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다”. (…) 빌라도가 가로되 “진리가 무엇이냐?”(요한복음 18:33-38)
신약성서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빌라도가 예수와 대면하는 장면이리라. 심문의 마지막에 빌라도가 던진 질문은 사뭇 냉소적이다. “진리가 무엇이냐?” (Quid est veritas?) 예수는 이 물음에 답하지 않았지만, 어느 호사가가 철자의 순서를 바꾸는 파자(anagram)를 이용해 물음 속에서 답변을 끌어냈다. “앞에 서 있는 바로 그 사람이다.”(Est vir qui adest). 예수, 그 사람이 바로 진리다.
‘진리’에 대한 두 관념의 충돌
예수와 빌라도의 만남에서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의 충돌을 볼 수 있다. 가령 빌라도는 로마법의 절차에 따라 먼저 피고의 혐의를 나열한 뒤 예수의 변론을 기다린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예수가 로마인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조목조목 따져가며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는 빌라도의 게임에 들어가지 않는다.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 하시는지라.” 예수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고, 그 모든 것을 신이 정하신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이에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빌라도는 적당히 매질이나 해서 풀어주려 한 모양이다. 예수를 채찍질한 뒤 그를 대중 앞으로 이끌어 매질로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몸을 보여주며 외친다. “보라, 이 사람이로다.”(Ecce homo) 하지만 성난 군중은 매질로 만족할 수 없었다.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라고 외치며 심지어 빌라도를 협박하기까지 한다.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두려움을 느낀 빌라도는 예수의 운명을 대중의 뜻에 맡기며 자신은 대야의 물에 손을 씻는다.
여기에서 보는 것은 ‘진리’에 관한 상이한 두 관념의 충돌이다. 헬레니즘의 진리와 헤브라이즘의 진리. 흔히 ‘진리’라고 하면, 우리는 명제 혹은 진술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빌라도가 자신의 법정에서 밝히려 했던 것도 그런 종류의 진리였으리라. ‘유대인들이 예수에게 내건 혐의들이 과연 사태에 부합하는가?’ 하지만 예수 앞에서 빌라도가 구하는 진리는 사소한 것이었다. 예수의 진리는 오늘날 전세계에 퍼져 있는 기독교회의 존재를 통해서 입증된다. 수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전해 내려오는 새로운 삶의 원리. 그것이 빌라도의 것을 압도한 예수의 진리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진리는 ‘명제진리’와 ‘사태진리’로 구별된다. ‘명제진리’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인식론적 진리, 즉 참인 명제가 갖는 속성으로서 진리다. ‘사태진리’는 그와는 차원이 달라서 가령 예수의 진리처럼 논증이나 증명 없이 선포된다. 선포(kerigma)로서 진리는 존재론적 진리다. 근원적인 것은 이 사태진리이고, 명제진리는 거기에서 파생된 것에 불과하다. 수학을 예로 들어보자. 어떤 수학적 명제의 올바름은 정리를 이용해 증명된다. 정리의 올바름은 공리를 이용해 증명된다. 그렇다면 공리의 올바름은 어떤가? 그것은 증명없이 옳은 것으로 선포되지 않는가.
사태로서 진리가 일어나는 데에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예술, 사유, 그리고 국가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 세 가지가 과학에서 말하는 진리보다 근원적인 것이다. 시인과 철학자가 세계를 열어서 보여주면, 과학자들은 그렇게 열린 세계 속으로 들어와 개념적 정리를 할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국가를 세우는 것이 곧 진리라는 생각이다. 하이데거가 강의실에서 이런 얘기를 하던 30년대 초반, 강의실 밖에서는 나치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하이데거는 한때 나치운동이 바로 그런 진리를, 새로운 민족적 삶의 세계를 세우는 일이라 믿었다.
급진주의자라면 국가 대신에 혁명을 들 것이다. 조례의 올바름은 법률로 판단하고, 법률의 올바름은 헌법으로 판단한다. 그럼 헌법의 올바름은 무엇으로 판단하는가? 기존 헌법의 올바름을 판단하는 것은 법률적 과제가 아니다.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혁명’이다. 혁명으로 새 세상이 열리면, 사후에 법률가들이 들어와 새 헌법의 정신에 맞추어 법률과 조례를 만들 것이다. 진리론의 좌익적 버전에서는 혁명의 전위(‘당’)가 곧 진리가 된다. ‘당의 무오류’라는 스탈린주의 원칙은 어떤 면에서는 필연적인 것이다. 공리를 향해서 자신의 올바름을 증명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잖은가.
견자(見者)의 편지
사건으로서 진리는 ‘종교’나 ‘정치’만이 아니라 예술에도 존재한다. 랭보는 견자(‘voyant’)에 관해 이야기한다. “내가 말하노니, (…) 시인은 모든 감각의 기나긴 거대한 이성적 일탈을 통해 자신을 견자(見者)로 만들어야 한다. 모든 형태의 사랑, 고통, 광기. 그는 자신을 탐색한다. 그는 자기 안의 모든 독약을 소진하여 그 속에서 오직 핵심만을 건져낸다. 모든 신념과 모든 초인적 힘을 요하는 말할 수 없는 고문. 그것을 통해 그는 인간들 중에 인내심이 있는 자, 위대한 범죄자, 저주받은 자-그리고 위대한 학자가 된다. 그는 미지의 세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랭보의 ‘견자’는 유대인들이 ‘선지자’라 부른 것의 예술적 버전이라 할 수 있다. 견자, 즉 보는 자는 아무도 보지 못하는 미래를 보며, 나아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그 미래를 비로소 존재하게 만든다. 시인은 “진보의 배가자”로서,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용감하게 몸을 던진다. 당연히 거기에는 커다란 위험이 따른다. “그가 방황하다가 결국 제 비전의 지성을 잃고 말지라도, 그는 이미 그 비전들을 보았다. 그로 하여금 들어보지도 이름할 수도 없는 것들 속으로 뛰어들다가 죽게 놔두라. 다른 무서운 일꾼들이 나타나, 다른 이가 쓰러진 그 지평에서 다시 시작할 것이다.”
랭보의 ‘견자의 편지’(1871)는 훗날 ‘아방가르드’라 불릴 운동의 전주곡이 된다. “새로운 세대는 제 조상을 저주할 자유가 있다.” 여기에서 숨막힐 듯이 답답한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며 강림할 새로운 예술, 새로운 사회에 대한 기대를 읽을 수 있다. “시는 더이상 행동에 리듬을 맞추지 않을 것이다. 시는 앞서 나갈 것이다.” 이 말은 시야말로 그 어떤 행동에도 앞서 세계를 열어주는 진리라는 시인의 자의식을 보여준다. 20세기의 아방가르드 예술을 추동한 것은 바로 이 자의식이었다. 그것은 죽어가는 사회 속에 새로운 진리를 일으키려는 운동이었다.
아방가르드는 제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와 손을 잡았으나, 결과는 치명적이었다. 진리의 원천이 둘일 수는 없지 않은가. 결국 아방가르드 운동은 앞서 나가지 못하고, (나치당이나 전위당의) 행동에 리듬을 맞춰주는 신세로 전락한다. 역사적 아방가르드는 정치적으로 실패했다. 하지만 미학적으로는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20세기 초에 그들이 가졌던 예술적 비전은 오늘날 생활세계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해주고, 없었던 것을 있게 해주는 개시(開示)로서의 진리는 여전히 필요하다. ‘견자의 편지’는 아직도 수신자를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