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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를 극복한 한 남자의 인간극장
강병진 2011-03-22

말더듬이 왕자에서 국민의 군주로 성장한 영국 조지 6세의 실화 다룬 <킹스 스피치>

<킹스 스피치>는 과연 오스카 작품상을 받을 만한 영화인가. 불만 섞인 목소리가 없지는 않으나, 오스카가 다시 제 정체성을 찾았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영국의 왕 조지 6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 <킹스 스피치>는 장애를 극복한 한 남자의 이야기이자 두 남자의 신분을 넘어선 우정, 그리고 역경을 이겨낸 영웅의 이야기다. <킹스 스피치>의 작품상 수상이 못마땅한 이들도 영화가 전하는 감정의 깊이, 그리고 콜린 퍼스의 연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듯 보인다. 또한 오스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영화라는 평가도 당연할 것이다. 영국에서 가장 많은 놀림을 당했던 왕자가, 가장 많은 존경을 받은 왕이 되기까지의 사연에는 웃음과 감동뿐만 아니라 지도자의 자질에 관한 질문까지 포함돼 있다.

<킹스 스피치>의 문을 여는 건 한대의 라디오 마이크다. 우주선을 연상시키는 그의 풍채는 보는 이들을 압도할 만한 크기로 비친다. 가글, 입안 소독, 발음 연습, 마이크와의 거리재기까지, 그와의 알현을 앞둔 아나운서가 치르는 신성한 의식 또한 마이크의 권위를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아나운서의 안내로 연설을 하게 될, 오늘의 주인공이 더욱 가혹한 입장에 놓인 듯 보인다. 그의 입술은 초조하게 움직이고 사람들은 염려스러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드디어 생방송을 알리는 빨간불이 켜진다. 침묵. 침묵. 또 침묵. 그제야 남자는 힘겹게 입을 열지만 이내 단어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만다. 연설을 기다리던 사람들마저 시선을 피하고, 남자의 얼굴에는 절망감이 가득하다. 그의 이름은 앨버트 프리드릭 아서 조지. 어려서부터 심한 말더듬을 겪고 있는 영국 왕 조지 5세의 아들이자, 훗날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은 왕 중 한명인 조지 6세가 될 남자다. 병약하고 소심한 말더듬이 왕자는 어떻게 전쟁 중에도 끝까지 국민들을 지킨 군주로 성장했을까. <킹스 스피치>는 역사의 이면에 기록된 또 다른 남자를 통해 그 과정을 재조명한다. 그는, 조지 6세가 태어나 처음으로 만난 평민이었다. 마이크에 대한 그의 공포를 치료해준 사람이었으며, 무엇보다 평생을 함께한 친구였다.

장애를 가진 왕족의 <록키>?

이야기의 무대는 조지 6세가 아직 앨버트 왕자, 듀크 공작 혹은 버티(콜린 퍼스)로 불리던 1930년대 런던이다. 아버지인 조지 5세(마이클 갬본)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할 형 에드워드 8세(가이 피어스)는 미국인인데다가 두번의 이혼 경력을 가진 월리스 심슨과 사랑에 빠져 있다. 장남을 못마땅하게 생각한 조지 5세는 둘째 아들인 버티에게도 왕족으로서의 의무를 강조한다. 버티에게는 무엇보다 아버지를 대신해 연설을 해야 하는 일이 큰 곤욕이다. 소문난 의사들에게 치료를 받지만 발음연습에 치중한 그들의 치료법은 버티에게 모멸감을 느끼게 할 뿐이다. 남편의 고통을 보다 못한 아내 엘리자베스(헬레나 본햄 카터)는 수소문 끝에 호주에서 온 괴짜 언어치료사 라이오넬 로그(제프리 러시)를 찾아낸다. 그는 재야에서 소문난 언어치료사인 동시에 셰익스피어의 연극에 심취해 있는 연극배우 지망생이다. 왕자를 대면한 라이오넬은 무엄하게도 동등한 위치에서 치료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신을 버티(왕가에서만 부르던 이름)로 부를 게요. 제 궁궐에서는 제 법을 따라주세요.” 영국이 전세계 58개 영연방을 갖고 있던 시절, 영국의 왕자와 호주 출신 배우지망생의 지위는 이때부터 반전된다. 버티는 왕자인 자신이 평민에게 지도를 받아야 한다는 굴욕과 거듭되는 치료에도 나아지지 않는 말더듬 증세, 점점 더 제멋대로인 형과의 갈등 속에서 더욱 깊은 두려움에 빠진다.

장애를 극복한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킹스 스피치>가 아카데미의 위시리스트에 오른 것은 마땅해 보인다. 하지만 <소셜 네트워크> <블랙 스완> <파이터> 등 역시 현실과 내면을 오가는 치열한 성장담을 그린 아카데미 경쟁작 등과 비교할 때, <킹스 스피치>는 형식과 연출적인 측면에서 엿보이는 영화적인 야심은 덜한 작품이다. 주인공인 조지 6세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지만 거부할 수 없는 운명과 맞서는 신화 속 인물들과 닮아 있고, 이야기 또한 그만큼 고전적이다. 영국의 영화전문지 <엠파이어>는 <킹스 스피치>를 “장애를 가진 왕족의 <록키>”라고 평했다. 조지 6세를 연기한 콜린 퍼스도 <록키>를 예로 들어 한 장면을 설명한다. 극중에서 조지 6세는 히틀러의 연설이 담긴 기록영상을 보던 도중 말한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설은 정말 잘하는구나.” 이 장면은 <킹스 스피치>가 올해 아카데미 후보에 선정될 당시, ‘친나치적인 성향’의 캐릭터를 그렸다는 비난을 받게 했다. 직접 대사를 쓴 콜린 퍼스는 “실베스터 스탤론이 돌프 룬드그렌과의 경기를 앞두기 전의 상황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조지 6세에게 히틀러는 적수였다. 그런데 히틀러는 연설을 못하는 자신과 달리 강력한 화법으로 대중을 최면에 빠지게 했다. 히틀러가 어떤 생각을 말에 담았는가를 떠나, 그런 능력만큼은 정말 부러웠을 것이다.” <킹스 스피치>는 자신과의 가혹한 싸움, 그리고 인간승리의 드라마라는 것 외에도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훈련을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스포츠영화의 장르적 이미지들과 맞닿아 있는 영화다. 그런데 그런 훈련을 감내해야 하는 주인공이 왕족이라면 어떨까.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고, 아내를 배 위에 올린 상태에서 호흡훈련을 하고, 차가운 마룻바닥을 굴러다니는 왕자라니. 급기야 거듭되는 훈련과 그럼에도 나아지지 않는 말더듬 증세에 짜증이 난 왕자의 입에서는 금기의 단어가 쉴새없이 터져나온다. Fuck! Fuck! Fuck! Fuck! Fuck! Fuck! Fuck! <킹스 스피치>의 유머는 단순히 왕족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비추는 것뿐만 아니라 왕의 굴욕을 묘사하는 순간에 드러난다. 이때 왕족에 대한 단순화된 개념들을 무너뜨리는 쾌감이 뒤따르는 건 당연하다.

특권층의 이야기가 아니다

<킹스 스피치>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톰 후퍼 감독은 “이 영화가 특권층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내가 이 작품에 흥미를 느낀 건 특권층에 대한 기존의 이미지를 부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지 6세의 이야기는 역사로 보이지 않았다. 그 역시 평범한 인간처럼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을 뿐이었다.”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 데이비드 세이들러에게도 조지 6세는 왕이기 전에 가련한 인간이었다. “버티가 바란 건 단 하나, 사람들이 자신을 가만히 놔두는 거였다. 이야기의 시작에 등장하는 대영제국 박람회의 폐회사 자료화면을 보면 가슴이 먹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철저히 조지 6세의 시점을 따르는 <킹스 스피치>가 가장 섬세하게 묘사하는 것, 그리고 관객의 눈에 새롭게 비치는 것 또한 왕족의 피로와 스트레스다. 영화 속에 비친 1930년대의 영국은 58개 영연방을 둘러싼 전세계적인 라디오 방송망을 갖추고 있으며, 그에 따라 왕의 역할도 바뀐 시대다. 극중에서 조지 6세의 아버지인 조지 5세는 “왕족은 어떤 피조물보다도 낮고 비천한 존재야. 옛날에는 말에서 떨어지지만 않아도 됐지만 이제는 각 가정에 비위도 맞추고 홍보를 해야 해. 우리는 이제 배우가 된 거야”라고 말한다. 세금을 걷거나, 전쟁을 선포하거나, 의회를 해산할 수도 없는, 그저 상징적인 의미로서의 왕이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국민을 향한 연설뿐이다. 조지 6세의 고통은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와 가족과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만약 라디오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형인 데이비드가 사랑에 빠지지만 않았다면 자신이 왕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그의 시점에서는 왕이라는 특권 대신 사랑을 택했던 에드워드 8세의 로맨스도 이기적이고 충동적인 치기일 뿐이다.

콜린 퍼스의 연기 또한 (실제 조지 6세의 말투를 따라할 때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털어놓을 때 빛을 발한다. 조지 5세가 승하한 뒤 슬픔에 젖은 조지 6세는 라이오넬을 찾아가 술을 청하고, 라이오넬은 그에게 과거를 이야기하게 만든다. 왼손잡이에서 오른손잡이로, 안짱다리를 일자의 곧은 다리로 교정해야 했던 어린 시절, 무서운 아버지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형 사이에서 자랄 수밖에 없었던 과거, 게다가 어린아이인 그를 미워했던 첫 번째 유모. 더듬는 목소리로 내밀한 과거를 고백하던 버티는 라이오넬의 치료에 따라 <스와니강>의 멜로디에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여 말한다. “젖도 주지 않고 멀리멀리 내팽개쳤다네….” 이 장면에서 콜린 퍼스는 한 나라의 왕자가 아닌 두려움에 떠는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몸과 얼굴을 감싼다. 인간승리의 드라마로서 <킹스 스피치>가 조지 6세와 관객을 강력하게 동조시키는 순간이다.

<더 퀸>과 닮은 듯 다른 <킹스 스피치>

조지 6세는 1936년부터 1952년까지, 약 16년 동안 버킹엄 궁을 지킨 왕이었다. 그 다음으로 왕좌에 오른 이가 바로 현재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다. 가족관계상 <킹스 스피치>는 <더 퀸>의 프리퀄처럼 보인다. 가족관계를 지우더라도, 왕과 국민 사이의 신뢰를 지탱한 누군가의 노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두 영화는 비슷하다. <더 퀸>의 블레어 총리가 다이애나비의 죽음을 슬퍼하는 영국의 국민과 민심에 상관없이 며느리의 죽음에 대해 매정한 태도를 보이는 여왕의 갈등을 조율한다면, <킹스 스피치>의 라이오넬은 국민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왕과 말더듬이 왕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국민을 대면시킨다. 뿐만 아니라 두 영화는 지도자를 대하는 국민들의 시선이 형성하는 공기를 관찰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가진다. 톰 후퍼 감독은 “버티와 라이오넬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왕에 대한 사람들의 공포감, 다시 말해 그가 왕으로서의 자질을 갖추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의 핵심을 꿰뚫어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킹스 스피치>의 조지 6세와 <더 퀸>의 여왕은 모두 그러한 우려 때문에 인간으로서의 삶과 왕으로서의 의무 사이에서 대중에게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대중은 눈물이 만드는 매력적이고 위대한 연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여왕은 영악한 전략가로 묘사되는 반면, 자신의 능력을 끊임없이 의심하는 조지 6세는 동정의 대상이다.

<킹스 스피치>는 이미지 정치가 태동한 시점으로 돌아가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가 갖춰야 할 이상적인 자질이 무엇인지를 다시 묻는 듯 보인다. 영화가 드러내는 하나의 단서는 우정이다. 영화에서 조지 6세는 왕족에게 동등한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하는 라이오넬을 통해 자신의 아픈 과거를 털어놓고, 특권의식에 갇힌 왕족에서 벗어난다. <킹스 스피치>의 감동은 조지 6세가 2차 세계대전 당시 라디오 연설을 통해 국민과 군인들을 결집시켰고, 덕분에 저항의 상징이 됐다는 사실과 그들의 우정이 맞물리는 지점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 과연 지금 우리의 왕에게, 지도자에게 필요한 친구는 누구일까. 지금 여기 우리의 귀에서도 크게 울리는 연설일 것이다.

월리스 심프슨, 더 비호감으로 묘사

실제와 역사 사이

<킹스 스피치>가 촬영에 들어가기 약 9주 전, 제작진은 라이오넬 로그의 손자를 통해 로그가 직접 조지 6세와의 일들을 적은 일기장을 발견했다. 당시 로그의 손자와 도보로 10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는 톰 후퍼 감독은 그의 일기장을 통해 영화의 몇몇 대사들을 새로 썼다고 말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무사히 연설을 끝낸 조지 6세에게 로그가 “아직 이중모음 발음이 좋지 않다”고 말하자, “사람들에게 연설을 하는 사람이 나라는 걸 알리기 위해 일부러 그랬다”는 조지 6세의 대답이 대표적인 인용이다. “전시의 첫 번째 연설을 끝내셨습니다”라고 했을 때, 조지 6세가 “앞으로 더 많은 연설을 해야겠지”라고 말하는 것도 일기에 적혀 있던 내용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로그의 치료법이 실제 그의 치료법과 정확히 일치하는 건 아니다. 시나리오작가인 데이비드 세이들러는 1940년대 당시 자신이 받았던 말더듬 치료법을 바탕으로 썼다고 말한다. 거침없이 욕을 하게 만드는 방법도 그중 하나다. <킹스 스피치>는 극중에서 조지 6세가 ‘Fuck!’이라는 단어를 연달아 내뱉는 장면 때문에 미국에서 R등급을 받았다. 이에 대해 톰 후퍼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1940년대 10살짜리 꼬마에게 허용된 것이, 지금의 미국 아이들에게는 왜 허용되지 않는 건가.”

영국의 역사가들은 <킹스 스피치>가 조지 5세와 에드워드 8세, 윌리스 심슨을 실제보다 더 악한 인물로 묘사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월리스 심슨은 배우 이브 베스트의 외모에 힘입어 실제보다 더 비호감적인 여성으로 연출됐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톰 후퍼 감독 또한 “조지 6세의 입장을 따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역사가들의 지적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영화 속 처칠의 존재다. 당시의 처칠은 왕이 연설을 하는 동안 궁 안에서 자리를 지킬 만한 지위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만 왕궁의 일반적인 관계자들이 그가 누구인지를 알고 있는 정도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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