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키 드 생팔,
3월10일~4월10일 / 오페라갤러리 / 02-3446-0070
불행을 축복으로 바꾸는 방법이 궁금한가. 이 여인들이라면 답을 알지도 모르겠다. 니키 드 생팔과 야요이 구사마는 현대미술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깊이 아로새긴, 대표적인 여성 아티스트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고(생팔은 1930년, 야요이는 1929년생이다), 보는 이의 기분까지 들뜨게 만드는 강렬한 원색을 사용한다는 것 이외에도 두 여성에겐 공통점이 있다. ‘불행한 개인사’가 창작의 원천이 되었다는 점이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생팔은 패션지의 표지 모델로 활동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당한 성적 학대의 기억으로 오랫동안 신경쇠약증을 앓았다. 야요이는 어린 시절부터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동그란 점 무늬가 덧씌워 보이는 환각에 시달렸는데, 그녀의 어머니는 가혹한 학대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그렇기에 두 여성의 작품에는 늘 ‘치유’라는 단어가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하지만 치유라는 말로만 설명하기엔 그녀들의 업적이 너무 크다. 니키 드 생팔은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여성들이 어떤 모습일 수 있는지를 제시했다. ‘니나 시리즈’(프랑스어로 ‘계집아이’라는 뜻)로 불리는 생팔의 여성들은 짙은 피부에 코르셋 따위는 벗어던지고 풍만한 뱃살을 자랑하며 공놀이를 한다. 야요이 구사마는 그녀 작품의 트레이드 마크인 물방울, 꽃무늬를 현대미술의 가장 매력적인 아이콘으로 격상시켰다. 야요이의 작품은 다른 아티스트들에게도 영감의 원천이 됐다. 마크 제이콥스의 가방도, 랑콤의 립글로스도 야요이의 무늬를 빌려 브랜드의 매력을 꾀했다. 이처럼 니키 드 생팔, 야요이 구사마의 작품들은 자신만의 명확한 스타일로 보는 이들의 감성을 ‘치유’한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
이번 전시는 국내에서 쉽게 만나볼 수 없던 생팔과 야요이의 작품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더 반갑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되는 생팔의 <뱀> <은둔자> <박쥐> <사랑의 미로> 등은 그녀가 남편 장 탱글리와 함께 20여년 동안 공들여 완성한 투스카니의 <타로 조각공원>의 기반이 된 작품들로 국내 최초 공개다. 타로카드의 신비롭고 어두운 캐릭터들이 생팔 작품 특유의 곡선과 원색과 만나 독창적인 정서로 재탄생했다. 야요이의 작품으로는 그 유명한 <호박> 시리즈와 더불어 잉크의 질감이 몽환적인 느낌을 내는 <꽃병> <새> <그물> 등이 소개된다. 개별적인 작품 감상도 좋지만 스타일이 확연히 다른 두 아티스트들의 작품이 같은 공간에서 부딪히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정서가 더 매력적인 전시다.