패션 잡지 한권을 구매했고, 두 잡지를 다운로드하는 데는 모두 5분여가 소요됐으며, 화보 대여섯장을 캡처로 저장했다. 갑자기 나는 해리 포터가 된 기분이 들었다. 아즈카반의 죄수 사진이 살아서 움직이는 <호그와트 신문>을 처음으로 펼쳐본 애송이 해리 포터 말이다. 아서 클라크가 말했던가. “충분히 발전한 기술은 마법과 구분할 수 없다”고. 나 역시, 동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