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힐리즘’은 ‘무’를 의미하는 라틴어 ‘니힐’(nihil)에서 온 말이라고 한다. 이 개념이 널리 알려진 것은 역시 이반 투르게네프의 소설 <아버지와 아들>을 통해서다. 거기서 니힐리스트는 “어떤 권위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아무리 주위에서 존경받는 원칙이라고 해도 그 원칙을 신앙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라 소개된다. 니힐리스트인 주인공 바자로프는 파벨 키르사노프에게 ‘가족 안에서든, 사회 안에서든 절대적 경멸을 받지 않을 만한 제도가 하나라도 있다면 니힐리스트이기를 포기하겠노라’고 말한다.
하지만 ‘니힐리즘’이라는 개념을 처음 철학에 도입한 것은 프리드리히 야코비라는 독일의 철학자였다. 우리 눈에는 다소 생뚱맞게 보이지만, 그는 이 용어를 ‘이성주의’를 비판하는 데 사용했다고 한다. 가령 칸트의 비판철학처럼 인간의 이성을 믿는 철학은 필연적으로 니힐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여기에서 벗어나려면 이성을 모종의 신앙이나 계시로 대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확한 논증은 알 수 없지만, ‘물 자체는 알 수 없다’고 한 칸트의 불가지론이 ‘인식론적’ 니힐리즘으로 보였을 법도 하다.
키에르케고르는 니힐리즘을 ‘균일화’(levelling)의 결과로 파악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할까? ‘균일화’란 사회가 한 개인의 개성을 더이상 다른 이들과 구별될 수 없을 정도로 말살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어떤 대의에 헌신할 열정을 가진 개인도 이 사회는 사정없이 균일화시켜 기어이 맥 빠진 평균으로 되돌려놓는다. 이때 저만의 가치와 의미를 확인할 수 없게 된 개인은 허무의 상태에 빠져든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니힐리즘을 극복하고 유의미한 삶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여전히 유의미한 삶이 가능하다고 보았지만, 본격적인 니힐리즘은 이 세상에 객관적이거나 절대적인 가치는 아무 데도 없다는 느낌과 더불어 시작한다. 니체가 말한 니힐리즘은 이런 것이었으리라. 그의 니힐리즘은 ‘관점주의’(perspectivism)와 관련이 있다. 원근법의 시점이 항상 ‘그 누군가’의 시점이듯이, 니체에게는 모든 주의나 주장은 언제나 ‘그 누군가’가 한 말이다. 따라서 객관적 인식이나 절대적 도덕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엔트로피의 증가로 인한 가치관의 열사(熱死)라고 할까?
음악적 니힐리즘과 미술의 니힐리즘
비슷한 현상은 다른 데서도 볼 수 있다. 음악에는 ‘황금의 5음정’이라는 게 있다. 어떤 조든 자기와 5음정 떨어진 조와 음계가 비슷하다. 가령 C장조의 음계는 F에 #만 붙이면 바로 G장조 음계가 된다. 이를 이용하면 C장조의 곡이 자연스레 G장조로 넘어갔다가 되돌아올 수가 있다. G장조는 다시 거기서 5음정 떨어진 D장조와 음계가 유사하다. C에 #만 붙이면 된다. ‘황금의 5음정’을 이용하면 C장조의 곡이 자연스레 G장조로, 거기서 D장조로 잠시 소풍을 갔다가 다시 C장조로 돌아올 수가 있다.
하지만 일탈은 일시적이기에 곡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여전히 C장조다. 고전음악에는 전체를 지배하는 조가 있다. 가령 베토벤의 5번 <운명>은 C단조, 9번 <합창>은 D단조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과정을 계속하면 어떻게 될까? 가령 한 걸음만 더 내딛어 E장조까지만 소풍을 다녀와도 결과는 혼란스러울 것이다. C→G→D→E→D→G→C. 이쯤 되면 전체를 지배하는 조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된다. 이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다 보면, 자연스레 곡 전체를 지배하는 조를 아예 없애버리자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여기서 무조음악이 탄생한다. 가령 쇤베르크의 12음 기법에서 모든 음은 전체의 지배에서 자유로워진다. 음악은 음표들의 수학적 조합에 가까워진다. 곡의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커지면서 ‘음악적 의미’라는 것도 사라져버린다. 이를 ‘음악적 니힐리즘’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전체를 지배하는 조가 사라진 음악을 듣는 청중은 지지대를 잃고 허공에서 부유하는 느낌일 것이다. 웬만한 인내 없이는 이 지루함을, 이 혼란함을 이길 수 없으리라. 진정한 니힐리스트란 이런 음악에 단련된 자를 닮지 않았을까?
미술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과거의 예술이 정서적 쾌를 주기 위해 ‘아름다움’을 추구했다면, 현대미술은 지성적 충격을 주기 위해 ‘새로움’을 추구한다. 그 결과 얻게 된 것은 짧은 시간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수많은 예술 언어들. 물론 이 언어들은 저마다 자신이 그 앞의 것들보다 낫다고 주장하나, 이렇게 짧은 시간에 예술 언어들이 쏟아지다 보면 나중엔 다 고만고만해져 어떤 것도 다른 것보다 더 진보적이라 주장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한다. 모던이 포스트모던으로 넘어가는 지점이다.
그뿐인가? 현대의 추상 예술은 그 극점에서 더이상 예술이 아닌 것으로 변모하는 경향이 있다. 가령 몬드리안, 칸딘스키, 레제의 기하학적 추상은 회화라기보다는 기술적 설계도나 청사진에 가까워진다. 초현실주의는 무의식에 떠오르는 상이나 말을 그대로 기록하는 이른바 ‘자동기술법’을 사용한다. 여기서 예술가는 기계, 즉 자동 기록 장치가 된다. 정점은 뒤샹의 변기일 것이다. 여기서 작품은 아예 사물이 된다. 뒤샹의 이 반(反)미학, 혹은 비(非)미학은 미학적 니힐리즘의 절정이라 할 수 있다.
앤디 워홀은 미학적 니힐리즘 시대에 예술이 사는 방식을 보여준 게 아닐까? 그는 매스미디어의 이미지나 대량생산된 상품을 회화적 주제로 삼음으로써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가 사라졌음을 증언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동일한 이미지가 수없이 반복된다. 이는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균일화’를 연상시킨다. 니힐리스트의 눈에는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정치적, 도덕적, 종교적 가치관들이 정확히 워홀이 그린 깡통들만큼 서로 다를 것이다. 워홀은 종말론의 엄살없이 이 끔찍한 사실을 명랑한 어조로 환영한다.
주인과 노예의 도덕
니힐리즘은 현대인의 조건(conditio humana moderna)이 되었다. 인식의 니힐리즘, 도덕의 니힐리즘, 미학의 니힐리즘. 아직도 철학이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면, 인간에게 이 보편적 무의미에서 벗어나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리라. 일찍이 니체는 허무와 마주치는 두 가지 방식을 제시한 바 있다. 하나는 허무를 이기기 위해 외부의 가치에 자신을 의탁한 채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떠받드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허무를 받아들이고 자신의 내부에서 새로운 도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어떤 오류(?)가 역사적으로 계속 반복된다면, 거기에는 어떤 절실한 요구가 깔려 있다고 봐야 한다. 중세 이후에도 사람들이 종교를 믿는 것은 과학에 무지해서가 아니다. 종교적 광신은 무너진 가치들의 폐허 속에서 허무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의 처절함이다. 모든 흘러간 주의의 주창자들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그들은 삶의 무의미를 극복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종교와 이념의 신봉자들이 흔히 보이는 독단적 태도는 실은 타인을 비판하기 위한 게 아니라 자신의 불안을 쫓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외부에 존재하는 가치를 절대화함으로써 삶의 근원적 무의미를 망각해버리는 것이 노예의 도덕이다. 반면, 주인의 도덕은 모든 주의와 가치의 절대성을 부정하며 거기서 나오는 허무의 상태를 기꺼이 끌어안는다. 아마도 이것이 진정한 니힐리스트의 길일 것이다. 니힐리스트가 주의와 도덕의 싸움을 무의미하게 보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그 ‘놀이’에 꽤 열정적으로 참여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때조차도 그는 자신이 변호하는 주의나 가치가 근원적으로 상대적이라는 의식을 놓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