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진정한 꿈이 생기면 그 꿈을 향해서 저절로 가는 것 같아요. 영화 만들기는 오래되고 낡은 꿈이에요."
최근 신촌의 한 카페에서 만난 추상미는 밝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저 배우 무얼할까'라는 궁금증이 쌓일 무렵, 추상미는 소리 소문 없이 '분장실'이라는 단편을 들고 돌아왔다. 첫 공연을 앞두고 공황상태에 빠진 여주인공의 복잡한 심리를 다룬 25분짜리 영화다.
작년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에 들어가 시작한 공부의 첫 결과물이기도 하다. 영화는 제1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와 제12회 전주국제영화제의 단편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수백 편의 작품들과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무대이기에 첫 작품치고는 이례적인 성과다. 여배우 출신으로 국제영화제의 단편 경쟁부문에 진출한 이는 '날강도'로 작년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경쟁부문에 올랐던 류현경 정도뿐이다.
2009-2010년 배우 손숙과 호흡을 맞춘 연극 '가을 소나타'를 모티브로 했다. 모녀의 갈등을 소재로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파헤쳤던 잉마르 베리만의 동명 영화를 원작으로 한 연극이다.
모든 진실한 작품이 그러하듯, '분장실'의 미덕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는 데 있다. 친숙한 인물과 장소를 선택했기에 심리변화는 섬세하고, 서사는 힘이 넘친다.
"저도 신인시절에 강박증이 컸어요. 아버지가 너무나 잘 알려진 배우이다 보니 제 연기를 보지 않고서도 저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던 것 같아요. 그런 경험들도 담겨 있습니다."
'가을소나타'의 주인공 에바 역을 맡은 광덕의 내면은 흔들린다. 공연을 앞두고 있다는 긴장감은 평소 왕래가 없던 어머니의 전화 때문에 더욱 높아진다. 결국, 구토까지 하고야 만다.
"무대에 나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영화의 플롯을 따라가는 영화죠. 몸은 컸지만, 내면의 어린 아이를 가진 사람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캐릭터를 구축할 때도, 실제로 연극을 할 때도 그 부분을 가장 많이 생각했어요."
추상미는 '가을소나타'의 에바와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에바의 어머니가 뛰어난 피아니스트인 것처럼 그의 아버지 추송웅 씨는 뛰어난 연기자였기 때문.
그래서 '가을소나타'의 에바 역을 할 때도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서 어떤 역할보다도 밀착감을 가지고 연기했다"고 한다. 그의 말에는 아버지에 대한 존경이 묻어나 있었지만, 아버지와 비교되는 것에 대한 거북함도 다소 있는 듯했다.
"아버지는 배우일 뿐 아니라 연극 각색에서 연출까지 다양한 역을 했어요. 사람들은 아버지를 배우로 기억하지만 제가 봤을 때는 창작자예요. 배우나 감독의 꿈을 키운 건 아버지의 영향이 커요. 하지만, 아버지 때문에 이 길로 접어든 건 아닌 것 같아요."
연출은 오랜 꿈이라고 말했지만, 배우가 싫증 나서 연출에 도전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는 "배우만큼 위대한 직업이 없다" "깊이 들어가면 연출과 연기의 본질은 같다"고 했다. 공부하는 동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다시 "무대에 서고 싶다"고도 했다.
그가 연출로 눈을 돌린 데는 여배우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돼 있디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배우는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나야해요. 하고 싶은 역할과 작품은 분명히 있는데, 할 기회가 드물어요. 그런 부분에 대한 갈증이 있었어요. 연기를 하다 보면 세상을 보는 관점과 안목도 깊어지잖아요. 하지만, 그만큼의 기회를 주지 않죠. 욕구불만이 쌓입니다."
추상미는 이왕 공부를 시작했으니 공부가 끝날 때까지는 연기하지 않겠다고 했다.
"연출도 (꼭 맞는) 내 옷처럼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필요하죠. 연기와 연출을 병행하는 건 바보짓 같기도 하고…."
늦깎이 공부에 그는 시간가는 줄 모른다. 신문을 꼼꼼히 스크랩하고, 흘러가는 단상을 놓치지 않고자 메모를 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다. "일상의 많은 소재를 놓치고 살아가는 게 아닐까라는 안타까운 마음" 때문이란다.
그는 차기작을 "구상 중"이라고 했으며 "장편을 하면 독립 영화로 시작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제가 내고 싶은 목소리와 관객과의 접점을 찾는 게 숙제인 것 같아요. 너무 제 생각에만 갇히면 안 될 것 같고, 폭넓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겠죠. 제가 연출의 꿈을 가진 이후로 제 삶의 많은 영역이 바뀐 듯해요."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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