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예전에는 한껏 움츠러들었어요. 지금은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는 게 즐거워요. 마흔에 가까운 지금, 오히려 용기가 더 생겨요. 인생 거꾸로 가는 것 같습니다. 이제 연기 시작이죠."
배우 전미선(39)은 최근 서울 명동에서 영화 '수상한 이웃들'의 개봉을 앞두고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미선은 '수상한 이웃들'에서 주부이자 초등학교 교사인 미라 역을 맡았다. 남편을 구박하는 목소리 큰 여성이지만 나름 상처도 잘 받는 복잡한 속내의 인물이다.
"제가 그동안 여린 역을 좀 했어요. 이번에는 기존에 해왔던 역할이랑 조금 달라요. 우리나라 여성들은 표현을 잘 안 하잖아요. 그런 분들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도록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리도 지르고요. 저 집에서도 신랑에게 잔소리하거든요."(웃음)
영화는 5개의 장으로 이뤄져 있다. 지방지 '봉계신문'을 주축으로, 신문기자들과 이웃들 간에 벌어지는 '이상한' 이야기가 얼개다. 전미선이 출연한 장은 영화 도입부에 해당하는 '해피 버스데이'. 생일날에 벌어지는 모순된 이야기를 담았다.
전미선은 "시나리오가 재밌고, 캐릭터들의 조화가 잘 돼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캐릭터가 살아있어서 좋았다"며 출연 동기를 밝혔다.
영화에는 주요인물로 8명이 등장한다. 부부로 출연하는 박원상과 전미선이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지만, 나머지 캐릭터들도 영화의 한 축을 담당한다.
"보통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과장하기 일쑤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연습한 그대로 나왔어요. 그래서 영화가 편안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등장인물 가운데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배우인데 욕심은 없었을까.
"단역이든 주인공이든 배우가 캐릭터에서 어떤 매력을 발견한다는 게 중요해요. 꼭 주인공을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연기의 맛을 살릴 수 있는 역할이 오히려 주인공보다 나을 수 있어요. '단역이야, 조연이야' 이런 마음과 자세를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연기파 주.조연으로서 이름값을 하고 있지만, 전미선에게도 남모를 시련이 있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각종 특집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연예계 일은 도무지 그의 적성에 맞지 않았다.
"고3 때 '토지'(1989)로 데뷔했어요. 연예계 일이 알려진 대로 워낙 고되잖아요.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소문도 빠르고…, 어린 나이에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게됐어요. 물론 연기적인 측면에서도 아무리 연기를 해도 재미가 없고, 연기에 한계도 많이 느꼈습니다."
무언가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는 1990년대 후반부터 패션디자인, 미술 등 외도를 시도하면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 했다. 그러나 성과가 좋지 않았다고 한다. 슬럼프에 빠졌던 그때, 연기를 아예 그만둘까 생각했지만, 다시 한번 도전키로 했고 때마침 김대승 감독의 '번지 점프를 하다'(2000)로 복귀하면서 연기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전에는 연기가 꿈이 아니었어요. 아니, 연기가 내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어요. '번지 점프를 하다'부터 연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살인의 추억' '왕건' '인어아가씨'를 거치면서 '나는 연기를 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구나'라고 느꼈죠."
그는 현재 드라마 '로열패밀리'에서 악역 임윤서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재벌가 출신의 며느리로 주인공 김인숙(염정아)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연기에서 재미를 느끼고, 연기에 대한 욕심이 생겼어요. 앞으로는 해보지 않은 무수리 연기나 액션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네요."
◇ 수상한 이웃들 = 사법고시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지방지 취재기자 박종호(박원상). 사표를 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지만 편집장과 아내 미라(전미선)가 절친한 친구사이라는 이유로 회사를 떠나지 못한다. 한사코 사표를 만류하는 아내 미라 때문.
어느 날 박종호는 특종으로 지방지 면톱을 장식하지만, 그로 인해 경찰에 적발된 개장수로부터 끊질긴 협박을 당하기 시작하면서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다.
'수상한 이웃들'은 지방지 '봉계신문'을 배경으로, 기자와 편집장, 이웃들간의 이상한 관계들을 묘사한 코미디 영화다.
개장수의 복수행각이 큰 웃음을 준다. 어느 한 명이 주인공이라기보다는 여러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의 오늘' 부문에 초청됐다. '박대박'의 양영철 감독이 14년만에 내놓은 작품이다.
4월1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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