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7집 '멜로디와 수채화'를 발표한 권진원(45)은 최근 인터뷰 당일 약속 시간을 늦췄다. 대학로 소극장인 '학전' 20주년 기념 공연 첫날 무대에 오른 그는 관객과 먹을 축하 떡 준비가 늦어졌다며 양해를 구했다.
공연 전 학전 인근 카페에서 만난 권진원은 "학전은 고향 같은 곳"이라며 "'노래를찾는사람들(이하 노찾사)'에서 나와 1995년 첫 솔로 공연을 한 무대다. 또 김민기 선배님은 음악 스승인데 올해로 환갑을 맞으셔서 이래저래 잔치하러 왔다"고 웃었다.
1985년 강변가요제로 데뷔해 1988-1991년 노찾사를 거쳐 1992년 솔로 1집 '북녘 파랑새'를 냈으니 그가 홀로서기를 한 지도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그의 얼굴엔 새봄, 4년여 만에 7집을 내는 설렘이 가득했다.
"7집은 오랜 시간 천천히 만들었지만 느슨하지 않은 음반이에요. 익숙하지만 새롭고, 포크록 같지만 클래시컬한 음악들이 담겼죠."
서울예대 실용음악과 교수인 권진원의 화법은 강의를 듣는 것처럼 귀에 착착 감겼다. 대조법(對照法)을 빌려와 자신의 음악에 대한 자부심을 감칠맛 나게 표현했다.
멜로디에 실린 그의 메시지도 소박하나 소소하진 않다.
그는 "아름다운 꿈처럼 우리 기억에 남아있는 삶 속의 빛나는 순간들을 기록했다"며 "행복했든 아프고 슬펐든 모든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 투명한 아름다움이 된다. 처절한 단조 멜로디 대신 장조 멜로디를 통해 애틋함, 간절함을 극대화시켰다"고 말했다.
낭만적이고 여유로운 생각들이 담긴 수록곡들은 10편의 서정시 같다. 세상을 따뜻하게 관조하는 시선이 관통한 10곡은 마치 총 25분간의 대곡(大曲)처럼 매끄럽게 이어진다.
몽환적인 샹송 리듬의 첫 트랙 '멜로디와 수채화'부터 타이틀곡 '분홍 자전거'를 거쳐 '꿈이라도 행복해'까지 곡의 화자는 마치 꿈 속에 머무는 듯하다.
뒤이은 연주곡 '오늘 아침 비' 속의 '타가다다' 빗방울 소리에 화자는 현실로 돌아오고 마지막 곡 '누구나'에선 꿈을 잊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격려하듯 심장 고동 같은 강렬한 비트가 이어진다.
그는 "'무슨 일이 있나요'에선 따뜻한 위로를 받았을 때의 감동, '첫사랑'은 첫사랑의 추억, '예쁜 걸음마'는 제 딸이 유년시절 걸음마를 하며 품에 안길 때의 기억을 담았다"고 했다.
이 곡들의 연결 고리는 통일된 사운드다. 피아노가 중심을 잡고 현악기와 어쿠스틱 기타가 어우러져 아늑한 공간감이 느껴진다. 소리를 덧칠하고 채우는데 급급한 요즘 젊은 가수들의 음악과는 분명 다른 맛이다.
한곡 한곡 들을 때마다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진다고 하자 그는 "작사에 힘을 보탠 남편 유기환(한국외대학교 불어과 교수) 씨 덕택"이라며 "'멜로디와 수채화' '첫사랑' '분홍 자전거' 등에서 남편이 곡에 시를 쓴 셈이다. 음악가와 필력 좋은 문학가의 만남이다"고 웃었다.
권진원이 걸어온 음악 행보도 그의 음악처럼 물흐르듯 흘러왔다.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워 몸에 체화된 것들이 발현되는 과정의 반복이었다.
"유년시절 집에서 흘러나온 비틀스의 음악과 영화 '러브 스토리'의 주제곡을 듣고 피아노로 옮겼을 때의 희열을 잊을 수 없어요. 초등학교 때 '백조'란 곡을 쓰며 작곡에 재미를 붙였고 교내 작곡 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제 노래가 인정받는 기쁨을 처음 느꼈죠. 또 대학 시절 강변가요제에서 제 음악이 사람들과 교감하는 희열을 다시 느끼며 음악이 제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한때 노찾사 활동으로 '사회참여형' 가수란 돌출된 이미지가 따라붙기도 했지만 그 또한 초등학교 시절 '작은 연못'을 들었을 때의 충격, 고교 시절 '상록수'를 들었을 때의 감동이 이어진 길이었다.
권진원은 "음악 인생 내내 사람을 위한 사람다운 음악을 하겠다는 정신은 한결같았다"며 "음악은 수단이 되면 안된다. 노찾사의 음악이 사랑받았던 것도 구호가 아닌 사람과 호흡하며 예술적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포크록의 대표 음악인답게 그는 요즘 문화 현상으로 번진 '세시봉 열풍'에 대해서도 반가움을 표시했다.
"록, 힙합, 댄스 등 여러 장르가 존재하지만 사람들의 가슴에 가장 솔직하게 닿는 어쿠스틱 음악이 사랑받는 건 반가운 일이죠. 일시적인 바람이 아니었으면 해요."
이어 실용음악과 교수로서 '음악 꿈나무'들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스타만 꿈꾼다면 허망함을 느낄 수 있어요. 대학에서 음악적인 재능을 발견하고 소양을 쌓은 뒤 다양한 음악 관련 직업 중 진로를 택해야 합니다. 좋은 에너지를 잃지 않으려면 음악 외적인 문화 체험도 많이 해야하고요. 전 딸에게도 많은 경험을 통해 다양한 길을 열어놓고 생각하라고 해요."
그는 오는 5월 다시 학전 무대에 오른다. 소녀 같은 감성이 담겼지만 소녀 취향의 음악이 아닌 7집곡들을 단독 공연에서 펼쳐보인다.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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