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PC로 <크라이시스> 돌아간다’는 말은 ‘내 PC는 최고 사양의 PC야’라는 말과 같다. 하이엔드 레퍼런스 시스템의 척도, 새로운 시스템 혹은 새로운 그래픽카드를 구입하고 가장 먼저 테스트해보고 싶은 게임. 바로 고사양 게임의 전설이라 할 <크라이시스>였다. 어지간한 사양으로는 불투명한 화질을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바로 그 악명 높은 <크라이시스>의 정식 2탄. <크라이시스2>가 출시되었다.
<크라이시스2>는 1편의 무대였던 야생을 떠나 뉴욕 한가운데에서 게임을 플레이한다. 이상기후와 전염병, 외계인 침공으로 붕괴된 2023년의 뉴욕을 나노슈트를 입은 주인공이 구해내야 한다. <크라이시스2>는 크라이텍의 차세대 게임 엔진이라 할 수 있는 크라이엔진3를 통해 개발된 첫 번째 게임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전편은 어중간한 사양 따위는 무시해버린 최적화로 욕을 많이 먹었나보다. 제작진도 이런 점을 충분히 반성했을 것이다. 어쨌든 <크라이시스2>는 전편의 까다로운 모습을 찾을 수 없다. 낮은 사양에도 기막히게 최적화해낸 게임이기 때문이다. 물론 <크라이시스2>의 진가를 느끼려면 충분한 PC 사양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당연히 최적화가 단지 낮은 사양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뭉뚱그려 말하자면 상급 정도의 사양이면 풀옵션으로 프레임의 저하없이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이렇게 표현된 풀옵션의 그래픽은 기가 막히다. 게임 중간에 경치를 구경한다는 것이 말이 될까 싶지만 <크라이시스2>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
게임성도 만만치 않다. 최적화와 더불어 마니아들의 의견이 수용된 듯 SF 베스트셀러 작가인 리처드 모건이 만들어낸 싱글플레이의 가볍지 않은 스토리 라인을 바탕으로, 세밀하면서도 사실적인 그래픽으로 표현된 폐허가 된 미래의 뉴욕은 그 자체만으로도 볼거리. 거기에 잘 알려진 한스 짐머의 사운드트랙은 <크라이시스2>의 ‘격’을 한껏 올려준다. 뉴욕의 명소들을 그대로 재현한 12개의 맵 세트를 무대로 5개의 게임플레이 모드로 무장한 멀티플레이 역시 굉장히 신선하다. 기존 FPS의 비교적 단조로운 멀티플레이에 비해 나노슈트를 착용한 멀티플레이는 색다른 느낌을 준다(클로킹 모드의 적들과 싸운다고 생각해보자).
자유도가 다소 제한적인 싱글플레이와 멀티플레이의 버그가 아쉽지만 DX11을 지원하는 패치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개선의 여지가 있다. 지금도 경이적인 그래픽인데 DX11을 지원하는 그래픽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무엇보다 오랜만에 만나는 대작인지라 최근 게임 가뭄이나 마찬가지였던 PC게임계에 단비와 같은 은혜로운 게임이다(콘솔용으로도 발매되었지만 궁극의 그래픽을 보기 위해서는 PC버전을 선택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