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국아! 상상은 결코 현실을 이길 수 없단다.” 이창동 감독이 시나리오를 쓸 때 취재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한 말이다. 나는 요즘 20여명의 노동자들을 취재하면서 그 진리를 새삼 절감한다. 얼마 전 서초동 삼성본관 앞에서 고 김주현씨의 유가족이 항의하는 모습을 봤다. 하늘을 뒤덮은 빌딩 숲에서 유가족이 피켓을 들고 뛰어다니며, 발악하고 절규했다. 그곳에서 함께한 2시간 동안 나를 지배한 감정은 막막함이었다.
‘내가 저들이라면 얼마나 외롭고 힘들고 두려울까?‘그렇다면 누군가 저들에게 힘이 되어주든지 아니면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야 하지 않을까?’하지만 곧 생각이 멈췄다. 추웠다. 3월이지만 너무 추웠다. 빌딩 숲의 삭풍에 나도, 피켓도, 휘청거렸다. 문득 뭔가가 생각났다. ‘핫팩이 있다면 따뜻할 텐데.’ 하지만 그들은 핫팩이 뭔지 몰랐다. 믿기지 않았다. “다음에 꼭 가져다 드릴게요.” 그 말을 한 순간 내가 한심해졌다. 분명 오늘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는 내일도 하지 않을 것이기에. 바로 부근 약국에 가서 핫팩과 꿀물을 들고 나와 그들에게 내밀었다. 그리고 또 다른 노동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생각했다.‘내’가 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내’가 아닌 ‘우리’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톨레랑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