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23일 타계한 '세기의 미녀'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한국 여배우와 한국 관객들에게 커다란 영감을 준 만인의 연인이었다.
194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꾸준하게 활동하면서 한때 세계 최고의 미녀로 시선을 끌었고, 나중에는 8차례에 걸친 이혼으로 '세기의 이혼녀'로 상당한 관심을 받았던 특급스타였다.
'푸른 화원'에서는 깜찍한 아역으로, "당신은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어요"라는 대사를 히트시켰던 '자이언트'나 '젊은이의 양지'에서는 당시만 해도 급진적이라 할만한 강한 여자다움을 보여줬다. 리처드 버튼과 호흡을 맞췄던 '클레오파트라' 같은 영화에서는 관능미까지 뿜어냈다.
그가 나오는 영화들은 족족 흥행에 성공했으며 연기력까지 인정받으면서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카멜레온 같은 다양한 매력을 발산하며 할리우드를 지배했기에 국내 여배우들도 그녀의 압도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배우 김지미는 남성들을 휘어잡는 관능미로 국내의 '리즈(엘리자베스) 테일러'로 불리기도 했으며 문희, 남정임, 윤정희 등 당대의 트로이카도 테일러의 자장 안에 있었다.
원로평론가 김종원 씨는 "톱스타급 배우들은 음으로 양으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당시에는 여배우뿐 아니라 남자 배우도 그녀의 영향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국내에서는 리즈 같은 배우와 비견될 만한 배우가 없지만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김지미 씨가 거론될 만하다"고 덧붙였다.
정지욱 평론가는 "배우나 관계자들에게 영화라는 꿈을 심어줬다. 그녀는 여신 같은 존재였다. 본인이 의도한 바는 없었겠지만 나도 저런 큰 배우가 되어야겠다는 롤모델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줬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귀엽고 깜찍한 햅번 스타일을 낳았던 오드리 햅번이나, '7년만의 외출'의 메릴린 먼로의 치마처럼 패션까지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1950년대 미국사회의 보수적인 분위기를 뚫고 강건한 신여성상을 구축한 점은 재조명돼야 마땅하다는 평가도 있다.
전찬일 평론가는 "'자이언트' 등을 보면 50년대의 보수적인 분위기와는 걸맞지 않은 상당히 강한 여성성을 보여주는 연기를 했다"며 "최고의 미모를 자랑하면서도 강한 캐릭터를 보여준 사례는 매우 드물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연구해 볼만한 배우"라고 해석했다.
데보라 카의 기품, 오드리 햅번의 깜찍 발랄함, 그레이스 켈리의 우아함, 메릴린 먼로의 관능미와는 다른 절대적인 미(美)를 가지고 있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
'세기의 연인'에서 '세기의 이혼녀'로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던 그는 따뜻한 봄볕을 맞이하기도 전에 여러 합병증에 신음하면서 그렇게 화려한 일생을 끝마쳤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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