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사전제작해 완성도를 높인 드라마는 시청률 8.4%로 막을 내렸다.
반면 편집시간이 없어 방송 도중 화면 조정용 컬러바까지 뜨는 어처구니없는 사고를 낸 드라마는 25.5%로 끝났다.
한국 드라마, 완성도와 시청률 모두 잡을 방법은 없을까.
◇사전제작 드라마 모두 시청률 나빠 = SBS TV 월화극 '파라다이스 목장'이 지난 15일 시청률 8.4%로 막을 내렸다.
아시아 최고 인기그룹 동방신기의 최강창민과 청춘스타 이연희가 주인공을 맡은 이 드라마는 16부 전체가 100% 사전제작돼 방송을 탔다.
호주와 제주도를 무대로 펼쳐진 이 드라마는 이미 지난해 5월에 촬영을 마쳤다. 당연히 충분한 시간을 들여 후반작업과 편집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1월24일 시청률 9.7%로 출발한 이래 내내 한자릿대를 벗어나지 못한 시청률은 결국 마지막회에서 첫회보다도 떨어진 8.4%를 기록했다.
반면, 지난 24일 방송사고를 내고 막을 내린 SBS TV 수목극 '싸인'의 마지막회 시청률은 25.5%였다. '파라다이스 목장'보다 3배나 높은 '성적'이다.
1월5일 16.1%로 출발한 이 드라마는 출발과 동시에 '생방송 드라마'가 돼 결국 컬러바가 뜨고 음향이 제대로 안 나오는 오디오 사고까지 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시청률이 상승하더니 결국 첫회보다 10%포인트 가량 높은 자체 최고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두 드라마의 이처럼 엇갈린 '결과'는 한국에서 왜 '생방송 드라마'가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파라다이스 목장' 이전에도 사전제작된 드라마는 모두 시청률이 안좋았다. 만듦새에 흠이 없고 제작의 완성도가 높았음에도 시청률은 늘 바닥이었다.
지난해 방송된 소지섭, 김하늘 주연의 '로드 넘버원'을 비롯해, 현빈과 김민준이 출연한 '친구', 안재욱 주연 '사랑해' 등이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반면 시청률 20-50%를 고공행진한 인기 드라마들은 대부분 '싸인'처럼 1,2회 방송과 동시에 방송사고의 위험을 안고 가는 '생방송 드라마'였다. 거의 예외가 없었다.
◇"한국 드라마, 트렌드와 시청자 반응에 좌지우지" = 한국 시청자들이 동경하는 미국, 일본 드라마는 물론, 중국 드라마도 모두 사전제작을 원칙으로 한다. 특별한 예외가 아닌한 전편이 다 제작된 상황에서 방송을 탄다.
그런데 유독 한국 드라마만 '생방송 드라마'다. 왜 그럴까.
방송 전문가들은 "한국처럼 드라마를 좋아하는 나라도 없는 데다, 한국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스토리에 자신들의 입김이 반영되길 강력하게 원한다"고 입을 모은다.
해외 드라마는 주당 40-50분 분량 1편씩 방송되지만 한국 드라마(미니시리즈 드라마 기준)는 주당 72분59초 분량 2편씩 방송되는 것이 우리나라 시청자들의 드라마 사랑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주당 찍어내야 하는 양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사전제작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사전제작을 하면 시청자가 끼어들 여지가 없고, 시청률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방송사들이 같은 이유로 사전제작 드라마의 편성에 소극적인 까닭에 한국 드라마는 '생방송 드라마'의 악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SBS 드라마국 김영섭 CP는 "한국 시청자들은 트렌드에 민감하다. 3개월, 6개월 단위로 빨리빨리 바뀌는 트렌드를 사전제작 드라마의 경우는 따라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많은 작가들이 시청자의 반응을 살피며 결말은 물론, 드라마의 스토리를 수시로 수정하는 '관례 아닌 관례'도 이러한 잘못된 관행의 큰 원인이 되고 있다.
최근 종영한 한 '생방송 드라마'의 주연 배우는 "쫑파티에서 작가가 대놓고 시청자 반응을 살피며 대본을 쓴다고 해 황당했다. 한주한주 반응을 보며 대본을 쓰니 '쪽대본'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며 기막혀했다.
실제로 '싸인'을 비롯해 대부분의 미니시리즈 드라마의 마지막회 대본이 방송 1,2일 전에야 완성됐다. 그러다보니 방송 시작 1시간 전까지 촬영을 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지지만, 그런 과정이 시청자의 생생한 반응을 담고 시의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드라마 관계자들은 '생방송 드라마'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배우들 역시 스스로가 '생방송 드라마'의 피해자이면서도 대체로 그 시스템을 용인하는 분위기다.
'파라다이스 목장'의 주인공 이연희는 "사전제작을 했기 때문에 시간은 많았지만 편성이 결정되지 않아 불안한 면이 있었다"며 "반면 '생방송 드라마'는 촬영이 너무 힘들지만 그때그때 집중력과 순발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각각 일장일단이 있다"고 말했다.
16일 시작하는 SBS TV '49일'의 주인공 정일우는 "우리 드라마 역시 시작과 동시에 '생방송 드라마'가 될 것"이라며 "그래서 힘들겠지만 시청자와 호흡하는 장점이 크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고 위험'을 넘어 실제 사고까지 내는 '생방송 드라마' 시스템을 더이상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데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의 박창식 부회장은 "사전제작제를 빨리 도입, 정착시켜야한다. 전회를 사전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최소한 반이라도 사전에 만들어놓고 들어가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방송사가 방송 석달 전에야 제작사에 편성을 결정해주는 상황에서는 방송 사고를 막을 수 없다"며 "편성을 조금 더 일찍 확정해주면 사전제작은 저절로 안착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pretty@yna.co.kr
(끝)
<연합뉴스 긴급속보를 SMS로! SKT 사용자는 무료 체험!>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